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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ul May 22. 2024

내 인생의 다음 전형을 타인이 결정한다는 착각

뭐 어느 정도는 사실이긴 합니다.

대학을 졸업하든 초등학교를 졸업하든 사회에 처음으로 진입하려다가 여러모로 발목이 잡힌 사람들의 공통점이 있다. 아니, 있을 수 밖에 없다. 한 가지 착각을 하게 되는데(우리의 잘못이라기보다는 그냥 사회 진입 자체가 힘들고 사람들을 갉아먹고 실수나 실패를 부족함이라고 더 열심히 못 했다고 자책하는 이 문화 때문인듯 심한욕)


그건


내 인생이 오로지 나를 제외한 다른 요소에 의해 달려있다는 착각이다.

내가 나를 위한 할 수 있는게 하나도 없다는 무기력함 말이다.

내 인생임에도 이게 나아지려면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든 결정해줘야하고 나를 좋게 봐주지 않으면 끝이라는 생각.



어쩔 수 없다.

사실 괜찮은 척도 한 적 없지만.

멘탈이 강함의 정도 차이야 있겠지만 몇년간 누군가에게 선택을 받아야만 인생의 다음 단계가 진행됨을 겪으면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그리고 그건 사실이다. 세상의 순리랄까.) 그것은 한 길만 집착해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사회에 첫 진입하려는 사람들에게 그 선택은 최선일 것이다. 나는 정말 심하다. 5년이라는 여러번의 비자발적 퇴사와 경제적인 힘듦, 구직의 어려움을 겪다보니 내 인생의 방향키는 나에게 달린게 아니라 사회의 권력자들에게 달린 듯 했다.


오죽하면 내가 공무원이나 공기업에 아주 안 맞는 사람이라는 것을 잘 아는 나의 창조주(어머니와 아버지)들이 공무원과 공기업에 도전하라고 했겠는가. 그들이 하는 말은 ‘공무원이 최고야.’도 아니고 ‘공무원이나 해라’라는 비하도 아니다. 그나마 사기업보다는 공무원이나 공기업이 블라인드에 시험을 쳐서 들어가니까 공정하고 사람들의 정치싸움에 고용협박이나 희생될 우려가 적은 직종이라고 ‘보이기’때문이다. 그래, 그들은 그냥 나의 기나긴 무기력한 사회 진출에 더 내가 상처를 덜 받고 살아가길 진심으로 바라고 있다.

저도 못 가는 ㄱ버니다.

내가 공무원과 공기업은 ‘지금’ 선택하지 않은 이유는 다른 문제이니 제쳐두고.(줄여서 말하자면 지금 당장은 사회에 빨리 진출하고 싶다. 준비기간을 더 늘리기 싫다.)



뭐…건강한 사람들은 나와 같은 일을 겪어도 이렇게까지 무기력해지진 않을 것이다.

나도 같이 살자!

정말 부럽다!

그 건강함, 나도 주라!


그러다가 그냥, 지쳐버렸다.

돈도 희망도 없어진 이 상황에서. 나의 상태는 당연히 안좋아져만 갔다. 더 젊었던 20대 중반에는 그래도 내 상태라도 좋게 만들자는 에너지라도 있었는데 곧 서른이고 지원할때마다 면접 기회는 무슨 아무것도 안 되어가니 내가 잘 못 했나 싶었다. 꿈을 찾고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남들이 가장 낮게 보는 그런 직장인이 되겠다는 건데 작은 기업은 ‘스펙 좋은데 들어오면 나갈거죠?’이러고 큰 기업은 서류탈락이고 그냥 사회가 나를 죽이기 프로젝트라도 하나 싶었다.


그러다보니 또 이런 생각이 들더라. 이 브런치를 오래 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나는 작년에 진심으로, 2024년 이후를 포기하려고 했다. 궁금하지 않았다. 다 나를 싫어할 것이고 내가 세상에 던지는 모든 노력은 그냥 고요한 호숫가에 수천번 던지는 돌일 뿐이고 아무것도 돌아오지 않을 거니까. 그냥 그때 죽을걸 그랬나. 그땐 퇴직하고 돈도 천만원 넘게 있었는데 500들여서 심리상담 대신 유럽여행 한번 싹 할걸. 그러면 그 기억으로 어떻게 다른 생각을 했을수도 있는데. 뭐하러 다시 구직 빨리 하겠다고 에너지 소비만 하고 자소서나 쓰고. 다 쓸모없는 시간이었는데. 이 노력은 다들 실패라고만 비웃는데.


그냥, 돈 벌어먹고 사는 거 자체도 나는 허락되지 않는 생물체구나.


그런 생각을 했었다. 그만큼 이 기나긴 취준이 무섭다. 나의 인생의 선택이 다 남들이 결정지었지만 그 수습과 책임은 내가 져야만 했다. 내 채용 취소를 저지른 부장은 잘 살고 갑자기 나더러 월급 못 주겠다고 한 스타트업 대표는 지금 내가 기획한 것과 비슷한 것으로 좋은 이미지메이킹중이고, 나를 정신과 복용량을 3배로 늘리는데 기여한 전 양아치같던 직장 상사들은 여전히 다른 팀원들을 괴롭히며 내쫒고 있고 하지만 나는 여기서 살아야했다. 앞으로도 내 인생은 이렇게 남들 눈에 들지 못한채로 없어지는 것일까? 아니, 무엇을 시도한다고 해도 바뀌긴 할까? 그런데 여기서 수습은 내가 해야한다는 그런 아이러니...


뭐라고 씨ㅂ?

결국 내 삶의 책임과 통제의 어느 정도는 나에게 있었다.

전부는 아니었지만 결정과 행동은 내가 해야했다.

지금 딱 이 상태이다.

야 내가 “쟤 결국 저렇게 됐네”라는 이야기 듣는 사람이더라도 어때. 엠지엠지 거리는 이 세상에서, 건실한 청년이 드문 이 나라에서, 불법으로 누굴 해하거나 코인에 돈을 꼬라박지 않고 돈 알바든 ㅈ소기업이든 스스로 벌겠다는데.


그러자 내가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이 분리가 되었다.

적어도 기분이나 선택은 내가 통제할 수 있었다. 아니, 내가 선호하는 삶의 방식을 조금 더 생각하게 되었다.

남들에게 영향은 받을 수 밖에 없고, 물론 허가나 선택도 받아야하는건 당연하다. 혼자 사는 인생이 아니기에. 그러나 결국 자신의 인생은 혼자 결정내리고 판단해야한다. 그건, 생명체에게 있는 힘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러면 뭘 어떻게 해야하는가?

너무 큰 일을 갑자기 할 수는 없다. 사실 자소서 쓰고 내는데도 무기력함에 안 하게 되는 경우가 많지 않은가. 어쩌면 나는 기업이 안 맞을지도…라는 생각도 하고 있다. 그러면 할 수 있는 일을 해라. 할 수 있는 일이란, 5분안에 할 수 있는 아주 작은 일이다. 나는 그럴 때 마인드맵으로 나를 억지로 앉혀놓고 울면서 현실을 직시한다. 나를 절대 과대평가하지 않고 최소한의 일만 내게 주기 위해 일을 쪼개고 쪼개서 뭔가 큰 것을 이뤄내야하는 부담감을 외면한다. 통제감이 느껴지는 이 방법은 다음 글에 한번 다시 다뤄보겠다.


+

한번 더 솔직한 이야기

사실, 나는 나를 수습하는게 참 힘들었다. 일을 할때도 신입이라는 것 안에 숨어서 책임지지 않으려고 했던 나를 기억한다. 이게 내 삶의 안 좋은 과거의 자세라면 자세이다. 그래서 큰 문제 없이(가정 내에서는 별 일 많았다만) 태어나서 처음으로 경제적/커리어적으로 없어보이는 기간을 겪고 있다.


누군가가 대신, 혹은 상황이 갑자기 뒤바뀌어서 나를 구원해주거나 수습해주길 바랬다. 그러나 내 삶은 결국 내가 살아내어야 했다. 몰입해서 노력한다고 해서 안 바뀔 수는 있지만 노력했던 그 느낌을 어떻게 가지고 가는지는 나만이 정할 수 있었다. 엄청난 회피형이었던 셈.

나는 나를 책임질 수 있을까?

그나마 인생 최악의 일이 돈없는 가난한 취준생이라는 것은 엄청난 행운 아닌가.

그렇다면 나는 내가 지하실까지 가지 않는다는 자신은 있다.

오늘도 작가인척 한 제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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