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 구경
" 라이커 버 진 ~터 치⋯⋯"
1987년.
마돈나의 ‘Like a Virgin' 노래가 흘러나왔다.
금단의 열매를 맛본 듯, 패션에 눈을 뜨기 시작했다.
사촌 언니는 ‘여학생’ 잡지 카메라 기자였다.
덕분에 난 잡지 공짜로 보고, 공연 티켓도 얻어걸렸다.
심지어 이번엔 토요일 명동 구경까지 데려가기로.
전날엔 마음이 흥분해서 몇 번이나 옷을 입어봤다.
근데 옷들이 죄다 작아서 정수리에 땀만 차고,
거울 속 난리는 더 심각했다.
결국 몰래 안방에 들어갔다.
엄마가 자주 안 입는 긴 코트를 가져왔다.
내 방문을 잠그고
가위로 반을 싹둑 잘랐다.
입어 봤더니,
어깨 뽕은 거의 무기급이다.
실밥은 죄다 튀어나왔지만,
왜인지 몰라도 나 혼자 멋있는 척하고 있었다.
그러나 우리 집에는 귀신보다 빠른 탐지기가 있었다.
엄마가 방 문을 '쾅쾅쾅' 두드렸다.
“야! 당장 문 열어! 내 코트 어쨌어!”
엄마는 반이 찢어진 옷을 보시고,
기겁을 하시며 버리라고 하셨다.
그러면서 우리 집은 아들, 딸이 바뀌었다니,
사람새끼가 아니라느니, 가진 야단을 다 먹었다.
한참 후, 지갑에서 5만 원을 꺼내서 건네주셨다.
“이상한 푸데자루 옷 사지 말고!!”
엄마의 훈계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내가 만든 작품 옷이 아른 아른 거릴 뿐.
다음날, 버리라고 했던 어깨뽕 옷을 입고 나갔다.
명동에 도착하자 다른 세계가 펼쳐졌다.
어지러운 간판들, 멋쟁이 선글라스.
난 리어카에서 선글라스를 샀다.
태어나서 처음 껴 본 세상은,
까만 연탄광이었다.
사촌 언니는 2층 경양식집으로 델구가서 주문했다.
곧 수프 나오고, 돈가스, 빵.
난 처음 나이프를 잡았다.
손가락 두 개가 날아갈 것 같아서 긴장만 했다.
다 먹고 나니 직원이 다가와 물었다.
“후식은 어떤 걸로 하시겠습니까?”
인생 첫 공식 면접 같았다.
언니가 선택해 준 파르페엔 작은 우산이 꽂혀 있어서,
엘리자 베스 여왕이 된 기분이었다.
거리로 나오니 형광색 옷들이 나를 유혹했다.
‘이거 입고 학교 가면 애들이 탄성을 지르겠지’
명동 의류 가서 마네킹에 걸어있는 옷을 잔뜩 샀다.
문제는 집에 도착해서였다.
엄마는 뽕 달린 입은 옷을 보더니,
" 그지 새끼냐? 벗어! 세탁소 갖다 주게!"
그러더니 또 얼마 남았냐 길래,
솔직히 말했다.
“500원…”
“야… 그 돈으로는
치약 뚜껑도 못 사 온다, 인간아"
또, 내가 사 온 형광색 티셔츠를 뺏어 보더니,
“네가 반딧불이니? 트럭으로 줘도 안 입겠네!”
그러거나 말거나
얼른 내 방에 사 온 옷을 입어 봤다.
아뿔싸!! 죄다 작았다.
목 하고 팔만 들어갔고,
어깨에서 시간이 끊겼다.
어둠 속에서 계속 권투만 했다.
입는 것보다 벗는 게 더 힘들다는 도를 닦으며.
사촌 언니가 입어보고 사라는 걸
괜히 고집 피워서... 밤새 후회했다.
다음날 일요일.
난 교회에서 성가대 반주를 맡았기에,
조직옷을 입어야 했다.
역시 나에게는
커다란 하얀 가운이
가장 편했다.
-큰 껍데기는 오고
작은 껍데기는 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