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다니는 수영장은 산중턱에 위치해있다. 수영하러 갈 때면 나는 '무시로'를 능가할 만큼 가파른 경사로에 강습 전부터 헉헉대곤 한다. (무시로는 내 모교 앞 경사로다. 너무 가팔라 오르다 보면 다리가 '무시'(무의 경상도 사투리)가 된다 하여 붙여진 별명이다.)
등산을 하면 으레 중간에 멈춰 풍경을 내려다보게 되듯, 나의 수영장 가는 길도 별반 다를 게 없다. 언덕길을 오르다 보면 왠지 모르게 잠시 뒤돌아보고 싶어진다. 한 발짝 더 내딛고 뒤돌면 아까보다 더 멋진 풍경이, 두 발짝 더 내딛고 뒤돌면 아까보다 더더 멋진 풍경이 펼쳐진다.
그렇게 뒤돌아볼 때마다 생각한다. "아, 또 이만큼 왔구나", "몇 발짝 더 오르면 도착하겠구나".
수영장에 다다를수록 더욱 아름답게 보이는 동네 풍경에 잠시 영혼을 빼앗기다 보면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해있다.
얼마 전 드디어 중급반으로 승급을 했다. 작년 8월 처음 발차기를 배운 이후 14개월 만이다(중간에 4개월 쉬긴 했지만). 그러고보니 꽤나 오래 걸렸다. 평영에서부터 막혀 혹시 내가 수영 체질이 아닌 걸까 고민도 하고, 같이 시작한 분들이 하나 둘 승급해서 다른 레인으로 가시는 걸 보며 주눅들기도 했다. '내가 퍽이나 중급반을 갈 수 있겠다' 자괴감마저 들 때쯤 작년처럼 또 때려치고 싶다는 충동이 일었다. 꾹 참고 꾸준히 6개월을 더 한 결과 드디어 승급!
평영에서 고전하고 있다. 매일 혼나기만 해서 주눅들었는데 언젠가부터 배짱 두둑하게 스스로 칭찬거리를 찾고 있다. "오늘은 발차기 짝발로 안했잖아요ㅎㅎ"... 내가 언제 이렇게 능글맞아진 거지? 그런데 이렇게 정신승리를 하니 기분이 좀 낫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데, 그 칭찬은 내가 스스로 해도 되는 거 아니겠나.
-2019.05.23. 일기 중에서-
승급 과정과 수영장 오르는 길은 참 닮아있다. 온 길을 자꾸 뒤돌아보며 가다보면 어느새 수영장에 도착하는 것처럼, 어제 한 것 지난주에 한 것을 되짚어가며 꾸준히 하다보니 어느새 중급반에 닿았다. 남들이 볼 땐 별 거 아니겠지만 평영 때문에 한참을 슬럼프에 허덕여서 그런지 '드디어!' 라는 생각에 감개무량하다.
아, 게다가 오늘은 중급반 선생님께 칭찬도 들었다. "초급반에서 처음 오신 것 치고 수영을 참 잘하시네요. 진작 오지 왜 이제서야 오셨어요?"
평영 발차기도 못하던 내가 이제 접영까지 척척 하게 될 줄이야. 매번 자세 이상하다고 지적만 받았는데 이렇게 칭찬 받는 날이 올 줄이야! 수없이 언덕길을 오르내리던 날들의 가치가 드디어 윤곽을 드러내는구나.
워워, 아직 멀었다. 너무 좋아서 흥분했는데 다시 가라앉히고 초심으로 열심히 해야지. 지금껏 했던 것처럼 조금 느리더라도 나만의 속도로 나아가야지. 오르막에서 뒤돌아보면 장관이 펼쳐지듯, 가끔 뒤돌아 '내가 이제 여기까지도 할 줄 아는구나' 뿌듯한 성장의 맛을 음미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