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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정 Aug 07. 2020

브라이언 메이와 루시드 폴

퀸 / 비효율적인 삶에 대한 동경

분명 브라이언 메이였다. 퀸의 기타리스트 말이다. 꼬불꼬불 긴 곱슬머리는 그대로였지만, 백발이 성성했다. 그도 그럴 것이 벌써 일흔 살이 넘지 않았나. 그런 그를 항공우주 속보를 전하는 KBS 뉴스에서 보게 되다니, 뭐 이런 신선한 조합이 다 있지?


뉴호라이즌스호는 시속 5만 1,500km의 속도로 13년째(지금은 14년째 겠구나) 태양계 끝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그 와중에 소행성 울티마 툴레를 발견한 거다. 이는 초기 행성의 형성 물질을 처음 근접해서 본 사례라고 한다. 이 뉴스에 보헤미안 랩소디의 브라이언 메이가 나오고 있는 거다.


지금도 여전히 멋들어지게 기타 연주를 는 그가 NASA에서 태양계와 우주와 행성 형성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퀸과 기타, 그리고 항공우주의 접점은 대체 어디란 말인가?


2019년 1월 3일 KBS 뉴스 <눈사람 '울티마 툴레'… 행성 형성의 비밀 밝히나?> 

불행히도 나는 퀸의 노래를 듣고 자란 세대가 아니다. 프레디 머큐리의 존재 정도만을 어렴풋이 알고 있을 뿐이다. 2018년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가 크게 흥행했고, 다행히도 나는 퀸의 음악을 듣게 됐다. 비록 프레디 머큐리는 없을지언정 퀸과 동시대를 살고 있다는 건 정말 크나큰 영광이라고 생각했다. 그즈음 집에서는 매일 퀸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브라이언 메이가 왜 우주탐사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는지 궁금해 구글링에 들어갔다. 그는 대학교에서 우주물리학을 전공한 천문학 박사로, 끊임없이 공우주 연구에 참여해왔다. 그런 그는 영국 리버풀존무어스대학교에서 총장을 지내기도 다. 한 시대를 흔들어 놓은 기타리스트가 항공우주학 박사이며, 대학교 총장을 지냈고, 여전히 광활한 우주를 연구하고 있다니! 뭐 이런 이상적인 이력이 다 있어!


불현듯 1년도 더 지난 뉴스에서 본 브라이언 메이가 떠오른 건 며칠 전 뜬금없는 곳에서 만난 루시드 폴 때문이다. 아이 책을 찾다 만난 <당신은 빛나고 있어요> 유아 아트북 옮긴이가 바로 루시드 폴이었다.

그는 음악계에서 꽤나 유명한 사람이다. 편한 기타 소리와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팬이 많았다. 그의 이름이 알려졌을 때 그의 학력도 함께 주목을 받았다. 서울대 나온 가수가 한둘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서울대가 개나 소나 갈 수 있는 학교는 아니니까. 그런 그는 이미 몇 권의 책을 낸 작가이기도 하다.


음악으로도 꽤 인정을 받던 그는 졸업 후 공부를 하겠다며 스위스로 떠났고, 로잔연방공과대학교에서 생명공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돌아왔다. 귀국 후 다시 방송 활동을 하길래 이제 다시 음악을 하나 싶었다.

2015년 12월 CJ O쇼핑에서 음반과 감귤 세트를 판매한 루시드 폴 

그런 그는 돌연 제주도로 내려가 감귤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2017년 그가 새로운 앨범을 내놓으면서 홈쇼핑에서 감귤을 판 이야기는 당시에도 큰 화제가 다. 새 앨범을 자신이 수확한 감귤과 패키지로 내놓자 방송 시작 10분 만에 매진이 돼버렸다. 이 사건은 앨범 홍보 역사상 두고두고 회자되는 흥미로운 사건으로 기록됐다.


그런 그가 꾸준히 아이 책을 번역하고 있었다. <당신은 빛나고 있어요>, <책 읽는 유령 크니기>, <마음도 변역이 되나요> 등 보통 유럽 그림책 작가의 것이었다. 가수에서 학자로, 학자에서 농부로, 농부에서 번역가로 그러면서도 그는 여전히 글을 쓰고 노래한다.


흔히들 효율적인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지금 하는 일이 내 일에 경력이 되어 그 일을 더 잘 해낼 수 있기를 바라며 더 나은 일자리를 찾고자 한다. 나도 그렇다. 그렇게만 따지면, 브라이언 메이나 루시드 폴 같은 사람은 계속 공부를 했거나 기왕 가수를 시작했다면 계속 음악을 해야 맞을 것 같은데, 그들은 그런 흔한 정답 같은 삶을 살지 않는다. (정답이 뭐냐고 묻는다면 그건 또 생각을 해볼 문제지만.) 보통의 사람들은 이미 손에 쥔 것이 있어 새로운 것을  수가 없다. 새로운 도전보다는 현재를 유지함이 내게도 편했음을 고백한다.


효율성 따위 생각하지 않고, 그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좋겠다. 지금의 것을 갖기 위해 노력한 수고로움 따위를 아까워하지 않고 새로운 길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는 무모한 사람이라면 좋겠다.


비효율적인 삶을 살려면 용기가 필요할 테지.

용기를 낼 수 있는 무모함이 필요할 테지.

그 용기와 무모함에 앞서 더 중요한 것은 내 손에 쥔 것을 내려놓을 만큼 하고 싶은 게 있어야 한다는 거다.


2019년 12월에 발매된 루시드 폴의 앨범 <너와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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