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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땐 왜 그랬을까

1. 여성이 된 아이

by 루달


1986년 아시아 게임으로 나라가 흥분 됐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직 세상을 잘 모르는 초등학생이다.

서울 광진구 자양동. 그때는 성동구 관할 시절이다.


옆집에서 냄비에 라면 끓일 때는,

계란을 모서리에다 '툭' 터지는 소리까지 들렸다.

창문으로 밀고 들어오는 삼양라면 냄새로,

한 집, 건너 또 한집

메뉴가 통일이 됐었다.


이웃집 마당에는 빨간 글씨로 '개집' 쓰여있었다.

사람 마음을 흔드는 귀여운 강아지들은 없었고,

이등병 군인 아저씨들이 보초서는 느낌이었다.


난 이것저것 호기심 덩어리라 '영양탕'간판 앞에서

'도대체 얼마나 맛있길래 영양?'

이까지 쑤시며 나오는 아저씨들이 부러웠다.

그 가게를 생각만 해도, 깻잎과 종이 박스를 우려낸

냄새가 도착해 버린다.



나는 늘 하고 싶은 일에만 몰두했고,

그게 학교생활의 전부였다.

하루는 흔한 신발들보다 나만의 것을 갖고 싶었다.

두꺼운 도화지로 신발을 만들고 뿌듯해하며 등교했다.


체중에 못 이겨 뜯어져서 깽깽이로 교실까지 갔고,

다음날은 나름 머리 쓴다고 옷핀을 꼬메기도 했다.

바닥에 질질 끄는 재미는,

스케이트 타듯 멈출 수가 없었다.


양말 통에 일일이 짝을 찾기 힘들어 짝짝이로 신었는데 오~두가지색을 같이 봐서 질리지가 않았다.

친구들이 웃어주니까 줄무늬 양말도 사달라고 졸랐다.

우리 반 친구들은 약 올리는 게 없이 더 좋아했다.


그땐 왜 그랬을까

두 가지 색이 좋아서 양말을 짝짝이로 신었다니

짬짜면에 원조가 아닐까요?

지금 쓰면서도 창피해서 혈압이 오릅니다.



학교에서 선생님이 나오라고 하면

나훈아 아저씨에 '잡초’를 부르곤 했다.


“아~무도 찾지 않는 바으람~부는 어~언덕에"


그 노래를 부를 때는 부끄러운 척하다가

목 근육을 허험! 기절시킨 다음에,

등이 간지러워 어깨를 팍! 흔드는 액션을 취했다.

손은 자동 반사적으로 공중 파리 잡듯 낚아채며 불렀다.


나는 꼭 어른 흉내를 내고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앙코르송이 나오면 영악한 균형으로

트로트 다음엔 발라드 이선희 'J에게'를 불렀다.


"줴이~~ 난 너를 못 잊어. 줴~이 난 너를 사랑해"


사랑이라곤 주일학교에서

배운 믿음, 소망, 사랑! 밖에 모르는데도,

특화된 바이블레이션 미간만으로

반은 먹고 들어갔다.

'잘한다 잘한다'부추기면 다루기도 쉽고,

열정이 앞서는 아이라 뭐든 불사 질렀다.



그땐 왜 그랬을까

말이 씨가 된다고 이것저것 아무것도 없는 잡초라니

아이 루달아 '보랏빛 향기'불렀으면 미래가 달라졌지.



한겨울에도 내복을 입지 않는다.

버릇처럼 그때의 자유를 입고 다녔다.

잘 때는 몸을 하도 요란하게 자서, 모기도 안 물렸다.

엄마는 내 방을 만들어 줬고 독립을 시작했다.


' 난 다리밑에서 주워왔나 보다.'


늘 베란다에 식히던 살얼음 낀

노란 주전자째 들고 나와 보리차를 자주 마셨다.

마루 TV에서 광고가 나온다.

'감기조심하세요. 감기엔 ~판콜 A!'

아랑곳하지 않았다.

곧 있으면 외계 파충류 드라마 'V'봐야 한다.


얼어 죽어도 아주 시원한 것,

얼죽아 원조였나 봅니다.


방과후 학교 앞 분식집의 기름냄새가

책가방을 잡아끌어서 매일 핫도그를 사 먹었다.

겉에 케첩을 성스럽게 핡고, 껍질을 먹는다.

절대 가운데 소시지는 건드리면 안 되고 아껴야 한다.

맨 나중에 시간이 느리게 가듯

소시지를 먹어야 미식가라 할 수 있다.

분식점 아줌마는 미소를 풍기며 날 '케첩소녀'

애명도 지어줬다. 왜인지, 자랑스러웠다.



하필이면 내 생일날,

소파 흰 방석에 케첩 같은 게 보였다.

그날은 생일이라 핫도그를 쉬었는데도 불길했다.

난 죽을병인 줄 알았다.

유머차탄 이후 처음으로 고민이라는 걸 해봤다.

내 고민을 귀담아 줄 만한

10살 차이 막내고모에게 전화했다.

고모는 내 걱정과 달리 안심시키면서도 할 말 다해줬다.


“네가 하두 핫도그를 많이 먹으니까 일찍 하는 거야!

이제 진짜 어른이 된 거네? 하하하 ”


전화기를 뚫어 귀에 침이 묻을 듯 크게 웃는 소리에

큰 병은 아니구나 안심했고 성교육도 처음 받았다.

당최 무슨 말인지 이해도 안 됐지만,

내 머릿속은 애들보다 먼저 어른이 됐다는 사실을,

자랑해야겠다는 다짐뿐이었다.

담날 학교 가서 얘기했는데 친구들은 내가 거짓말인 줄 아는 눈빛 같았다.

이것 참... 보여줄 수도 없고 분했다.


'아직 나보다 어린것들이'


집에 와서 거울을 보니 '내 다리 내놔'

전설의 고향 나오는 눈동자였다.

초경은 생각하는 것만큼 콧물정도의 증상이 아니었다.

막 신경 쓰이고 꿀렁꿀렁하고,

핫도그를 두 개 먹은 것도 아닌데 배가 아팠다.

하지만 난 어른이 됐으니까 참아야겠다.



루달 아이야 그때 잘 참아 줘서 고마워.

그 인내로 이어져 우량아 아들도 낳았어.

엄청난 식탐은 아빠가 돌아가신 자리의 결핍을 대신 채우려던 거였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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