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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빨양c Jun 05. 2022

Ep21. 과장이 회사에서 눈이 돌면 생기는 일

궁금하면 드루와 :P


“주 과장 잠깐 나 좀 보자.”


'뭐야. 나 CEO로 가는 건가?'


원래 사람은 보고 싶은데로 보고, 믿고 싶은데로 믿으려 하는 법이다.

하지만 늘 그렇듯 현실은 우리를 정 반대로 밀어 낸다.


"설 팀장은 어디 갔나 보지? 얘기 들은 거 없어?"

회장실에서의 실수 아닌 실수 때문이었을까.  

평소와 다르게 신중한 목소리로 아인을 떠보는 말투로 서 부장이 말했다.


"얘기요? 그냥.. 회장님 뵙고 왔나 본데 표정 많이 안 좋던데요? 따로 뭐 말은 없었습니다. 부장님 무슨 일 있으세요? 얼굴이..."


"흠흠.. 회장님이 불러서 다녀오는 길인데, 설 팀장이 니 승진 제안했나 보던데? 뭐 말한 거 없었어?"


내심 설 팀장이 드디어 CEO 제안을 회장님께 했나보다 하는 생각에 아인은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설 팀장의 CEO 제안부터 그동안 있었던 일을 서 부장한테 말했다.  

물론, 그 말을 들은 서 부장의 얼굴은 회장실에서 나올 때보다 더 크게 창백해졌다.


"CEO??? 그럼 설 팀장이 회장님한테 건의한 게 널 CEO까지 올리는 거였단 말이야?"

답답하다는 듯 서 부장이 말했다.


"네? 그럼 회장님은 CEO제안은 모르시는 거예요?"

변 회장의 대답이 궁금한 기색을 애써 감추며 아인이 물었다.


"글쎄.. 그거까진 말씀 없으셨어서 나도 모르겠어.. 회장님은 그렇게까지는 말씀 안 하시고 그냥 승진 제안 정도만 들으신 거 같던데.. 그런 제안이었으면 운영부에서 모를 리가 없었을 텐데.. 설 팀장 대체 뭐하고 다니는 거야 진짜?"


"설 팀장은 임원회의 때 화물 총괄본부 만들어서 오 차장 주려고 했던 거 저한테 CEO 맡기는 걸로 임원진 사이에서는 얘기가 다 되었다고..."


"야야.. 대체 뭔 소리 하는 거야? 그런 게 있었으면 운영부 부장인 내가 몰랐을 리가 없고, 회의에서 그런 얘기는 나온 적도 없어. 나왔으면 내가 너한테 바로 알려줬겠지."


듣고 보니 그렇다. 서 부장님이 몰랐을 리가 없다.

 

'그럼 대체 뭐지?' , '그럼 대체 뭐야?'

서 부장은  생각했다. 아인도 생각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잠깐의 정적.  사이에 어쩔  없이 오르는 생각.

'설 팀장. 다 설 팀장이 꾸며낸 말이란 건가? CEO라는 미끼에 내가 또..'

순간 그 짧은 시간에 아인은 뭔가가 머리 꼭대기에서 어깨 허리 다리 발끝까지 온몸을 훑으며 때리고 간 느낌이 들었다. 그 허무함. 그리고 이어지는 맥 풀리는 냉소의 분노.

'이젠 정말 지긋지긋해.'


눈앞에서 아인의 표정이 심상치 않게 변하는 것을 지켜본 서 부장은 직감적으로 말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 과장. 일단 진정해봐. 무슨 일인지 내가 알아볼 테니까 그때까지.."


하지만 이미 늦었다. 언제나 때는 늦게 오는 법이다.


아인의 발걸음은 이미  눈앞에 서 부장을 지나,  

급하게 자리로 돌아오고 있는 설 팀장을 지나,  

그 옆에 앉아 오늘도 파티션 뒤에서 메이크업을 열심히 고치고 있는 사 대리를 지나,   

그렇게 3팀과 회장실 사이 앉아있는 수많은 모니터 뒤에 숨은 흔한 동료들의 놀란 눈동자들을 꾹꾹 눌러 밟고, 기어이 회장실 문 앞에 도착했다. 그리고 발로 차듯이 문을 거칠게 열어젖혔다.


그 순간 잘 닦인 회장실 문에 반사된, 뒤통수에서 느껴지던 따가운 눈빛들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주 과장을 말리려는 몸짓으로 급하게 달려오는 설 팀장과

한가로이 있다 이게 무슨 재밌는 사건인가 호기심 가득 찬 사 대리의 눈,  

그리고 동료라 불렀던 이들의 냉소적인 눈빛들까지.

평소 성정 상 절대 그러지 않을 것 같은 주 과장이 그런 식으로 행동할지 누가 예상이나 했을까?

원래 평범한 사람이 눈이 돌면 더 무서운 법이다.


문이 열렸다.  

언제나 진하고 묵직하게만 닫혀있을 것 같았던 그 회장실의 문이.

아인의 눈에 그 너머 환한 창문 쪽으로 뒤돌아 앉아있던 의자 위 변 회장의 실루엣이 보인다.

그날은 평소와 다르게 반대편 건물의 유리창의 빛이 찬란하게 반사되어 회장실 회의 테이블을 밝히고 있었다. 마치 오랜 시간 기다린 결투를 앞둔 검투사의 무대라도 밝히겠다는 듯이.


천천히 변 회장이 의자를 앞으로 돌려앉는다. 당황한 기색은 없다.


'이렇게 가벼운 문이었던가?'

오히려 너무 쉽게, 그리고 세게 열린 문 소리에 아인이 당황했다.

당황한 기색을 애써 감추며 아인은 의자 위 변 회장을 내려다본다.

이런 것쯤 익숙하다는 듯, 의자에 앉은 변 회장은 그런 아인을 올려다본다.


"앉지.", "앉을까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변 회장과 주 과장이 동시에 말했다.


그래, 늘 그렇다.


회사가 묻는다. 직원은 답한다.

그렇게 둘은 또 어긋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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