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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빨양c Jun 06. 2022

Ep22. 누구나 천국에 가고 싶어 하지만,

죽고 싶어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앉지.", "앉을까요?"

변 회장이 말했다. 동시에 주 과장도 말했다.


이 순간을 얼마나 꿈꿨던가.

그리고 그 순간이 오면 얼마나 심장이 떨릴까 상상했던가. 고민했던가.

하지만 막상 그 순간을 맞닥뜨리니 오히려 마음이 차분해지는 게 참 이상했다.

주 과장이 먼저 입을 열었다.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말해봐"


"설 팀장이 며칠 전 저에게 CEO직을 제안했습니다. 화물 총괄본부를 만들어 그 자리를 저에게 제안하더라고요.  알고 계셨습니까?"


'설 팀장 이 새끼가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건가' 하마터면 욕설이 나올 뻔한걸 간신히 참으며 변 회장이 말했다.

"처음 듣네. 설 팀장은 자네 승진시키자고 말한 게 다네."


'결국 설 팀장의 농간이 맞았네. 중간에서 무슨 수작을 부리려 했던 거야 대체'

아인은 사표를 던졌던 그날처럼 손이 부들부들 떨렸다. 화가 나서였던 건 아니었던 것 같다. 아직까지도 그때의 그 감정이 어떤 것이었는지 정확히 알 수가 없다.


"아 한 가지 더, 자네가 사표 던졌다는 것도 들었네, 그리고.."

여기서 변 회장의 눈빛이 약간 흔들렸던 것 같다. 하지만 계속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차장이든, 부장이든, 자네가 원하는 걸 말한다면 나도 한번 고려해보겠네."


하지만 변 회장의 말에선 어쩌면 그 순간 가장 중요한 오늘 아침, 그러니까 방금 전 알게 되었다는 말이 빠졌고,  

이것은 아인에게 변 회장이 본인의 사직 의사를 진작에 알고 있었음에도 그동안 설 팀장을 시켜 시간 끌기를 했다는 오해를 남겼고, 원하는 것을 말해보라는 말투에서는 CEO는 절대 해줄 생각이 없다는 알 수 없는 위압감을 남겼다.


그랬다. 바로 1년 전 과장으로 승진한, 그때만 해도 대리였던 아인에게, 이렇게 짧은 시간에 차장, 부장의 자리까지 승진시켜준다는 제안도 회장으로서는 아인을 아끼는 마음에서 파격적으로 제안했던 것이었다. 자식 같은 아인의 첫 모습을 분명히 기억하고 있고 그리고 그래서 그만큼 아낀 직원이었기에.

하지만 이미 CEO가 되어 본인의 팀을 꾸려 이 침몰해가는 회사를 구해 올리겠다는 야망의 끝까지 갔던 아인을 만족시킬 수 있을 리 없었다. 그리고 이런 야망을 전혀 알지도, 알아볼 시간도 없었던 변 회장으로서는 아인의 그러한 기대를 짐작조차 할 수 없었던 것이었다.


대화가 이어지는 이 둘 사이에 빠진 게 뭘까?

 둘은 좁혀지지 못하는 접점의 끝에서 서로를 노려보고만 있게 된 걸까?

설 팀장.

그 사이에는 설 팀장이 빠져있었다.

그리고 설 팀장의 생각을 그때의 그 둘이 알리가 없었다. 그의 계획은 단순했다.

사표를   과장의 평소 성향을  알고 있는  팀장은  과장에게 CEO라는 회사의 고위직 미끼를 던져 그의 야망을 건드리고, 그렇게 일단 시기를 최대한 늦춘다. CEO 제안은 당연히 회장이나 임원진에   없고, 차장이나 부장 정도 제안해보고 올려주면 사표도 막고, 안돼도 후임자 찾을 시간은 벌 수 있겠지. 그리고 회장도  과장을 그렇게 대놓고 아끼니까 차장 정도는 해주지 않을까? 그래  그렇듯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지극히  팀장스러운 단순한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때 마주 앉은 주 과장과 변 회장은 이것을 알리 없었고,  

그렇게 오해로 가득한 상황만 회의실을 가득 채웠을 뿐이었다.


때로는 아무 의미도 없을 것 같았던 사람 때문에 잘 될 수 있었을 일도 한순간에 무너진다.

그 단 한 사람 때문에.


'내가 사표 낸 것도 알고 있었어!! 그리고 뭐? 차장? 부장? CEO 해준다며!!  설 팀장이랑 다를 게 뭔가? 아니 오히려 설 팀장이랑 짜고 어떻게든 날 최대한 오랫동안 이용해먹으려 한 거잖아! 후.. 그래.. 결국 회사 사람.. 아니 회사 주인이라 이거지? 그동안 회장은 그래도 다를 거라 믿었는데 결국 설 팀장이나 변 회장이나!! 결국 직장생활에서 만난 관계는 어쩔 수 없네 어쩔 수 없어!'

이기적일 수밖에 없는 오해가 아인을 둘러쌌다.


'승진 원한다면 차장, 부장 정도 달아주고 일단 잡아야지. 그 정도면 되겠지. 주 과장을 아끼긴 하지만.. CEO? CEO는 뭔 놈에 CEO. 이 놈은 설마 설 팀장 그놈의 그 제안을 기대한 건가? 그렇다면 너무 건방진데 이거. 회사 어려운 거 빤히 알면서. 어떻게 이럴 수 있지. 설마.. 아니겠지. 일단 잘 구슬려보자. 대화가 안 통하는 놈은 아니니까. 설 팀장 불러다 바로 알아봐야겠어.'

변 회장의 오해도 지지 않겠다는 듯 둘 사이에 맴돌았다.


팽팽한 오해의 정적을 깬 건 변 회장이었다.

"그래, 그래서 원하는 게 뭔가? 말해보지."


그 말이 나온 짧은 시간에 아인의 머릿속엔 엄청나게 많은 생각이 스쳐갔다.

'CEO를 던져봐? 아니면 회장 말대로 차장, 부장 정도로 만족할까? 내 나이에 그 직급도 대단하긴 하잖아?'

그 짧은 순간에도 참 약삭빠르게 본인에게 조금이라도 유리한 방향을 잡아야 한다는 생각을 한 아인이었다.


우리 직장인은 상급자의 말 한마디에 동물적 본능으로 본인의 살 길을 찾는다.

그 상급자가 회사 최고책임자라면?

두말할 여지가 없다.  

하지만 아인의 입 밖에서 나온 말은 예상 밖이었다.


"일단.. 알겠습니다. 고민해보겠습니다. 오늘은 이만 나가보겠습니다."


'응? 뭐지.. 이 싱거운 놈은? 뭐라도 지를 것처럼 들어오더니만.. 이게 끝?

그래도 어쨌든 내 생각은 잘 알아들은 모양이군.. 차장이든 부장이든 그 정도 해주면 되겠지..'

변 회장은 본인의 생각을 아인이 이해해준 것 같아 내심 만족스러웠다.


아인도 원하는 것을 말하기는커녕, 왜 갑자기 그 순간 마음이 그렇게나 쉽게 차갑게 식고, 원하는 것을 더 요구하지 못하고, 그저 저 묵직해 보이지만 한없이 가벼웠던 회장실 문을 박차고 나가고 싶은 생각만 들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렇게 다시.. 문이 닫혔다.

조금은 허무하고 너무도 허망하게.

그 문을 나와 문 앞에 기대 선 아인은 하마터면 주저 않을 뻔했다.


누구나 천국에 가고 싶어 하지만

죽고 싶어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왜 그때 이 말이 생각났는지, 그때의 아인은 알지 못했다. 손이 아직도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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