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을 지켜보는 연습을 요리를 하면서 하고 있다.
어머니가 보내준 택배에는 부탁한 쌀과 참치캔뿐 아니라, 라면 두 개 과자와 젤리 각각 한 개씩, 카레, 짜장 가루, 김치, 그리고 딱 봐도 비싸 보이는 햄과 베이컨들이 들어 있었다. 젤리는 내가 워낙 집에서 자주 먹어서 그렇다고 쳐도, 과자는 자주 먹지 않았다. 아빠가 엄청난 고민 끝에 하나 넣은 듯한 옛날 과자. 그들은 내가 잘 지내길 바라며 나 또한 그들이 잘 지내길 바란다. 그러나 서로의 잘 지내는 청사진에 서로는 없다. 내가 그들을 견딜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제 그만 미안해하기로 했다. 그리고 날 내몰았던 그들이 미안해하는 것도 이젠 바라지 않는다.
햄을 썰었다. 찌개에 대충 넣고 싶었는데, 딱 봐도 구이용 비싼 햄이다. 프라이팬에 햄을 올렸다.
내가 만든 요리의 사진을 찍고 있다. 그 사진을 모으고 있다는 표현이 정확하려나? 내가 나를 챙겼다는 증거를 하나씩 모으고 있다.
물론 밥을 아예 사 먹는 선택지도 있다. 그런데 은근 그게 돈이 많이 들더라. 그리고 무엇보다 요리를 하는 동안은 많은 생각과 감정이 내 목을 조를 틈이 없었다. 많은 전문가들이 우울증인 사람들에게 괜히 요리를 추천하는 게 아니구나.
퀄리티는 낮지만 나의, 나에 의한, 나만을 위해 만들어진 요리가 가진 의미는 컸다. 요리가 좋은 이유는 내가 나를 챙기고 있음을 눈 앞에 제대로 존재하는 그릇 위의 무언가로 확실히 보여준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청소, 취미에 돈 쓰기, 심리상담이며 정신건강의학과며 나의 건강을 위해 뛰어다니기 다 했는데 요리만큼 확실하게 실감되는 '챙김'은 없었다. 물론 모두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나를 위한 발판들이 되어가는 것들인데, 요리가 그 시간과 실감이 압도적으로 짧을 뿐이다.
짧고 여러 번. 이런 것도 필요하구나, 길게 조금씩 해 주는 것이 있으면 짧게 여러 번 당연하게 오는 것도 있어야 한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다가오는 무언가를 표시하곤, 그것을 위해 시간을 보내고 그 사이를 달려갔다. 만약 소풍이 일주일 후라고 하자. 그러면 나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일주일 후면 소풍이다, 6일 후면 소풍이다.... 그러다가 그 전날에는 '내일이 지나면 이제 어떻게 하지?' 하는 생각에 잠을 못 이뤘다. 어려서 몰랐지만 지금 생각하니 그건 허무함이었다. 중간시험, 기말시험, 수능, 개강, 종강, 방학, 개강, 졸업 프로젝트, 졸업, 취업준비. 워낙 주변 상황이 우리에게 인내를 요구하고 "뭐만 끝나면", "뭐만 들어가면"하면서 디데이를 세워주긴 했다. 그래도 나의 경우는 좀 더 매니악했지.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으면 하루하루가 무서웠다. 끝나는 디데이가 다가오고 있으니까. 나는 일상을 살아가는 법을 몰랐다.
내가 가진 시계는 시한폭탄이 아니라 그냥 시계여야 한다. 그냥 돌아가는 게 당연하고 가끔 약을 갈아주고 가끔 고장도 나는 그런 시계 말이다.
사소한 감정 하나하나에 의문을 품고 놀라는 것이 우울의 시작이 아니던가. 그냥 흘러 보내고 딱히 놀라고 심장 졸일만한 일을 기다리지 않고 내일도 당연한 하루라면 자기 전에 무섭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아무 생각 없이 일정하게 절망도 희망도 그 어떤 감정도 해프닝도 전부 받아들이고 지나가 고를 반복해야 한다. 그렇게 시간이 익어간다. 나는 그걸 지켜보는 연습을 해야 한다.
사람들이 변하고 내가 변하고 또 하루가 가고 내일도 다르지 않을 하루이고, 그게 당연한 일상으로 시간이 익어가는 상황을 바라보면 된다. 나는 그냥, 바라보고 있다. 혼란스러워하는 나도, 의중은 모르겠지만 뭔가 해주고 있는 부모님도 그냥 지켜본다.(사실 그들이 하는 정성은 부모로서 당연한 것들이긴 하다) 그냥 지켜보는 연습을 하고 있다. 그래서 조금 낯설다. 나는 온 힘을 다해서 그들과 싸웠으며 도망쳤고, 하루하루 디데이를 세면서 무언가를 기다렸는데 지금은 학기가 끝나도 여전히 나는 이곳에서 하루하루를 보낸다.
취업준비도, 공부도, 하지 않으면서 정말 지나기는 시간을 아까워하지도 않으면서 일상을 살고 있다. 이런 삶의 방식은 처음이다. 그저 하루하루가 익어가고 시간이 익어가고 나는 가끔 그 시간과 순간을 기록하고 어머니와 전화를 하고 불안해하고 우울해하고 그것이 심해져서 잠을 못 이루고 또 어쩌다가 잘 자고 자격증 시험도 슬쩍 건드렸다가 지금 4학년인데 뭐 하는 거냐며 타박하는 동기들에게 기가 죽어서 또 불안해했다가 지금 할 수 없는 것들은 포기했다가........
베이컨일 수도 있고 계란일 수도 있다. 무엇이든 똑같은 접시에 옮겨져서 나는 그것을 사진으로 찍을 것이다. 내일이 아니, 적어도 1분 뒤의 순간이 무섭지 않을 때까지 얼마나 걸릴까? 이것도 결국 디데이를 세는 것이구나. 그만두자.
일상이란 너무나도 당연한 개념이 나에게 낯설다. 그러나 나는 시간이 익어가는 것을 지켜보면서 별 거 없는 일상을 지낼 것이고 그렇게 살아가다 보면 나는 부모님을 원망하고 그래도 미워할 수 없어서 절망스러웠던 이유만 기억하고 그 감정은 잊어버릴 것이고 무엇을 위해 나를 죽이려고 했는지도 기억을 못 하고 또 나 자신을 위해 프라이팬에 음식을 올려서 익히려고 한다. 동시에 시간도 익어간다.
++) 시간이 익어가는 것을 지켜보자, 부모님에 대한 시선과 혼란 그저 그대로 두고 그들도 그저 지켜보자, 자신의 마음을 분리시키며 지키자.... 모두 의사 선생님께 들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