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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ul Apr 14. 2019

( )때문에 죽지 않았다.

= ()가 나를 살렸다.

예전에 자살사고에 의해 힘들 때 하루씩 하루씩 더하자는 얘기를 한 적이 있다. 그렇게 하루씩 연장하다 보면 삶이 된다고. (https://brunch.co.kr/@ruddb1155/164  <-얘다)

그러나 우울증 혹은 공황장애 아니 그런 정신병이 없다고 하더라도, 살다 보면 나에게 주어진 이 삶이란 것이 역겹게 느껴질 때가 있다. 평생 이런 삶을 살아야 하나, 하는 생각부터 당장이라도 죽을 수 있다는 생각까지. 위의 링크의 글은 말 그대로 이성적인 생각을 할 수 없는 ‘자살사고’에 빠져있을 때의 이야기고. 오늘은 모든 게 끔찍하고 막막하게 느껴질 때, 주변의 모두가 나를 괴롭히려고 안달 난 것만 같을 때. 나를 살려준 것들을 적으려고 한다.



1.  네가 울었기 때문에 죽지 않았다.


친구 A와는 고등학교 때 처음 만났다. A의 활발한 성격 덕에 음침하다는 소리를 듣는 나도 친해졌다. 졸업 한 지 몇 년이나 지났는데도 A에게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낸 것은 단순한 변덕이었다. (생각해보면 나는 항상 단순한 변덕으로 시작한 안부인사로 인연을 확고히 했다.) 사람 좋은 너는 몇 년 동안 나와 카톡을 일주일에 한 번씩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나에게 A는 나의 우울과 불행 등을 적나라하게 드러낼 정도로 깊은 친구는 아니었다. A에게도 그랬으리라. 우린 그저 만나서 안부인사와 몇 달 동안 쌓인 이야기만으로도 반나절을 훌쩍 보내곤 했으니. 


그래서 나는 A에게 더욱 미안하다. 친하긴 하지만, 깊은 얘기까지는 하지 않았던 너에게 나는 그만 아버지의 폭력에 대한 얘기를 토해내고 말았다. 정말 한 번도 말할 생각이 없었기에 나도 당황스러웠다.


“세상이 버틸만한 시련만 준다는데, 난 이 이상 버티지 않으려고. 이후에 더 버티기 힘든 일이 일어나면 미련 없이 죽으려고 해. ” 그 말을 하고 나서야 A가 조용히 울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너무 조용해서 우는 줄도 몰랐다.


 아 깜짝이야. 왜 네가 울어. 
몰라, 미안해 그냥, 내가 못나서 미안해.


그 흔한 훌쩍거림도 없는 우는 얼굴을 보고 생각했다.

난 죽을 수 없다.

A에게 직접 말로 하진 않았지만 A의 우는 얼굴을 보고 A에게, 세상에게 나에게 약속했다. 스스로 목숨을 포기하진 않겠다고.

A는 얼마나 무서웠을까. 그동안 멀쩡해 보이던 친구의 입에서 나온 불행은 얼마나 충격적이었을까. 물론 A도 나도 남의 삶과 자신의 삶을 분리할 줄 아는, 약간은 냉정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 날이 없었던 것처럼 우리는 여전히 가벼운 대화만 주고받는다.


사실 나는 여전히 힘들다. 돼도 안 되는 일들 뿐인데 어떻게든 해보겠다고 아등바등하고 밤에는 악몽을 꾸고 일어나서 아침에는 옷과 멀쩡해 보이는 겉가죽을 입는다.

모든 걸 포기하고 싶어 진다. 그때마다 A가 울던 순간을 떠올린다. A에겐 그 순간이 어땠을지 모르겠다. 너에겐 큰 트라우마가 아니었을까? 비겁하게도 나에게 그 순간은 크나큰 구원이었다. 어쩌면 억지로 세상에 태어나던 순간보다 더한 감동이다.  

아직 너에겐 얘기하진 않았다. 꽁꽁 숨겨두었다가 언젠가 네가 너 자신을 원망할 때 선물해주려고 한다. 네가 울어준 그 순간으로 살아가는 내가 있으니까 너는 멋진 사람이라고. 나는 너에게 구원받았다고. 그러니까 너는 대단한 사람이라고.

2.  편지 답장이 아직 안 와서 죽지 않았다.

언제 재미가 들렸는지는 모르겠는데, 작년까지 3년 정도 친구들과 이런저런 편지를 주고받았다. 가끔씩 깜짝 선물(간식들)과 함께 편지를 보내주던 친구들도 있었다. 그러나 B와는 정기적으로 오래 주고받았다. 구독 잡지 같은 기분이다. 그때는 몰랐는데, 짧게는 일주일 늦게는 한 달 안에는 오는 그 편지 한 통을 받기 위해 나는 죽음을 뒤로 미뤘다. 내용이 궁금하잖아! 카톡과는 다른 그게 있단 말이야. 그리고 편지라고 해도 글쓰기의 본격적인 시작이었다. 어쩌면 브런치를 하게 된 계기가 주고받던 편지였을지도.

우리의 편지는 아무 말 대잔치였다. 그래도 무언가가 나를 향해 오고 있으니까 나는 기다리는 자의 마음가짐으로 기다렸다. 언제든 그것을 받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물론 서로 바빠서 편지의 기간은 들쑥날쑥했기에 두근거리면서 기다리진 않았다. 그냥 언젠가 오겠지-하면 왔다. 편지가 오면 바로 답장을 적었다. 죽기 전에. 그렇게 3년 정도 살아 있었다.


3.  주변에 민폐 끼치기 싫다는 자존심 때문에 죽지 않았다.

어제 같이 웃으며 놀던 친구가 다음날 죽었다면 얼마나 충격적일까? 

나는 살아서도 여러 사람들에게 민폐란 민폐는 다 끼친 사람이다. 그런데 내가 죽으면 그 순간, 그 소식을 들은 사람들은 얼마나 당황스러울까. 그들이 나 때문에 괴로워하는 건 내 자존심이 용납하지 못 한다. 그저, 나의 죽음을 알게 된 사람들이 그 순간 얼마나 괴로워할지. 혹시 자신의 잘못이라고 답이 없는 사이클을 돌게 되진 않을지. 자신이 내 이야기를 조금이라도 들어줬으면 달라졌을지도 모른다고 자책하는 건 아닐까. 어쨌거나 쓸데없는 자존심이지만 민폐 끼치긴 싫다. 게다가 살아있으면 사과를 하든 오해를 풀든 할 텐데 죽었으니까 내가 해 줄 수 있는 건 없다. 그렇게 진저리를 치면서 살아있다.


 나는 주변에 사람이 없다. 친하다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은 전부 다른 곳에 있다. 운이 좋아야 한 달에 한번 얼굴 볼까 말까 하고 서로 바쁘면 카톡마저 며칠 동안 하지 못한다. 나의 우울증과 어쩔 수 없는 가족관계 등에 대해 진심으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주변에 없다는 얘기이다.  여하튼, 주변에 사람으로 북적거려도 언제든 차도로 뛰어들 수 있는 정신상태인데, 난  아예 유대감을 가진 사람이 주변에 없다. 날 이렇게 몰아세운 것도 (나를 포함한)  그런 나를 죽지 못하게 한 것도 사람이다. 그리고 위에 적은 3가지처럼, 의외로 삶은 별 것 아닌 것들로도 이어진다. 그러니까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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