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은 탈락은 이제, 보내주자.

취준생에게 가장 중요한 자세.

by chul

아무도 취업준비생에게 가장 중요한 게 무엇인지를 알려주지 않았다. 엄마랑 통화를 하면서 알았다. 앞으로 잘 될 거라는 동기부여나 희망보다 훨씬 중요한 자세가 있음을. 바로 ‘절망에 일일이 의미 부여하지 않는 것’이다. 비슷한 말로는 ,

그냥 잔말 말고 하던 거 해라, 일일이 연연하지 마라, 그냥 탈락은 흘려보내라 등등이 있다.


아주 구체적으로, 꼼꼼하게, 세분화되어서, 게다가 시간대별로, 우선순위까지 적혀있는 나의 스케쥴러. 그 스케쥴러에 ‘자소서’라고만 적혀있는 걸 봤을 때. 비로소 인정했다. 나는 지쳤고, 망가져가고 있음을.


앞으로 어떻게 될지, 자신이 없었고,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빽빽한 일정은 대충 쓴 ‘자소서’라는 글자처럼 엉망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 모든 절망은 나에게 스며들어서, 어떤 서류를 쓰든 간에 ‘어차피 탈락할 건데 왜 쓰는 거지’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이를 갈기 시작했고, 옷을 구겨 넣기 시작했고, 점점 머리가 맹해지며 본격적으로 우울증에 돌입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엄마와 통화하다가 이런 얘기를 들었다.

철경아, 일일이 의미를 부여하지 마.
떨어진 것에 왜 떨어졌는지, 지금 느끼는 감정이 얼마나 나를 갉아먹고 있는지, 절대로 몰입하지 마. 어쩌면 가짜 감정일 수도 있어. 그냥 흘려보내. 너에게 해로운 것들이 너에게 오래 남아있게 하지 마.

이 절망과 감정을 흘려보내지 않으면, 자기 연민의 늪에 빠지게 된다.


예전에, 처음 취업 준비를 시작했던 대학생 때, 하도 서류 탈락을 많이 해서 답답한 마음에 이미 탈락한 서류를 들고 컨설팅 선생님께 찾아갔다. 그러나 컨설팅 선생님은 아주 쌈빡하게

이미 떨어진 서류를 다시 보는 건, 의미가 없어요. 뽑힌 사람들도 왜 뽑혔는지 모를걸요,

라며 아직 지원하지 않은 서류를 봐주셨다.

그때 느낀 쿨워터 향은… 선생님이 이 한두 마디를 하는데 몇 초 되지 않았겠지만 그 몇 초에서 느낀 천지가 개벽하는 듯한 쾌활함은 잊을 수 없다.


시험이 아니기 때문에 떨어진 이유를 알 수 없다. 그렇기에 취업준비생에게 탈락은 그저 흘려버려야 할 존재였다. 그래도, 그래도 아프다. 지금처럼 취업난에는 특히. 특히(두 번이나 썼다.) 나처럼 ‘예전에는 서류 잘만 붙었는데~’라며 잘 나가던 과거에 빠져 사는 사람일수록.


버려야 한다. 그냥 기계처럼 쓰고, 적고, 풀고, 지원해야 한다. 그러면 취업에 성공하냐고? 그걸 알면 내가 아직 취준생 일리가 없다. 그냥 길어지는 이 시기에 취업준비생이 조금이라도 덜 괴롭게 살아갈 수 있는 자세에 대해서 생각을 해 봤다. 괴롭지 않을 리가 없으니까. 그렇다면 조금이라도 덜 괴롭게, 조금이라도 덜 아프게, 우는 밤의 횟수가 조금이라도 적도록. 그렇게 살아가고 싶다.


내가 취업 준비를 하면서 새로 알게 된 다른 하나는, 이것도 살아가는 과정이라는 사실이다.

다들 취준생, 취준생 하고, 취업은 언제 할 거니? 요즘 좀 어렵지? 당신은 우리 회사에 맞지 않습니다. 뭐 이런 얘기만 듣다 보니 내 인생에서 취업준비기간은 잠시 멈춤 같았다. 아니었다. 이 시간에도 내 인생은 흘러가고 있었고, 벌써 7월에 되었다. 3월의 내가 2번 서류 탈락한 사람이라면 지금의 나는 20번은 서류 탈락한 사람이 되었다. 꽤나 큰 차이다.


실패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는데, 그렇게 얻은 건 없었다. 그냥 너덜너덜한 나만 남았다. 그냥, 그냥 한다. 그냥 글 쓰고 그냥 시험 준비하고 그냥, 그냥. 탈락이란 단어는 여전히 눈이 시리도록 아프지만, 그렇게 보내준다. 최대한 끄집어내지 않으려고 한다. 그러면서 또, 할 일을 찾아서 한다. 그리고 활력이 되는 일도 찾는다. 지치지 않게. 도망갈 곳도 만들어놓으면서. 자소서를 쓰다가 글을 쓰고, 인적성을 풀다가 지치면 놀러 가고, 산책 가고, 맛있는 커피를 마시고. 친구들과 비싼 밥을 먹고, 가족에게 안부인사를 하고. 또 그렇게 노트북을 들고 취업공고 사이트에 들어간다. 그냥. 꾸역꾸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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