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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ul Jul 30. 2019

아가, 왜 울어?

친절과 용기와 인성의 상관관계.

정신없는 하루였다. 지하철에서만 거의 2시간을 지낸 듯하다. 빠르게 가방을 정리하고 씻으러 가려는데, 가방에서 뭔가가 떨어진다.


툭.


비타민 캔디다. 전해주려다가 실패한 비타민 캔디다. 그걸 보고 나니까 까먹고 있던 오늘의 일이 기억 저편에서 고개를 빼꼼 든다.



그곳은 꽤나 큰 지하철역이었다. 나는 바쁘게 출구를 향해 걷다가 화장실이 가고 싶어 져서 반대로 돌아갔다. 역 기둥에 기대어 누군가가 울고 있다. 아주 어린아이는 아니었다. 키가 꽤 컸지만 아무리 나이가 많아보았자 중학생 정도일 여자아이였다. 사람 신경 안 쓰고 그냥 꺽꺽 울고 있다. 놀랐지만 말을 걸 용기가 나지 않았다. 친절을 베풀어보려다가 되레 당한 사례를 많이 봤기에 망설여졌다. 그런데 내 옆에서 들려오는 소리,

아가, 왜 울어.



"어디 아파?"


우리 엄마와 할머니 사이의 나이 때이실까. 여성분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마치 놀라면 "우악"하는 소리가 나오듯 아이에게 말을 걸었다. 나는 화장실로 갔다. 뒤에서 아이가 "아니에요. 엉엉"하면서 대화하는 소리가 들렸다. 말하는 소리를 들으니 확실히 어린아이였다.

화장실 앞의 자판기에서 나는 망설였다. 모른 척하고 물티슈를 쥐어주고 가면 괜찮지 않을까? 무슨 일인지 캐묻지 않고 그냥 그 정도만 해도 괜찮지 않을까? 그러면 내가 하루를 좀 덜 찜찜하게 보낼 수 있지 않을까?


한참을 망설인 끝에 자판기에서 물티슈와 비타민 사탕을 샀다. 그러나 돌아갔을 때, 그 아이는 이미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는지 뭔가가 해결된 모양이었고  절뚝거리며 다른 쪽으로 걸어갔다. 나는 머쓱하게 비타민 사탕을 들고 어정쩡하게 서있었다.

가던 길을 가자. 이건 내가 먹자. 그렇게 가방 안에 구겨 넣었다.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친절이란 무엇일까? 자기 자신이 아닌 남을 보고 자연스럽게 "울지 마."라고 말할 수 있는 내면의 단단함을 나는 아직 모르겠다.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기에 평생 모르고 살아갈 수도 있다.



어릴 때의 나는 잘 울었다.


속상하거나 자존심이 상하면 무조건 꺽꺽, 울었다. 그래서 나이 든 어른들에게도 미움을 많이 받았다. 그러나 길거리에서 울고 있으면 꼭 누군가가 말을 걸었다. 우산이 없어서 비를 그냥 맞고 있으면 우산을 씌워주는 사람들도 있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은 지금의 나보다도 훨씬 어린, 기껏해야 중학생이었을 언니 오빠들이다. 그래, 오늘 보았던 울던 그 아이 또래였을.


초등학생 저학년 때, 친구들과 수영장을 갔다. 그곳은 목욕탕처럼 옷장 키를 팔찌나 발찌처럼 차고 다니고 잃어버리면 벌금을 물었어야 했다. 그러나 어린아이들의 얇은 팔이나 발에, 워터 슬라이드 등으로 물살이 빠르고, 게다가 시끄럽고..... 그래서 아주 쉽게 그 키는 내 팔목에서 빠졌다. 친구들도 놓치고 키도 놓친 나는 그냥 그 자리에서 울어버렸다. 그러나 주변이 시끄러워서 내 울음소리는 묻혔다. 솔직히 내 울음소리도 나한테 안 들렸다. 그런데 누군가가 말을 걸었다.

 "왜 그래?"/ "왜 혼자 울고 있어?"

나보다 한 뼘 정도 키가 큰 아이들었다. 남자아이도 여자아이도 있었다. 나는 키를 잃어버렸다고 했고 그중 한 명이 나더러 키의 숫자를 물어보았다. 그 넓은 곳에서 어떻게 내 친구들과 내 키를 찾겠는가. 그런데 그들은 집단지성이었는지(?) 키를 찾았고 이젠 울지 마라며 내 팔에 키를 끼워주었다. 정신이 없어서 고맙다고도 못 했다. 그저 울지 말라는 소리에 울음을 그치고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친구들 무리에 합류했다.

지금의 나보다 10살은 어렸을 그 아이들도 오랜만에 내 기억 저편에서 고개를 빼꼼 들었다. 심리상담을 받을 때마다 나는 사랑을 받은 적이 없어서 힘들어하고 있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그러나 결국 이런저런 사랑과 친절과 배려가 한 뭉텅이가 되어서 나를 받쳐주고 있었다. 앞으로도 그러겠지.

세상은 너무나도 빠르고 격하게 바뀌어서. 내가 받을 것을 돌려줄 기회가 없는 세상이 되었다.

지나가다가 뜬금없이 뺨 맞기 너무 쉬운 세상인데. 뭐하러 뺨 맞을게 뻔한데 시도할 것인가. 나 또한 많이 바뀌어서 이제는 그들이 왜 우는지 궁금해하기도 전에, 내가 맞을 빰을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슨 일이냐고 자연스럽게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다.울음을 그치길 진심으로 바라고 도와주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전달 실패한 비타민 사탕은 쓰다. 아, 아니 시다. 그런데 쓰다.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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