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브라이언 메이였다. 퀸의 기타리스트 말이다. 꼬불꼬불 긴 곱슬머리는 그대로였지만, 백발이 성성했다. 그도 그럴 것이 벌써 일흔 살이 넘지 않았나.그런 그를 항공우주 속보를 전하는 KBS 뉴스에서 보게 되다니, 뭐 이런 신선한 조합이 다 있지?
뉴호라이즌스호는 시속 5만 1,500km의 속도로 13년째(지금은 14년째 겠구나) 태양계 끝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그 와중에 소행성 울티마 툴레를 발견한 거다. 이는 초기 행성의 형성 물질을 처음 근접해서 본 첫 사례라고 한다. 이 뉴스에 보헤미안 랩소디의 브라이언 메이가 나오고 있는 거다.
지금도 여전히 멋들어지게 기타연주를하는 그가 NASA에서태양계와 우주와 행성 형성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퀸과 기타, 그리고 항공우주의 접점은 도대체 어디란 말인가?
2019년 1월 3일 KBS 뉴스 <눈사람 '울티마 툴레'… 행성 형성의 비밀 밝히나?>
불행히도 나는 퀸의 노래를 듣고 자란 세대가 아니다. 프레디 머큐리의 존재 정도만을 어렴풋이 알고 있을 뿐이다.2018년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가 크게 흥행했고, 다행히도 나는 퀸의 음악을 듣게 됐다. 비록 프레디 머큐리는 없을지언정 퀸과 동시대를 살고 있다는 건 정말크나큰영광이라고 생각했다. 그즈음 집에서는 매일 퀸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브라이언 메이가 왜 우주탐사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는지 궁금해구글링에 들어갔다. 그는 대학교에서 우주물리학을 전공한 천문학 박사로, 끊임없이 항공우주 연구에 참여해왔다. 그런 그는 영국 리버풀존무어스대학교에서 총장을 지내기도 했다. 한 시대를 흔들어 놓은 기타리스트가 항공우주학 박사이며, 대학교 총장을 지냈고, 여전히광활한 우주를 연구하고 있다니! 뭐 이런 이상적인 이력이 다 있어!
불현듯 1년도 더 지난 뉴스에서 본 브라이언 메이가 떠오른 건 며칠 전 뜬금없는 곳에서 만난 루시드 폴 때문이다. 아이 책을 찾다 만난 <당신은 빛나고 있어요>란 유아 아트북의옮긴이가 바로 루시드 폴이었다.
그는 음악계에서 꽤나 유명한 사람이다.편한기타 소리와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팬이 많았다. 그의 이름이 알려졌을 때 그의 학력도 함께 주목을 받았다. 서울대 나온 가수가 한둘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서울대가 개나 소나 갈 수 있는 학교는 아니니까. 그런 그는 이미 몇권의 책을 낸 작가이기도 하다.
음악으로도 꽤 인정을 받던그는 졸업 후 공부를 하겠다며 스위스로 떠났고, 로잔연방공과대학교에서 생명공학박사학위를 취득하고 돌아왔다. 귀국 후 다시 방송 활동을 하길래 이제 다시 음악을 하나 싶었다.
2015년 12월 CJ O쇼핑에서 음반과 감귤 세트를 판매한 루시드 폴
그런 그는 돌연 제주도로 내려가 감귤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2017년 그가 새로운 앨범을 내놓으면서 홈쇼핑에서 감귤을 판 이야기는 당시에도 큰 화제가 됐다. 새 앨범을 자신이 수확한 감귤과 패키지로 내놓자 방송 시작 10분 만에 매진이 돼버렸다.이 사건은 앨범 홍보 역사상 두고두고 회자되는 흥미로운 사건으로 기록됐다.
그런 그가 꾸준히 아이 책을 번역하고 있었다. <당신은 빛나고 있어요>, <책 읽는 유령 크니기>, <마음도 변역이 되나요> 등 보통 유럽 그림책 작가의 것이었다.가수에서 학자로, 학자에서 농부로, 농부에서 번역가로 그러면서도 그는 여전히 글을 쓰고 노래한다.
흔히들 효율적인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지금 하는 일이 내 일에 경력이 되어 그 일을 더 잘 해낼 수 있기를 바라며 더 나은 일자리를 찾고자 한다. 나도 그렇다. 그렇게만 따지면, 브라이언 메이나 루시드 폴 같은 사람은 계속 공부를 했거나 기왕 가수를 시작했다면 계속 음악을해야 맞을 것 같은데,그들은 그런 흔한 정답 같은 삶을 살지 않는다. (정답이 뭐냐고 묻는다면 그건 또 생각을 해볼 문제지만.) 보통의 사람들은 이미 손에 쥔 것이 있어 새로운 것을 잡을 수가 없다. 새로운 도전보다는 현재를 유지함이 내게도 편했음을 고백한다.
효율성 따위 생각하지 않고, 그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좋겠다. 지금의 것을 갖기 위해 노력한 수고로움 따위를 아까워하지 않고 새로운 길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는 무모한 사람이라면 좋겠다.
비효율적인 삶을 살려면 용기가 필요할 테지.
용기를 낼 수 있는 무모함이 필요할 테지.
그 용기와 무모함에 앞서 더 중요한 것은 내 손에 쥔 것을 내려놓을 만큼 하고 싶은 게 있어야 한다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