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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정 Apr 21. 2020

일 하고 싶은데 안 하고 싶다

일 / 시작하면서도 내 마음은 여전히 아이러니

일이 들어왔다. 둘째 아이를 갖고 임신 중기쯤 재택으로 하던 일을 그만뒀으니 3년 반쯤 만의 일이다. 마음으로는 오백 년쯤 된 것 같다.


같이 일하던 지인에게서 오랜만에 카톡이 울린 건 지난 금요일이었다. 결혼 소식을 전하실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란다. 지금은 회사를 옮겼다며 함께 일하던 사람 여럿이 그만뒀다는 소식을 전했다. 그리고 다른 차장이 옮긴 회사에서 사람이 필요한데 일을 해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재택근무에 전에 하던 일과 비슷하기에 일단 흔쾌히 알겠다고 했다. 자세한 얘긴 담당자와 하기로 했다.


그런데 담당자와 얘기해보니 어라! 이건 호락호락한 양이 아니다. 하루 8시간씩 꼬박 일해도 1년이 넘게 걸릴 분량이었다. ‘어! 내가 생각한 건 이 정도가 아닌데’ 사실 난 일을 하고 있는 안정감을 갖는 정도의 업무량을 생각했었다. 


일단 얘길 했으니 샘플 원고 작업을 해서 보내줬다. 그 메일을 보내면서도 마음은 반반이었다. 일을 하고 싶기도 했고, 안 하고 싶기도 했다. 


재택으로 적당히 일하면서 아이들을 돌볼 수 있으니 좋을 거라 생각했다. 그럼 난 더 이상 ‘주부’가 아닐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면서 돈도 벌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그런데 다른 한편으론 일을 하기 싫었다. 재택근무는 일하는 표시가 나지 않는다. 남편과 아이들이 집에 없을 때 일을 해야 하니 일을 일대로 하고, 집안일은 집안일대로 해야 한다. 전에 집에서 일할 때도 그랬다. 아이가 자는 시간에 일을 해야 했다. 남편은 퇴근하면 집에서 쉬지만, 나는 그 시간에 일을 하다니, 뭔가 손해 보는 느낌이었다.


아이들을 재운 뒤 작업한 내용을 메일로 보내며 에둘러 말했다.
“이건 개인이 할 수 있는 업무량이 아닌 것 같다. 나 혼자 하면 오래 걸릴 텐데 정말 괜찮겠냐?”라고.


다음날 답메일이 왔다. 하잔다. 그렇게 말했는데도 하자고? 그런데 급여 얘길 보니 무시할 수가 없었다. 어라? 열심히 해야겠는데….


출처 : https://www.freepik.com/

남편에게 일이 들어왔다니 얘기하니 엄청 좋아한다. 내게 일하라는 얘기 한 번 한 적 없는 남편이지만 아내가 출근하지 않고 하던 일로 돈도 번다니 좋나 보다. 요즘 부쩍 힘이 든다던 그였다. 내가 능력이 있다면 집에 눌러 앉히고 살림을 맡기면 참 잘할 사람인데 말이다.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라 했다. 나는 곧 노를 저으러 저 바다로 향하겠지. 나는 메일을 받으면서 그 일을 하게 될 거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일에 치여 망망대해에서 허우적대겠지. 바다에 뛰어드는 게 아니었어하고 후회도 하겠지. 알고 있다. 알면서 하는 거다.


하고 싶어서 쓰던 글과 돈을 벌기 위해 쓰는 글은 분명 다르다. 그간은 내가 쓰고 싶은 대로 맘 가는 대로 쓰면 됐다. 하지만 돈을 벌기 위해 쓰는 글은 그들이 원하는 업무량을 원하는 지시에 따라 해줘야 한다. 일로 컴퓨터를 붙들고 있으면 다시 이 글을 쓰는 것이 싫어질까 봐 걱정이다. 그래도 여태 내 글을 쓰며 참으로 좋았다. 그러니 일주일에 내 글 한 편 쓰는 일만큼은 꼭 붙들고 있어야지.


일을 할 때는 쉬고 싶고, 일 안 하고 육아만 하니 일이 하고 싶다. 근데 막상 일이 들어오니 또 안 하고 싶다. 지금도 일이 하고 싶은데 안 하고 싶다. 돈을 벌고 싶은데 안 벌고 싶다. 애만 키우고 싶다 가도 애만 키우긴 싫다. 그만 놀고 싶다가도 더 열심히 놀지 못한 것 같아 아쉽다. 아! 이 아이러니한 마음 같으니라고.


말도 안 되는 말이지만 지금 내 마음이 그렇다. 


시작이 언제나 활기차고 신나고 설레기만 할 수 있을까? 하고 싶으면서도 망설여지고 주저할 수도 있는 거지. 이렇게 아이러니한 마음에도 나는 일단 시작한다. 내일 걱정은 내일모레 하기로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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