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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빨양c Jun 23. 2022

Ep28. 도비이즈프리

안녕히 계세요 여러분 전 이 세상의 모든 굴레와 속박을

 <D-3>

#기다렸던 서 부장님과 드디어 점심식사를 했다.

아무래도 전염병 시대에 저녁 술자리는 좀 그런 것 같아 점심으로 했다. 종종 가서 낮술 곁들이던 김치 돼지찌개 집이었다. 물론 낮술도 한잔씩 했다.

어제 퇴사한 희망퇴직자 중 모니터 바탕화면에

"도비는 이제 자유예요" 혹은

"안녕히 계세요 여러분~전 이 세상의 모든 굴레와 속박을 벗어던지고 제 행복을 찾아 떠납니다" 하는 짤을 깔아놓고 간 직원이 있었다는 우스갯소리를 해주셨다. 요즘 친구들 참 당돌하다며..

글쎄.. 나는 낀세대답게(?) 그들의 입장도 어느 정도 이해됐다. 얼마나 이 회사가 원망스러우면 뒷일 생각하지 않고 그런 걸 남겼을까.  

이 회사를 떠나는 나의 마지막 날, 나도 어떤 걸 하는 게 좋을까-하는 고민을 잠깐 하고 있는데,

그 자리에서도 내 실업급여를 챙겨주지 못하게 돼서 미안하다고 말하는 서 부장님의 먹먹한 눈을 보니 눈물이 왈칵 났다.

낮술 때문인지, 그냥 정신이 없는 직장가 점심식사 공간이었어서 그런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래도 너무 감사했다고, 이 회사를 떠나 내가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꼭 다시 인사 올리겠노라고 마음을 전했다.

마음이 맞는 동료와  이상  일이 없어진다는  어떤 의미에선  슬픈 일이다.

그런 동료가 하나라도 있다면 그것은 축복이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역시 낮술을 하면 하루가 너무 길다는 생각을 하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도 MZ인척 슬쩍 도비 이즈 프리를 오 차장, 김 대리, 그리고 내 자리 모니터에 몽땅 설치해놓고 나올까 하는 생각을 하니 절로 웃음이 나왔다. 통쾌할 거 같긴 하다. 그들의 마음이 이해된다.

‘변 회장 모니터에도 확?!’


 <D-2>

#오늘은 운영관리부에 내가 사용하던 법인카드와 영업용 차량 키를 반납했다.

과장이 되고 사용할  있는 영업비가 늘어서 기뻤던 기억이 난다. 같은 영업사원이어도 대리, 과장, 차장  직급에 따라 사용할  있는 한도가 정해져 있었어서, 대리  영업 나가면 거래처에서 많이 얻어먹었던 기억이 난다. 거래처 직원분들과  동생 하며 좋다고 따라다녔던 그때. 대리 때의  비굴했던 은혜를 갚겠다고 과장되었을   법인카드를 들고 거래처 가서 쏘겠다고 난리 피다 한도가 안돼  당했던 기억도 떠올랐다. 여전히 거래처에서는 그런 나도 귀엽게 봐주신  같지만.

막상 떠나려니 기억에 남는 얼굴들이 많다.

신입 때부터 동생처럼, 자식처럼  챙겨주셨던 분들인데 아직     찾아뵙고 퇴직한다고 인사드리질 못했다. 그분들 찾아뵙기에는 퇴사 날까지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간다는 핑계를 대고 있지만, 글쎄.. 그분들 앞에서  회사를 욕하지 않고 퇴사 소식을 전할 자신이 없기 때문인    이유인  같다. 그리고 그분들께는 회사 욕하고 떠난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지 않다.

운영관리부에서 퇴직금도 정산해줬다.

2천만 원 남짓. 그래도 나름 오래 다닌 회사인데 이것밖에 안되나 싶은 생각이 먼저 들었다. 대부분의 퇴직자들은 이직할 곳을 정해놓고 가는 경우가 많아 퇴직금은 다음 회사의 퇴직금 시스템으로 자동 전환되는 방식으로 정산을 해준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이직할 곳을 생각도 안 하고 있었기에 그냥 내 통장으로 입금해달라고 했다. 바로는 안되고 무슨 절차를 하고 퇴사한 이후에 입금될 거라고 한다.

20,000,000이라...

내 직장생활의 결과물이 이 숫자밖에 되지 않는 것 같아 씁쓸함이 느껴졌다. 그래도 퇴사 후 다음 돈벌이를 구할 때까지 나와 우리 가족을 버티게 해 줄 소중한 돈이니까.. 감사히 생각하자고 마음먹었다.


 <D-1>

#결국 회장은 나와의 마지막 인사를  생각이 없는지 지난번 제안에 답이 없다. 아침 출근길에 마주쳐 인사를 드렸으나   것이라도  것처럼 홍조  얼굴이  빨개지면서 외면한다. 그냥 그런가 보다 했다. 그냥  정도밖에  되는 사람인 거다 하고 말기로 했다.

오늘은 퇴사 전날이라 설 팀장과 하나 남은 팀원인 사 대리 그리고 후임자와 점심식사를 하기로 했다. 너무너무 꼴도뵈기 싫은 조합이었지만, 그래도 마지막 인사하는 기분으로 식사자리에 참석했고, 그다지 특별할 건 없었다. 아! 한 가지,

"아는사람이  회사 지원한다면 추천할 거냐" 

설 팀장의 이상한 질문.

아직도 왜 그런 질문을 했는지 모르겠다. 여전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사람이다.

이젠 알 필요도 없는 사람이지만.

점심 식사 후 자리로 돌아와, 내일 보낼 해외지점 매니저들에게 보낼 영문 퇴사 메일과 찾아뵙지 못한 셀 수 없는 수많은 거래처 직장인 분들에게 보낼 퇴직인사 메일을 작성했다. 그중엔 오 차장님과 김 대리의 메일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동안 그들에게 굳이 연락하진 않았다. 그리고 당연히 그들에게서 연락 온 것도 없었다.

누구보다 성숙한 비즈니스 가면 쓰는 걸 강조했던 사수인 오 차장님 답달까?

본인은 젠틀한 것이라 강요하지만, 누군가에겐 세상 차가운 비즈니스 관계일 뿐.

난 그렇게 되고 싶지 않다.

그렇게 메일 작성을 하는 중에,

도비 이즈 프리보다   뜻깊은 작별인사를 전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중에 예소가 보고는 오글거리다고 난리를 폈지만, 시를 한편 찾았다.

같은 글자로 나열되어있는 시여도 읽는 사람에 따라  시를 통해 느끼는 감정은 천차만별이다. 많은직장인들이 수많은 감정으로 하루하루 수많은 다른 업무를 대하듯이.


퇴사 하루 .

그렇게 퇴사 준비는 끝났다.

그래도 나름 마무리를 잘한  같다는 만족감이 든다.

이제 내일이면 그렇게 꿈꿔왔던 마지막 출근길,

그리고 여태껏 보내기만 했던  엘리베이터에서의 퇴사의 주인공이 된다.

그 엘리베이터 안에서 닫히는 문 사이로 보이는 건너편 남는 자들을 보는 기분은 어떨지 벌써 궁금해진다.

묘한 설렘이 든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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