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는 게 약이야.
'우물 안 개구리'라는 말을 들으면 부정적인 생각이 드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미 알고 있는 경험과 지식에만 의존하기 때문이다. 그 고정관념은 쉽게 깨지기 힘들다. 타인의 가치관과 경험 등을 이해하려면 우물 밖의 세상을 끊임없이 탐구하고 세계관을 넓혀가야 한다. 하지만 이와는 상반된 생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어떨까?
전 세계로 눈을 돌리면 다양한 삶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티베트족이나 오지마을의 부족들은 현대문명과 단절된 삶을 살아가지만, 그 안에서 자신들만의 질서와 조화로운 생활 방식을 유지한다. 특히 티베트족은 히말라야 산맥의 험준한 고지대에서 살아가는데, 산과 강을 신성하게 여기며 경외감을 갖고 살아간다. 일상 속에서 종교가 스며들어 있으며 오늘의 생업과 기도나 명상, 공동체의 생활에 충실한다. 외부에서 볼 때는 굉장히 비효율적인 삶을 살아간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들에게는 그 문화 속에서 진정한 행복과 의미를 찾아갔고, 어느 누구도 방해할 수 없다. 진정한 미니멀리즘이다.
경험은 축복인가, 저주인가?
해외여행을 해보지 않았던 아주 어린 시절, 동네 언니들과 그저 그렇게 살아가면서 서로의 집에 놀러 가고, 동네 한 바퀴를 돌고, 놀이터에서 흙놀이를 하며 돗자리를 깔고 종이인형 놀이를 했었다. 저녁시간이 되면 집에 가서 가족과 함께 밥을 먹었다. 퇴근한 아빠의 심부름으로 3분 거리에 있는 슈퍼에 가서 '쟈키쟈키'나 '에이스'와 같은 과자를 사 와 아빠와 함께 나눠먹는 게 어린 시절 내 일상의 행복이었다.
20대 이후에 책을 읽고, 다양한 대외 활동을 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해외를 나가본 이후의 내 삶은 180도 바뀌어 갔다. 정치적, 사회문화적 '앎'이 커져갈수록 책임감과 무게가 더 커져만 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끊임없이 탐구하고 알아갔다.
경험이 없어도 단순하게 살아갔던 어린 시절의 단순한 마음과 지식과 경험을 통해 더 넓은 세상을 이해하고 감사하게 된 지금의 나는 함께 공존하며 살아가지만 가능성과 두려움 사이에서 지속적인 충돌이 일어난다. 최근 뉴스에는 부정적인 내용만 보도되고 있다. 많은 한국 사람들이 '뉴스 불안증'을 앓고 있을 것 같다. 통제 불가능한 상황이지만 타격감이 크고 위축감을 준다.
'크게, 더 크게'
나는 항상 무슨 일을 하든 대규모로 확장해야 하고, 크게 성공해야 하고 '크게, 더 크게'라는 것에 마음이 설렜었다. 그런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었기 때문이다. 그 이후에 더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좋았던 점은 '대규모'의 삶과 '소규모'의 삶을 모두 바라보면서 나에게 맞는 삶이 무엇인지 체크해 볼 수 있다는 점이다. 태국 오지마을에서 봉사활동을 했을 때, 최소한의 작은 대나무로 만든 방 안에서 개미가 나오는 집에 잠을 자도 다음날 아침에 맛있는 태국음식을 먹으며 동네 아이들과 땅따먹기 놀이를 하는 게 행복했었다. 일본의 작은 규모의 노점 같은 식당을 갔을 때, 재료 손질에서부터 플레이팅 까지 정말 꼼꼼하게 신경 쓰는 게 보였다. 정말 열정적으로 단 몇 명의 손님을 위해 온 마음을 쏟는 정성을 보며 '이게 바로 삶의 예술이 아닌가' 싶었다. 진정으로 현재의 순간을 온전히 살아내는 것 같았다. 때로는 정말 큰 사명감을 갖고 살아가면서 전 세계인에게 영향력을 주는 유명인들을 보면서 경외감을 느끼기도 한다. 이때 나는 내 그릇의 크기에 맞게 어느 정도의 비판적인 시각으로 책을 읽으며 내 생각과 가치관을 구축해 나가는 것이다.
서로의 영역에 침범하지 않고 우리 모두가 서로를 100% 인정해 주면서 모두가 행복한 멋진 사회는 아마도 없을 것이다. 내가 죽고 나서도 범죄와 시기와 질투, 그리고 전쟁과 자연재해가 난무한 세상일 것이다. 예전에는 삶에 대한 고민을 하고 '철학'에 대해 논하는 사람들이 현실적이지 않아 보이고 뜬구름 잡는 소리만 하는 사람들 같아 보였다. 그랬던 내가 이런 인생에 대한 글을 쓰고 있다니, 어떤 사람에게는 내가 쓰는 이 글이 '쓸모없는 행위'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단순히 '생산성'만을 위해서 살아갈 거라면, 그냥 동물로 태어났어야 한다. 나 자신을 성찰하는 고요한 삶이 없는 인생은 껍데기와 같을 것이다. 인간만이 살아가는 '의미'를 찾고 생각하는 동물이기 때문이다. 한 목표물만을 향해서 최적의 루트를 계산하고 사냥을 하는 치타처럼 생활해야 할 때도 있지만, 성찰의 시간을 통해 내면을 탐구하면서 진정한 행복과 인생에 대한 의미를 찾아가야 하는 것이 인간이 할 수 있는 삶의 본질이다.
끊임없이 목표를 요구하고, 외부의 기준에 맞춰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 이런 환경 속에서 진정한 내가 원하는 삶의 방향성을 잃기 쉽다. 소크라테스는 이렇게 말했다. "성찰하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 세상에 휩쓸려서 살아가는 수동적인 삶을 살아간다면 단지 공동체적 삶을 살아가면서 해야 할 사냥만 하는 '동물'적인 삶에 가깝다. 시끄러운 세상 속에서 나만의 평화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사색을 해야 한다. 결국 나 삶의 균형을 방해하는 것은 외부가 아니라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도 어쩌면 종종 여행을 하고, 자연을 산책하고, 명상을 하면서 호흡과 감정에 집중해 보고, 성찰하는 시간을 갖으며 글쓰기를 하는 행위를 하는 게 아닐까 싶다. 이런 면에서 가끔은 '우물 안 개구리'로 살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