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추수아 Oct 19. 2023

그리하여 1년이 지났다

사람 사는 것 다 똑같다

회사의 작년 크리스마스 파티. 해리포터 컨셉이었다


생각보다 힘들었던 1년이었다. 첫 6개월은 적응하느라, 나중 6개월은 회사 자체가 갖고 있던 문제 때문에. 그래도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사람은 어째서 경험해야만 진정으로 체득할 수 있는 걸까?



직전 회사를 거치고 난 뒤 깨달음


직전 글에서 오피스가 드디어 열리고 주 3일 출근을 하며 점차 상황을 이해하게 되었다고 썼다. 유관부서 사람들, 성격 좋은 (퇴사한) 전 매니저, 새로 친해진 프로듀서 친구 등에게 들은 정보들을 엮자, 상황이 보였다.



회사의 리더쉽 스타일

매니저는 소통 이슈가 있었고 회사도 이를 인지하고 있다. 이 때문에 전 매니저를 지금 팀으로 옮겼지만, 이 때문에 퇴사했다. 이 외에도 이슈가 있어 나를 포함해 3명이 연달아 퇴사했다. 그러나 그는 회사에서 오랫동안 일한 사람으로, 조처하기 어려운 것처럼 보였다.


회사는 약 15년간 콘솔을 PC로 컨버팅하던 아웃소싱 회사였는데, 이번에 처음 개발 주도를 맡았다. 그 때문에 회사의 리더쉽은 일감 관리에 핏이 맞춰져 있었고 새로 온 시니어들이 가져오는 개발 드리븐 관점의 아이디어를 잘 포용하지 못했다. 해서 시니어들이 1년 근무 후 많이들 퇴사했다. (내 퇴사 후 일주일 뒤 2명의 시니어가 또 퇴사했다)


Co-Dev와의 협업에서 회사 리더쉽들은 오너쉽을 크게 고민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다. 아마도 아웃소싱에 집중하던 회사 문화가 다소 남아있어서가 아닌가 싶다. 이런 상황은 추측건대 스튜디오에 영향을 줬을 것이다. 인터뷰와 리로케이션 중에 느꼈던 시간적, 물질적 여유로움이 다소 사라졌음이 느껴졌다.



인터내셔널 스튜디오로서는 아직은 아쉬움

퀘벡시티에만 15년 이상 있던 회사다 보니 인터내셔널 인재와 포용성에 대해 이해도가 적었다. 많은 미팅이 불어로만 진행되어, 영어만 사용하는 직원이 정보를 얻거나 업무적 영향력을 보여주기 어려워도 이 부분의 이해도가 아쉬웠다. 해서 영어만 쓰는 직원들은 1년 버티기가 쉽지 않았다.


회사는 단일 스튜디오였고 이제야 몬트리올 스튜디오가 생겼다 보니, 스튜디오 간 정보 공유나 라포 형성이 아쉬웠다. 몬트리올 직원들은 의사결정에서 배제되거나 중요한 정보를 공유받지 못하는 일이 발생했다. 해서 몬트리올 스튜디오에 유독 퇴사자가 많이 발생했는데, 이에 스튜디오 헤드가 1달에 1주일 정도 몬트리올에 머물기로 했다. 1~2년 내 해결하기에는 다소 어려울지도 모른다.


이미 새 직장과 비자 발급을 논의하고 있었다. 어차피 퇴사할 결심을 한 지 오래였고, 조금 늦게 하느냐, 이르게 하느냐의 차이였다. 해서 나는 같은 팀 동료의 급작스러운 퇴사 및 매니저와 트러블을 계기로 그냥 퇴사했다.

친한 동료들이 더 좋은 환경에서 일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Exit interview와 대화를 요청한 스튜디오 부 헤드에게 느낀 문제점을 최대한 잘 공유하려 노력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선 웃으며 잘 마무리했다 생각한다.

정신적으로 힘들었지만, 덕분에 몬트리올이라는 도시에 와서 일해볼 수 있었다. 기회를 준 것에 대해서는 늘 감사하게 생각한다.



결과적으로 1년의 근무를 통해 내가 느낀 것들은 다음과 같다.   

한국이나 여기나 전반적인 업무 및 협업 과정은 비슷하다. 내가 느끼는 감상을 문화 차이 때문인가? 등으로 굴절해서 스스로를 의심하지 말자. 소통 잘하고 일 잘하는 사람에 대한 기준은 비슷하고, 내가 경력자로서 느낀 회사나 사람에 대한 판단은 대체로 맞다.


한국에 비해 다양한 문화의 사람들이 함께 일하다 보니, 문제나 단점에 비롯되는 결과가 더 도드라진다. 비교적 사람들은 아니다 싶으면 바로 퇴사하고, 회사도 빠르게 결단을 내리는 것 같다. 프랑스인 동료는 “일은 네 전부가 아니야. 너무 힘들면 목을 맬 필요는 없어.”라고 했다. 맞는 말이라 생각하고, 이런 태도야말로 건강하게 오래 일하는 길이라 생각한다.


나는 직접 소통하는 것을 두려워했던 것 같다. 한국에 비해 비교적 역할과 직급에 대한 롤이 명확히 정의되어 있고, 이에 관해 직접 소통하고 협상해야 한다. 한국에서는 물어보지 않고 알아서 잘하는 것이 미덕이었지만, 여기서는 소통과 협상을 잘해야 효율적이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마찬가지로 인정받고 승진하고 싶다면 상급자와 직접 소통하고 상호 간의 니즈를 맞춰가는 것이 권장된다. 생각해 보면 이것을 잘하는 사람은 한국에서도 인정받았다.



한국과 웨스턴 게임 업계 비교


1년만 일하고 정리한 생각이니, 기회만 주어진다면 5년쯤 근무 후에도 여전한지 확인해 보고 싶다.


예상한 대로 혹은 예상하지 못한 대로 다양한 지역의 스튜디오 협업은 장단점이 있었다. 웨스턴의 개발 파이프라인이 성숙한 것은, 거대한 스튜디오, 다양한 Co-Dev의 협업이 시간을 지나 노하우가 쌓인 것이다. 잘 동작한다면 체계적으로 업무가 각 스튜디오에 분담되어 과로 없이 지속적인 개발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양하고 풍부한 아이디어와 의견이 공유될 것이다. 잘못 동작한다면 시간과 돈, 인력을 낭비하며 배가 산으로 갈 것이다. 어떤 시스템과 협업 방식이 있는지 체득하게 된다면, 이곳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값진 경험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생각했던 대로 비교적 업계 전반적으로 UX와 User Centered Design을 파이프라인에 잘 활용하는 것 같다. 대체로 UX 디자이너를 별도로 뽑는 큰 회사들에는 각자 디자인 프로세스가 있는데, 유저데이터나 다양한 부서의 의견을 단계적으로 받을 수 있도록 짠 것이다. 직전 회사에도 있긴 있었다.


생각보다 시장과 유저, 프로덕트에 대한 관점 차이가 있다. 웨스턴은 콘솔 패키지에 노하우가 많다. 한국과는 반대로 게임패드를 개발 기준으로 생각하고, PC가 FPS 조작에 유리하다는 인식이 덜한 것 같았다. 역으로 생각하면 한국은 온라인 서비스, F2P 및 관련 BM에 노하우가 많은 것이다. 관련해서 요새는 중국도 너무 잘하고 있지만…


비교적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의 볼드한 선택이 과감하게 이루어진다고 느꼈다. 예를 들어 각 메인 스튜디오의 각 자체 엔진을 하나로 통합한다거나… 넥슨에서도 아트리소스의 통합 및 배포를 꿈꿨지만, 실제로 잘 되었는가 하면 체감상 그렇지 않았다. 자체 엔진의 경우 모바일 개발에 맞지 않아 당장은 아쉬운 결과가 나오는데도 뚝심 있게 진행되었다.


웨스턴은 큰 회사임에도 다양한 장르, 다양한 크리에이티브 방식으로 게임개발에 접근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곳도 자가복제로 신작을 개발하는 것은 비슷한 것 같았다. 한국은 그것이 MMORPG이고 여기는 FPS라는 점이 다른 것 같다.



워라벨


워라벨은 많은 사람이 해외 근무를 원하는 이유고, 실제로도 많은 해외근무자들이 장점으로 말하는 부분이다.


휴가

개인적으로 운이 좋게도 첫 회사 이후 좋은 팀들을 만났기 때문에 휴가 사용 및 과로에 관해서는 부담이 없었다. 당연히 당일 연차도 문제없었다.  그러나 확실히, 이곳이 휴가에 대한 개념 자체가 다른 것은 분명하다.

7~9월 사이 3주 이상 휴가 쓰는 것에 있어 전혀 거리낌이 없다. 또한 추석이나 설 연휴에 연차를 붙여 쓰는 것조차 약간은 부담스러워하는 한국과 다르게, 12월 말~1월 초 연휴에 2주 이상 쉬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심지어 직전 회사는 그때가 아니면 마음 편히 휴식을 취할 수 없을 것이라는 취지 하 일주일은 유급휴가, 일주일은 무급휴가를 강제로 사용하도록 했다.

한국에서도 연말 2주 휴가는 연차 소진 및 다 같이 쉴 때 쉬는 게 나으니 차라리 권장됐지만, 한 달 연휴도 괜찮은 분위기는 신선했다. (물론 주니어 친구가 한 달 휴가 도중 퇴사를 한 것은 여기 기준으로도 센세이션 하긴 했다)


탄력적인 출퇴근

출퇴근에서도 주어진 일을 하고 코어 시간만 준수한다면 자유로운 편이었다. 친한 프랑스인 동료들도 8시쯤 출근해서 4시쯤 퇴근했다. 회사 시스템도 본인이 알아서 근무한 시간을 작성해 금요일쯤 신청을 올리기만 하면 되니 아주 자유롭다고 할 수 있다.

재택의 경우에도 업계 전반적으로 슬슬 오피스 출근을 늘려가는 분위기지만 협상의 여지는 있는 듯했다. 나는 너무 K 직장인이라 주 3일 출근도 별 이견이 없었지만…


식사

참, 아쉬운 점은 한국 회사들은 점심을 제공하는 경우가 꽤 많은데, 이곳은 그렇지 않다. 아침에 크로와상을, 수요일에 점심 케이터링을 오피스 출근의 미끼로 제공하긴 했지만…

Ubisoft MTL의 경우 아침에 과일을 제공하는데, 늦게 가면 바나나를 먹을 수 없다고 한다. 다만 텐센트가 인수한 Behavior interactive의 경우 인수한 중국 회사 문화의 영향으로 무료 점심을 제공한다고 들었다.

실제로 내가 제일 그리운 것은 넥밥이다. 풀무원 시절의!


*개인적인 경험에 근거해 작성된 글입니다. 관련해 여러 가지 의견을 환영합니다.

이전 07화 새로운 곳에서의 적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