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땐 왜 그랬을까

1. 여성이 된 아이

by 루달


우리 동네는 시간이 아니라
라면 냄새로 하루가 넘어갔다.
해 뜨면 신문,
해 지면 삼양.
옆집에서 물 올리는 소리 나면
10초 뒤에 계란 깨지는 소리 톡
그다음 30초 뒤에
“아… 또 라면이구나”
창문 닫아도 소용없었다.
라면 냄새는 미세먼지처럼 국가 단위로 퍼졌다.


한 집,
건너 집,
또 건너 집.
전부 라면.
메뉴 선택권은 없었고
위장은 이미 독재 정권이었다.

우리 동네엔 귀여운 강아지도 없었다.
대신 군인 아저씨들이 벽에 기대서 담배 피웠다.
벽를 지키는 건지
폐를 지키는 건지
아니면 그냥 집에 가기 싫은 건지
아무도 몰랐다.


마당 한가운데에는 빨간 글씨로 개집 이라고 써 있었는데
개는 없고 인간만 들락거렸다.
나는 그 앞에 서서
‘영양탕’ 간판을 올려다보며 진지하게 고민했다.
'도대체 얼마나 맛있으면… 이름이 영양일까?'

가까이가서 냄새를 맡았다.종이 박스와 깻잎을 삶은

향이었다.어른들한테 나중에 들었다.

개고기라는것을...



하루는 흔한 운동화 말고
나만의 신발을 갖고 싶어져서
두꺼운 도화지로 신발을 만들었다.
풀칠하고, 접고, 말리고,
마르면 다시 붙이고,
그래도 신고 등교했다.
체중을 못 이겨서
중간에 바닥이 빠졌고,
나는 종이썰매 타듯 교실로 밀려 들어갔다.


다음 날도 또 새로운걸 신고싶었다.
옷핀으로 신발을 고정했다.
패션인지, 실험 정신인지
바닥에 질질 끄는 소리가 좋아서
멈출 수가 없었다.


양말 통에 일일이 짝을 찾기 힘들어

짝짝이로 신었는데

두 가지 색을 같이 봐서 질리지가 않았다.


짝 없는 양말들끼리라도
서로 의지하며 살아야 했다.
나처럼.



학교에서 선생님이 나오라고 하면

나훈아 아저씨에 '잡초’를 부르곤 했다.


“아~무도 찾지 않는 바으람~부는 어~언덕에"


그 노래를 부를 때는 부끄러운 척하다가

목 근육을 허험! 기절시킨 다음에,

등이 간지러워 어깨를 팍! 흔드는 액션을 취했다.

손은 자동 반사적으로 공중 파리 잡듯 낚아채며 불렀다.


나는 꼭 어른 흉내를 내고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앙코르송이 나오면 영악한 균형으로

트로트 다음엔 발라드 이선희 'J에게'를 불렀다.


"줴이~~ 난 너를 못 잊어. 줴~이 난 너를 사랑해"


사랑이라곤 주일학교에서

배운 믿음, 소망, 사랑! 밖에 모르는데도,

특화된 바이블레이션 미간만으로

반은 먹고 들어갔다.

'잘한다 잘한다'부추기면 다루기도 쉽고,

열정이 앞서는 아이라 뭐든 불사 질렀다.



그땐 왜 그랬을까

말이 씨가 된다고 이것저것 아무것도 없는 잡초라니

아이 루달아 '보랏빛 향기'불렀으면 미래가 달라졌지.



한겨울에도 내복을 입지 않는다.

버릇처럼 그때의 자유를 입고 다녔다.

잘 때는 몸을 하도 요란하게 자서, 모기도 안 물렸다.

엄마는 내 방을 만들어 줬고 독립을 시작했다.


' 난 다리밑에서 주워왔나 보다.' 생각했다.


늘 베란다에 식히던 살얼음 낀

노란 주전자째 들고 나와 보리차를 자주 마셨다.

마루 TV에서 광고가 나온다.

'감기조심하세요. 감기엔 ~판콜 A!'

아랑곳하지 않았다.

광고 끝나면 외계 파충류 드라마 'V'봐야 한다.


얼어 죽어도 아주 시원한 것,

얼죽아 원조였나 봅니다.


방과후 학교 앞 분식집의 기름냄새가

책가방을 잡아끌어서 매일 핫도그를 사 먹었다.

겉에 케첩을 성스럽게 핡고, 껍질을 먹는다.

절대 가운데 소시지는 건드리면 안 되고 아껴야 한다.

맨 나중에 시간이 느리게 가듯

소시지를 먹어야 미식가라 할 수 있다.

분식점 아줌마는 미소를 풍기며 날 '케첩소녀'

애명도 지어줬다. 왜인지, 자랑스러웠다.



하필이면 내 생일날,

소파 흰 방석에 케첩 같은 게 보였다.

그날은 생일이라 핫도그를 쉬었는데도 불길했다.

난 죽을병인 줄 알았다.

유머차탄 이후 처음으로 고민이라는 걸 해봤다.

내 고민을 귀담아 줄 만한

10살 차이 막내고모에게 전화했다.

고모는 내 걱정과 달리 안심시키면서도 할 말 다해줬다.


“네가 하두 핫도그를 많이 먹으니까 일찍 하는 거야!

이제 진짜 어른이 된 거네? 하하하 ”


전화기를 뚫어 귀에 침이 묻을 듯 크게 웃는 소리에

큰 병은 아니구나 안심했고 성교육도 처음 받았다.

당최 무슨 말인지 이해도 안 됐지만,

내 머릿속은 애들보다 먼저 어른이 됐다는 사실을,

자랑해야겠다는 다짐뿐이었다.

담날 학교 가서 얘기했는데 친구들은 내가 거짓말인 줄 아는 눈빛 같았다.

이것 참... 보여줄 수도 없고 분했다.


'아직 나보다 어린것들이'


집에 와서 거울을 보니 '내 다리 내놔'

전설의 고향 나오는 눈동자였다.

초경은 생각하는 것만큼 콧물정도의 증상이 아니었다.

막 신경 쓰이고 꿀렁꿀렁하고,

핫도그를 두 개 먹은 것도 아닌데 배가 아팠다.

하지만 난 어른이 됐으니까 참아야겠다.



루달 아이야 그때 잘 참아 줘서 고마워.

그 인내로 이어져 우량아 아들도 낳았어.

엄청난 식탐은 아빠가 돌아가신 자리의 결핍을 대신 채우려던 거였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