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을 다시 쌓아야 한다
유학 등을 통해 새로운 문화와 환경에 어느 정도 익숙해진 후 근무하는 것에 비해, 한국에서 직장까지 정착한 후 새로운 문화권에서 다시 적응하는 것은 생각보다 난도가 있었다. 해서, 여유가 된다면 유학도 고려해 볼 만한 것 같다.
한국에서 해외로 바로 이직해 생활하다 보면 더 예민해지고 자책하기 쉬운데, 누군가는 이 글을 보며 “나만 그런 것이 아니었구나.” 생각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챕터 하나를 할애해 글을 적었다.
출국 전에는 막연하게 불안했다. 인생의 큰 목표를 이뤘다는 성취감, 새로운 곳에 대한 설렘만큼이나 불안했다. 잘 안 풀리면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면 그만이었는데, 그때는 왜 그렇게 불안했는지 모르겠다. 물론 심신을 다스리는 데에 러닝만 한 것이 없으므로, 이때도 러닝을 했다.
캐나다에 도착한 직후에도 불안하고 초조했다. 어쩌면 회사로부터 지원을 받았기 때문에 내 쓸모를 증명해야 한다는 압박을 느꼈던 것 같다. 여기에선 생각보다 드문 것이 아니라는 걸 알고부터는 부담이 줄어들었지만…
영어로 근무하는 것도 생각보다 에너지를 많이 소모했다. 일이 적은 날도 업무시간이 끝나면 엄청나게 피곤했다. 직장에서든 밖에서든 내가 한 말을 상대방이 잘 알아듣지 못해 되물어 올 때는 괜스레 위축되곤 했다. 괜히 이것 때문에 상대가 나를 저평가하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도 되었다.
하지만 1년이 지나고 난 후의 감상은 여전히 내 영어는 많이 늘어야 하지만, 지금은 이걸로 나를 평가하는 사람이 잘못이라는 걸 안다. 제일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떻게 프로덕트를 개선했는지, 퀄리티는 어떠한지 등이다.
직장에서 일을 하다 보면 상황에 대한 “일반적인” 판단기준이 있다. 무엇이 무례하고 그렇지 않은가 같은. 그에 맞춰 상황을 이해하고 사람들과 잘 협업하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나는 처음 캐나다에서 일해보는 것이어서 이 부분을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매사 과하게 조심하고 상대방의 반응 때문에 기분이 나빠도 그것이 문화적인 차이 때문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또 개인적으로 갖고있던 트라우마도 상황을 악화시켰다. 첫 회사에서 별것 아닌 걸로 트집 잡혀 압박받고 퇴사했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기저에 늘 억울함을 깔고 있었다. (아마 이것이 아래 기용 님이 말씀하신 과거의 상처일 것이다) 게다가 항상 하드 스킬은 좋은데 소프트 스킬은 아쉽다는 평가를 받아왔었고, 스스로 외골수적인 성향을 인지하고 있었다.
외국에서 영어로 근무하니 이런 단점이 더 크게 부각되는 것 같아, 상황이 안 좋은 방향으로 흐르면 스스로에게서만 문제를 찾으려 해서 힘들었다.
경험자들에게 조언 구하기
해서 한국인이면서 외국 직장 생활을 3~4년 이상 한 사람들에게 고민을 털어놓았는데, 공통적인 의견은 “그렇게 느끼는 거면 그게 맞다.”, “말을 안 하는 것보다 하는 것이 낫다.”였다. ‘내가 다른 나라의 직장 문화에서 와서 이렇게 자세하게 물어본다.’ 같은 부연 설명은 긁어 부스럼이라고도 했다.
제일 힘들었던 때 어떻게든 상황을 개선하고 싶어 지나 님께 멘토링을 여쭤봤다. 나처럼 한국에서 일하다가 해외에 바로 이직하신 케이스셔서 비슷한 순간이 있으셨을 것 같았다. 게다가 어떻게 적응하여 성공적으로 인정받으며 일하고 계시는지도 궁금했다. 지나 님의 멘토링은 심리적으로 큰 도움이 되었고, Radical candor(한국 제목-실리콘밸리의 팀장들)라는 좋은 책과 여러 유용한 팁도 받았다. 지금도 이걸 생각하면 너무나 감사하다.
윈-윈을 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라.
Y 언니에게도 당연히 고민을 공유하며 상담했었는데, 상황에 대한 가감 없는 인상을 공유해 줌과 동시에, 언니가 회사 내에서 분기별 멘토링을 받는 IT업계 대선배와 만나볼 기회를 만들어 주었다. 아래 영상분들만큼이나 오랫동안 마이크로소프트 본사에서 일하고 계시는 김보영 님으로, 겸사겸사 시애틀에 놀러가 만나 뵈었다.
여가였기 때문에 자세한 상황을 말씀드리지는 못했지만, 아시안 여성으로서 미국에서 길고 욕심 있게 커리어를 끌어오신 분답게 강렬하고 명쾌한 인사이트를 공유해 주셨다. 직장 내 모든 관계에서 “윈-윈을 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라.”
선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방법이며, 인생에도 적용되는 통찰력있는 한마디라고 생각한다.
업계 대선배들의 통찰력 모음집
(박종천 님) 한컴, 블리자드, 넥슨, 삼성전자 다 다녀보고 내린 결론 /
(한기용 님) 27년차 개발자가 20대로 돌아간다면 하지 않을 것들
인터넷으로도 뭔가 없을까 싶어 찾아봤었는데, 이건 당시 크게 도움이 됐던 유튜브 클립 시리즈들이다. 두 분 다 한국 사회에서 나고 자라 일 때문에 북미로 오신 케이스셔서 그런지, 객관적으로 상황을 살펴보거나, 미래를 설계할 때 도움이 됐다.
무엇을 배웠나
결론적으로 직장에서의 “일반적인” 판단 기준은 한국이나 이곳이나 비슷한 것 같다. 차이점이라면 보다 “협상에 우호적이고 적극적이어야 한다.”, “문제를 느꼈다면 공유해야 해결을 위한 실마리라도 마련해 볼 수 있다.”, “나중에 동일한 상황이 다수에게 발생한다면, 내 의견은 좋은 기록이 될 수 있다.” 등이다.
내가 잘하지 못한 것들이 있다면 “상위직급자와 업무에 대한 얼라인을 미리 하지 않았다.”, “상위 직급자와 원하는 바를 협상하는 것을 두려워했다.”, “물어보지 않고 성급하게 보여주려고만 했다.”, “상위직급자가 어떤 사람인지 동료들을 통해 자연스럽게 파악하지 않았다.” 이다. 그리고 트라우마 때문인지, 상대가 나를 저평가하는 것 같을 순간을 느낄 때마다 버튼이 눌린 것처럼 불필요하게 감정적이었다.
기용 님이 말씀하셨던 ‘새로운 시작’ 항목의 모든 것들에 실수한 셈이고, 돌이켜 생각해 보면 이것들은 내가 이전 팀에서 반복했던 것들이기도 했다. 다만 회사 환경과 상황, 매니저들이 좋지 않은 것도 사실이었는데, 이에 관해서는 그리하여 1년이 지났다에 적도록 하겠다.
안 그래도 힘든데, 회사 밖에서 만나 사회적 교류를 할 사람이 아무도 없으면 쉽게 고립되고 우울해질 수밖에 없다. 홀로 있으면 생각이 침전되고, 안 좋은 생각은 반복되면 상수가 된다.
회사 인연들
회사는 15년이 넘게 퀘벡시티에서만 운영되었고, 이제야 몬트리올에 스튜디오를 오픈해 비 퀘베쿠아들을 받아들이기 시작한 참이었다. 특히 동북아시안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인터네셔널들, 특히 동북아시안끼리 자주 모이게 되었다. 또 운이 좋게도 회사 프로그래머 중 한 명의 여자친구가 한국인이었는데, 이 언니와 친해지니 이 친구와도 자연스럽게 회사와 상관없이 친해지게 되었다.
오피스에 출근하기 시작하면서 사람들과 친해져 대화하기 시작하자 보이지 않던 게 보이기 시작하고, 비로소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회사에서 만난 인연들은 이후에도 서로에게 좋은 이끌이가 되어줄 것이다.
회사 밖 - 한국인 친구들
아무래도 처음에는 한국인들을 만나기 쉽다.
밴쿠버나 토론토라면 워낙 한국 사람들이 많기에 성향에 맞는 한인들을 만나기 쉽다. 하지만 몬트리올은 불어라는 장벽으로 인해 한국인 자체를 생각보다 찾기 어렵다. 다행히 나는 예전 첫 직장 때 같은 팀에 계셨던 애니메이터분이 몬트리올에 오래 거주하고 계셔서 좋은 출발을 할 수 있었다.
그 외에는 새롭게 알아가야 했는데, 종교를 믿지 않으므로 교회를 가기는 좀 그랬다. 몬트리올 특성상 퀘벡주 무상교육 때문에 와 계시는 어머니들이 많았는데, 아무래도 나와 생활 패턴이 맞지 않거나 공통 관심사가 없었다. 워홀러들의 경우 불어권이라 아무래도 많지 않았지만, 금방 돌아갈 사람들이라 연을 맺으면 그들이 돌아간 후 많이 허무할 것 같았다.
그래서 초반에는 동종업계에 계시거나 비슷한 직업을 가진 분들을 찾아 만나 뵈려 노력했다. 우연히 한 분을 알게 되니 알음알음 연결되었다. 나중에는 비슷한 시기에 랜딩하신 영화 업계 분들과도 알게 되어, 서로 적적하지 않게 지내고 있다.
회사 밖 - 다른 문화권 친구들
해외로 온 목적 중 하나는 한국 외 문화권의 사람을 만나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것이었다. 일상에서 영어를 자주 사용해 익숙해져야 한다는 내적 압박감도 알게 모르게 있었다. 하지만 회사 바깥에서 만나기는 어려웠다.
이에 해외 거주 중인 (서로 모르는) 지인 2명이 범블이라는 앱을 알려주었다. 데이팅보다는 교류에 방점을 두었고, 상호 간에 like를 해야 채팅을 시작할 수 있어 좋다고 했다.
인구 통계적으로 비슷한 조건의 사람들은 성향이 비슷하거나 공감 요인이 겹칠 확률이 높으므로, 사전에 몇 가지 조건을 설정했다.
비슷한 나이대인가? (위아래로 4살)
이민자인가?
문화 콘텐츠를 좋아하는가? (영화, 드라마, 게임, 만화, 애니, 소설 등)
(있으면 좋음) 비슷한 업계에 종사하는가?
(있으면 좋음) 한국 문화에 호의적인가?
놀랍게도 만나게 된 사람들은 6년 이상 장기 거주자들이 많았다. 조건이 비슷하니 서로 성향이 맞을 확률이 높았다. 인스타 그룹을 만들어 다 같이 만날 기회를 자주 만들려 노력했고, 자주 보니 심심할 때 한 번씩 볼 수 있는 사이가 되었다.
아직은 전반적으로 정서가 비슷한 동북아시아 사람들에게 더 친밀함을 느낀다. 새로운 공간으로 온 것은 다양한 문화와 인종의 사람들을 이해하고 싶은 것도 있었기 때문에, 점진적으로 넓혀가야겠다고 마음먹고 있다.
이다음은 퇴사한 직전 회사의 1년 동안을 돌아본 회고를 작성하도록 하겠다.
*개인적인 경험에 근거해 작성된 글입니다. 관련해 여러 가지 의견을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