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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정 Oct 06. 2022

아무거나 다 좋아 그런 거 말고

초밥 / 좋아하는 걸 좋아한다고 말하는 용기

모 포털 사이트의 도움말 리뉴얼 작업을 할 때의 일이다. 일하던 중 담당자가 바뀌었고, 서로 인사도 할 겸 점심식사를 하기로 했다. 


"점심 식사 메뉴는 뭘로 할까요? 양식, 한식, 일식, 중식 중 좋아하는 스타일이 있으신가요?" 그녀가 정중하게 물어왔다. 


예전의 나였다면 "저는 아무거나 다 좋아해요. 담당자님 드시고 싶은 거 드세요" 같은 두루뭉술한 대답을 했을 테지만, 언젠가부터 나는 그런 말은 하지 않는다. 실제의 나는 가리는 거 없이 진짜 다 잘 먹지만, 그중에서 가장 먹고 싶은 걸로 꼭 하나를 고른다. 


"이번 식사는 일식으로 할까요? 초밥 먹읍시다"

하고 답했다. 


우리는 일식 오마카세 집에서 만나 식사를 함께 했다. 그녀는 식사 중 내게 말했다. 보통 상대방에게 식사 장소를 물으면 아무거나 좋다고 대답해서 자기가 결정하는데, 딱 골라서 신선했다고. (칭찬인가? 아닌가? 물론 상관없지만)


종종 모임 장소를 정해야 하는 때가 있는데, 그럴 때도 나는 가능한 종류별로 식당을 추린 뒤 리스트를 만들어 참석자들에게 공유한다. 그럼 사람들의 대답은 크게 2가지로 나뉜다.


첫 번째는 "아무거나 다 괜찮아"라고 말하는 친구. 평소에도 배려심 많고 조심스러운 경우다. 이런 친구들은 뭘로 정해지든 불만 없이 따른다. 먹는 것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 부류도 여기에 속하더라.


두 번째는 식당 한 곳을 딱 찍어서 "여기 가자"라고 말하는 친구. 리스트에 원하는 곳이 없으면 다른 식당을 제시하기도 하며 적극적으로 의견을 낸다. 나는 보통 여기에 속한다. 소중한 사람들과 먹는 한 끼를 나는 고를 수 있는 가능한 가장 맛있는 음식과 함께 하고 싶다.


사람들이 '아무거나'라고 말하는 데는 이유가 있겠지. 상대방을 배려하는 의미가 있을 수 있고, 결정 장애가 있을 수도 있고, 정말 뭘 먹어도 상관없는 다 좋아하는 사람일 수도 있겠다. 


뭐가 더 좋다 나쁘다는 말을 하려는 건 아니고, 그저 요즘의 나는 후자에 가까워졌다는 얘길 하려는 것뿐이다. 전에는 안 그랬는데 요즘의 난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고, 맛있는 것을 먹고, 하고 싶은 것을 하는 쪽으로 바뀌고 있다. 


돌이켜 보면 예전의 난 그런 사람이 못되었다. 어린 시절의 나는 뭔가 좋아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갖고 싶은 걸 갖고 싶다고 말해본 적이 별로 없다. 부모님 사정을 뻔히 아는데 그걸 사달라고 말해도 아마 사주지 못하고 마음만 아프실 거란 걸 잘 알았기에 포기가 쉬웠다. 


그래서 커서도 내가 좋아하는 것을 갖는데 서툴렀다. 그걸 말하면 내가 욕심을 부리는 것 같아서 '괜찮다' 거나 '아무거나'라는 말로 대신했다. 


"나는 초밥이 먹고 싶어"라고 말하게 된 건, 내가 번 내 돈으로 뭔가를 하게 되면서부터다. 많지 않은 내 월급으로 뭔가를 사면서 가장 효용성이 좋으려면 내가 좋아하는 걸 사고 먹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취향이 생기면서부터일 수도 있겠다. 주머니가 넉넉하지 않을 적 내겐 취향이랄 게 없었다. 내가 사고 싶은 게 아니라 살 수 있는 걸 사야 하니까. 


취향이란 걸 가지려면 보고, 먹고, 입고, 경험하면서 좋고 싫음이 쌓여야 하는데 그러기엔 그때의 내 경험치가 한없이 적었다. 경험이 쌓여 내 취향이 되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난 이제 점심에 "카이센키친 가자"라든가, "나는 메가커피는 안 먹어"라든가, "나는 ㅇㅇㅇ작가 책은 안 읽어"라고 말할 수 있는 취향이 생겼다. "아무거나 다 좋아"보다는 "난 이게 좋아"라고 말하는 게 내가 나를 더 좋아하는 방법이라 생각하니까. 


다시 한번 말하지만, 그냥 내가 그렇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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