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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빨양c Jun 20. 2022

Ep26. 내 손으로 사표내고 실업급여 되냐 해보니

빠른 손절 당하더라 “응 안돼”



"주 과장. 퇴사한다며?"


이제야 퇴사한 선배들의 마음을 알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아인이 탕비실에 홀로 커피를 내리고 있는데 입사 동기인 고 대리가 들어오며 말을 건넸다.

별로 대단해 보이지 않던 아인이 과장 승진을 빨리하자, 동기들 사이에서는 알 수 없게도 아인이 공공의 적이 되어 버렸었다. 그리고 고 대리도 그 동기들 중 하나였다. 사람인 이상 같은 날 입사해 같은 공간에서 같은 고민을 하고 같은 고생 한다 믿던 동기가 본인보다 앞서 나간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 어쩔 수 없게도 경계하게 된다.

아인도 고 대리가 나쁜 사람이 아닌 건 알고 있었지만 그런 고 대리의 마음을 어렴풋이나마 느껴서인지 거리감을 느꼈고, 굳이 나서서 거리감을 없애기 위해 노력하진 않았다.

그런 마음을 느끼는 동기와 애써 가까워지려는 노력이 상대방에겐 상처가 될 수도 있다 믿었기 때문에. 그리고 아인은 얼마 전 고 대리가 이번 희망퇴직자 명단이 들었다는 소식을 들었고, 방식은 달라도 같은 퇴사 예정자라는 묘한 동질감이 지금 이 공간, 그들에게 새삼 친밀감을 만들어주었다.


"응. 어쩌다 보니."


"흐음.. 소식 들었지? 나도 이번에 퇴사해. 너보다 내가 먼저 나가게 될 것 같다 야. 어쩌다 이리되었는지 참. 넌 희망퇴직 대상 명단에도 없던데 버틸 때까지 버텨보지 왜 사표를 냈냐~"

진심으로 안타까운 말투로 고 대리가 말했다. 동기가 좋을 때는 좋다.


"뭐. 직장생활 그런 거지. 넌 계획은 있고?"


"글쎄.. 이직 자리 알아보고 있긴 한데 쉽진 않네. 이 전염병 터지고 업계 다 죽어서.. 답 없잖아. 그래도 이번 희망퇴직자들은 위로금으로 월급 3개월치랑 실업급여도 6개월인가 처리해준다니 그걸로 어떻게든 버텨봐야지 뭐."


"다행이네. 나는 내가 사표 내서 그런가 그런 거 아예 없다더라."


"뭐? 아. 희망퇴직 아니고, 자진 사직이라서?? 너무하다 정말 이 회사. 그래도 네가 여기 기여한 게 얼만데.."


"어쩔 수 없는 거지 뭐.."

힘없이 아인이 말했다.


"그래도 설 팀장이나 서 부장한테 얘기라도 해봐. 실업급여 그거는 회사에 피해 가는 것도 아니라던데.."


".. 응?"

아인은 굳이 실업급여를 회사에 말해볼 생각도 못했다. 회사에서 일방적으로 자르는 게 아닌 자진 사표는 당연히 적용이 안된다고 알고 있었기에.


"자존심 때문에 그래~? 네 가족도 생각해야지. 자존심 한 번 굽혀서 6개월만 실업급여 타도 이직하는 동안 그래도 좀 여유롭게 시간도 좀 벌 수 있고.."


희망퇴직을 당하는 동료에게 퇴직에 대한 조언을 얻는 아이러니라니.


이런저런 대화를 마치고 탕비실을 나온 아인에게 마침 저기 걸어오고 있는 함 전무가 보인다.

말 나온 김에 물어나 보자는 생각에, 그리고 그동안 함 전무가 본인을 좋게 생각한다고 믿었기에 조금은 기대하는 마음으로 실업급여 적용이 가능한지 말을 건넸다. 그리고 즉각 돌아온 대답,


"안됩니다. 자진 퇴사하는 사람은 회사 규정 상 실업급여 처리 불가가 규정이라.. 주 과장도 이해하죠? 아! 퇴사 소식은 들었어요. 아쉽네요. 주 과장 앞날에 좋은 일만 있길 빌게요."


빠른 손절.

'함 전무가 이렇게 냉정한 사람이었나'

너무도 짧은 함 전무의 일방적 대화에 아인은 다시 한번 직장 내 차가운 인간관계를 느꼈다.


‘그래도 그 긴 시간을 정말 이 회사만 보고 열심히 일했는데 정으로라도 해주면 안 되나? 추가로 회사에 비용 부담이 발생하는 것도 아니고.. 그동안 내가 낸 실업급여받겠다는 건데..’ 하는 서운한 마음과,


‘뭐.. 회사에서 일방적으로 자르는 게 아니면, 실업급여 안 되는 건 맞으니까.. 그래서 회사에서 잘라줄 때까지 절대 먼저 사표 내지 말라는 말이 있었지.. 깽판이라도 치고 차라리 잘리라는 말이 이래서였나’하는 머릿속 이성적 판단이 동시에 떠올랐다.


아인은 결국 얻은 것 없이 자존심만 상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의 차가운 마지막 태도에 마음은 난도질되고

그동안 회사를 위해 해왔던 시간들이 무의미한 것으로 일축당하지만,

‘그래도 마지막이니까..’ 하며 애써 머릿속 이성으로 꾹 눌러 참고 차가운 회사를 이해해보려 애썼던 날들.


어쨌든 그렇게 시간이 또 흘러,

아인이 통보한 퇴사 일주일 전이 되었다.

설 팀장이 웬일로 아인을 먼저 부른다.

"그래. 주 과장 니 소원대로 그 날부로 퇴사 처리해주는 걸로 결정됐으니까 후임자한테 인계 잘하고. 연차 남은 거는 다 소진하고 가는 걸로 날짜 계산해. 회사에서 돈으로 못준다니까."


그래 회사는 이런 곳이다.

일단 사표를 내면 서로 업무인계 안 받겠다는 남는 직원들과

후임자를 찾을 때까지만이라도 최대한 남아달라고 시간을 끄는 회사 그리고,

마침내 후임자가 정해지는 순간 이제 너의 필요는 다 했으니 네가 원하는 대로 내보내 주겠다고 선심 쓰듯 내쫓는 .


그러나 저러나 설 팀장의 통보에 멈춰있던 퇴사 시간이 갑자기 빠르게 흐르기 시작한다.

그렇게 마침내 카운트되는 그 숫자.

<D-7>


‘후.. 힘드네..’

어렴풋이 눈치로는 알고 있었으나 퇴사 날이 올 때까지 퇴사 예정자가 느낄 수밖에 없는

입술 안 터진 피 맛 같은 텁텁한 현실 앞에

아인의 한숨이 나지막이 새어 나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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