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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ul Dec 21. 2023

회피인들이여, 갈등과 불편함을 연습하라.

회피 시리즈 2ㅡ 갈등 회피

뜬금없지만 여러분, 갈등을 아십니까?
알겠죠, 뭐.
그러면 여러분은 갈등을 피하십니까?


엉망으로 일단 스케치


건강한 사람은 갈등을 피하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그 갈등을 쓸데없이 키우거나 축소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 크기에 맞는 정도로 에너지를 쓰고 대응한다고. 10만큼의 갈등에는 10만큼의 상처를, 100만큼의 갈등에는 100만큼의 대응을 한다고 한다. (상처를 받는 것은 사람마다 눌리는 버튼과 크기가 다르니 잠시 언급을 뒤로 미루자.)



의외로 나는 갈등을 회피하는 사람들을 많이 봐왔다.



그들은 자체를 성급하게 하거나, 함께 문제를 바라보는 것조차 부담스러워하고 도망갔다. 내 친구들 중 이런 이들이 있었는데, 문제에 대해 화를 내거나 의견을 제시하면 보통 "냅다 일단" 사과만 받게 된다. 대부분 그들은 친구나 지인의 영역이 좁은 사람들이라 ‘얘가 이런 걸 싫어하는구나, 내가 이 부분을 잘 못 했구나’가 아니라 ‘얘가 나랑 연락 끊으면 어떻게 하지? 내 친구(혹은 인맥)가 여기서 더 줄어들 수는 없어 일단 수습하자’식의 사과를 한다.


차라리 싸우는 게 낫다. ‘야 너 너무한 거 아냐!’

나는 그런 주변인들을 보며 갈등 회피를 하지 않겠노라고 마음먹었다. 그러나 최근에 인정했고 다시 도전 중이다. 뭔 말이냐, 나는 갈등 회피가 어쩌면 그들보다 더 있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갈등을 갈등대로 겪는 연습 중이다.




누군가가 나를 좋아한다면 100% 좋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음을 최근에 알았다.) 불편한 상황이 너무 싫었다. 하지만 말은 해야 했다. 내 상담 선생님의 표현을 빌리자면,


-5인 갈등 상황에서
-2만큼을 최대한 힘을 내어 말을 하되
그다음이 무서워서 +2를 해버린다.
그러면 내 의도가 나쁘지 않더라도 비꼬는 형식이 되어버렸다.

예를 들어, 친구와 약속을 확인하는데 친구가 기차표를 잘 못 잡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런데 친구가 되려 나더러 기차표를 잘 못 잡았다고 화를 낸다. 본인이 결제한 이력이 있는데도 막무가내다.
그럴 때 이전의 나는 이랬다.

알았어. 다시 결제하고 확인하자.
그런데 나도 네가 확인한 줄 알았는데, (-2)
그런데 뭐…한번 더 안 본 내 탓도 있지(+2)

+2를 하는 게 비꼬거나 비아냥거린 의도가 아니었고 그 갈등 상황을 무마하려는 것이었지만, 아마 상대방은 “뭐라는 거야? 비꼬는 거야?”라고 생각할 터이다.
-2만 했으면 어땠을까? 불편한 상황이 이어졌을 것이다. 그러나 +2를 급하게 해 버린 만큼 기분이 나빴을까?
물론, -2를 잘하는 방식도 필요하다. 지금의 나는 같은 상황에서 아래와 같이 이야기하려고 노력한다.
아니, 네가 결제한 거 아냐? 왜 나한테 화를 내냐 욘석아!(사실+장난스러운 말투)
네가 결제했잖아, 다시 봐봐. (그냥 담담하게 사실 말함)

등 등



이건 물론 친구사이뿐 아니라 업무, 상하관계에 따라 다르게 말해야 한다. 어떤 경우에는 아예 말하지 않는 게 정답일 때도 있다.(지랄 맞은 상사 밑일 경우)


어찌됐든,
저는 이 방법으로 손절이란 것을 거의 30년 인생만에 처음 ‘제가’했습니다. 나에게 나쁜 영향을 끼치던 친구들에게 정색이나 화를 담담하게 내었고, 그게 더 이상해지면 연락을 끊었다.

갈등을 피하는 것이 최선이지만, 갈등 회피를 위해서 쓸데없는 행동을 하거나 발언을 하게 되면 오히려 더 안 좋은 결과가 온다. 이 모두 자신이 나쁜 사람이 되기 싫거나, 1분이라도 불편한 상황 속에 있기 싫어서 벌어지는 일이다. 내가 그랬고, 사실 지금도 그렇다. 솔직히 나쁜 사람이 기꺼이 되거나 불편한 상황에서 희열을 이얏호우하고 느끼는 변태는 적다.


하지만 필요하다면 어느 정도 감수하는 것이 건강한 사람들이다. 나는 이걸 몰랐다. 왜냐면 나에게 타인과의 관계 하나하나가 자극이 아니라 ‘폭발’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갈등이 생기는 순간부터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고, 이걸 위트 있게 넘기는 사람이 승자라고 생각했다.

문제는 위트 있게 넘기자 혹자는 ‘얜 이 정도로 해도 상처 안 받네’하며 함부로 대했고, 혹자는 ‘이 자식이 날 비웃어?’하며 죽일 듯이 덤벼들었다.



결국 길게 이어진 말이지만, 힘든 감정이 아닌 즐거운 감정만 느끼려다가 생긴 일이다. 우울증이 심했던 사람들이라면 알겠지만, 주변에 즐거운 일이 있어도 고만고만하다. 그런데 안 좋은 일이 생기면 1이라는 대미지가 아니라 123942739574329584398이라는 대미지가 온다. 괜히 집에 가다가 한번 길에서 넘어졌다고 자살충동이 드는 게 아니다. 그 안 좋은 감정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서 일단 죽음으로 달려 나가는 것이다(는 개인적인 식견임 반박 시 님 말이 맞음)


그렇다면, 연습뿐이다.


 회복이니 훈련이니 자신이 보기에 괜찮은 말을 붙이면 된다. 나는 연습이라는 말을 좋아해서(어째선지 소박하잖아요) 연습이라고 하고 있다. 갈등의 크기대로 하나씩 느끼는, 그 불편한 상황에서 불편해하며 당황하는 연습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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