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를 화석처럼 두고
현재를 보려고 애쓰다 보니
이상하게도
내 안에 깔려 있던 감정 하나가
또렷하게 느껴졌다.
억울함이었다.
나는 아내이고,
엄마이고,
예술가이기도 하며
예술교육가이기도 하다.
단체를 이끄는 대표이자
기획자이기도 하다.
하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사실
입시미술학원 운영자라는
단일한 역할로 살 수 있었다면
훨씬 단순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교육 시장,
특히 특권의식을 심어주는 구조는
내가 믿는 예술과
끝내 충돌했다.
미술은
누군가의 특권이 아니라
그냥 삶이라는 생각을
나는 포기할 수 없었다.
그래서
15년의 서울살이를 접고
고향 대전으로 돌아왔다.
모든 사람에게 이롭고
행복을 줄 수 있는 예술교육가로
살아보겠다고 선택했다.
그런데 나는
아내이자 엄마였다.
남편도 같은 미술계 사람이다.
그래서
살림과 생활의 책임은
자연스럽게
내 쪽으로 더 기울어졌다.
그 선택을
내가 먼저 했다.
남편은
그림 그리는 삶이 잘 맞는 사람이고
그걸 지켜주고 싶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이런 말이 올라왔다.
돈도 내가 벌고,
일도 내가 더 하고,
왜 이렇게 나만 바쁜 걸까.
그 말은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지만
태도와 표정과 말투에
다 묻어 나왔던 것 같다.
정신과 상담에서
그 이야기를 꺼냈다.
의사 선생님은
아주 단순하게 말했다.
“당신이 돈 번다고 유세 떠는 거네요.”
순간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이어진 말은 더 단호했다.
가족은
혼자 굴러가는 구조가 아니라
운명공동체라고.
다음 날
남편도 비슷한 말을 했다.
“너 혼자 돈 번다고
유세 떠는 거냐?
나는 아무것도 안 했다고 생각하냐?”
같은 말을
다른 입으로
두 번 들으니
피할 수가 없었다.
아,
내 마음이
이미 행동으로 다 드러나 있었구나.
사람 인(人) 자는
혼자 서 있는 글자가 아니라고 한다.
서로 기대어야
비로소 사람이라고.
그걸 머리로는 알고 있었는데
나는 어느새
혼자 버티는 사람처럼
살고 있었다.
생각을 조금 바꾸자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남편의 태도가
조금씩 달라졌다.
내가 먼저
유세를 내려놓으니
상대도
방어할 필요가 없어졌던 것 같다.
그제야 알았다.
관계는
누가 더 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마음으로 서 있느냐의 문제라는 걸.
요즘의 나는
완벽한 운명공동체는 아니다.
여전히 흔들리고
여전히 서운한 날도 있다.
그래도 한 가지는 분명하다.
혼자 굴러가겠다는 마음을
조금 내려놓았다는 것.
억울함을 내려놓자
관계가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운명공동체라는 말이
이제는
조금 덜 무겁게
조금 더 현실적으로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