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이브, 첫째가 산타 할아버지에게 쓰는 편지 내용이 자못 진지하다. 아이 딴에는 꽤 오래 궁금했던 질문을 쏟아냈다.
산타 할아버지 진짜 나는 루돌프가 있어요? (밤 동안 어떻게 전 세계 어린이들에게 선물을 나눠주시나요?) 메리 크리스마스 우리 집에 어떻게 들어오세요?
두 번째 질문은 쓰려다 길어서 안 쓰겠단다. (아이는 아직 한글 쓰는 게 익숙하지 않다.) 내 옆에서 편지를 쓰고 그림을 그려 넣으면서도 아이는 그게 정말 어떻게 가능한 거냐고 내게 물었다.
물론 산타가 존재한다는 것에는 일말의 의심도 없다. 12월 초, 누나가 있는 유치원 친구가 "산타는 없고 선물은 엄마 아빠가 주는 것"이라는 얘길 듣고는 웃으며 말도 안 되는 얘기라고 하나하나 반박하고 집에 돌아온 아이다.
그러면서도 동물에 조예가 깊은 자신조차 첫 번째 궁금증, ‘사슴인 루돌프가 어떻게 하늘을 하는가?’에 대한 궁금증이 풀리지 않는다. 사슴이 새도 아니고.
두 번째 궁금증, 밤사이 산타가 온 세상 어린이들에게 선물을 나눠주는 것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던 아이는 아르키메데스가 "유레카!"를 외치듯 대단한 걸 깨달았다며 말했다.
"지구의 반이 밤일 때 다른 쪽은 낮이잖아! 그럼 산타 할아버지가 밤 동안 지구 반에 선물을 배달하고, 나머지 반은 그쪽이 밤이 됐을 때 배달하는 거네! 그럼 하루 동안 배달할 수 있지!"
'오 대단한데!'하고 생각했다. 지구의 낮과 밤이 생기는 자전으로 산타 할아버지의 선물 배달 문제를 해결하다니! 7세 아들은 반나절로는 부족하지만, 하루로는 충분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쿠팡맨 한 명이 동네 하나를 커버하는 것조차 얼마나 힘든 일인지 깨닫기에는 7세란 나인 아직 어리니까.
마지막 궁금증, 산타 할아버지는 굴뚝이 없는 우리 집에 어떻게 들어오시는 걸까? 비밀번호를 누르시는 걸까? 창문으로 들어오시는 걸까? 산타 할아버지가 들어올 수 있다면 혹시 도둑(7세가 생각하는 가장 나쁜 사람)도 들어올 수 있지 않을까? 아이는 종종 그 생각을 했으나 크리스마스의 기쁨에 취해 답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그날 밤, 크리스마스를 맞아 아이들과 영화 한 편을 보았다. <크리스마스 연대기 1> (연희님의 추천 감사합니다^^> 내가 다 신이 날 정도로 재미있었다. 무엇보다 좋았던 건, 아이가 내내 갖고 있던 궁금증을 아주 영화적인 방법으로 대답해줬다는 것이다.
영화 속 산타와 루돌프는 상상했던 그대로였다. 풍채 좋고 풍성한 수염의 산타는 그렇다 치고, 자연스럽게 나는 루돌프를 보고 난 뒤, 아이는 루돌프가 나는 건 당연하다고 말했다. 날개가 있고 없고 그런 문제가 아니라, 그건 그저 루돌프니까 가능한 일이다.
하룻밤에 세상 모든 아이에게 선물을 나눠 줄 수 있는 이유에 대해서도 영화적으로 설득력있게 보여준다. 선물을 나눠 줄 때의 산타는 마법을 쓰는 것 같이 매우 빠른 것으로 말이다.
아이는 굴뚝이 없는 집에 사는 멕시코시티 아이의 집에 창문으로 선물을 배달하는 마지막 선물 배달 장면을 통해 산타 할아버지라면 굴뚝 없는 우리 집에도 창문을 통해 배달을 하겠구나 하고 생각하며 궁금증을 해결했다.
산타에 대한 합리적인 궁금증을 품는 아이를 보며 아이가 한 뼘쯤 큰 기분이다. 그 와중에 스스로 찾은 또는 영화를 보며 이해한 질문에 대한 답이 충분히 아이스러워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아이가 산타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면 아주 슬플 것 같다.
* 그 와중에 아직 <크리스마스 연대기 1>를 안 봤다면 아이와 함께 보실 것을 추천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