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공백기가 되고 싶었겠는가. 대학교 휴학은 반수, 입원, 집안 사정, 여행, 공부, 그냥 휴식 등 다양한 사람들만의 사정이 있다. 취직기간의 공백기는 더욱 심하다. 사정이고뭐고 취업이 안되면 그냥 아무것도 안 한 사람이 되어버린다.
대학 휴학기간마저도 면접에서 물어보는 이런 한국에서 공백기는 지금까지 최선을 다해 살아온 젊은이들을 짓밟은 좋은 무기가 된다. 사정이라는 것을 다 봐달라는 건 아니다. 다만 우리는 이런 분위기에 너무 익숙해져있기 때문에 최선을 다해 이력서만 100번쓰고 최종면접까지 몇번씩 갔다가 떨어지는 엄청난 노력과 성과를 이뤘음에도
아무것도 안 한 사람. 이 된다.
그리고 그런 우리에게 그들은 묻는다.
왜 쉬었어요?
공백기동안 뭐했어요?
그럼 우린 뭘 해야할까. 뭐라고 말해야할까.
남들에게 말하거나 내게 말하거나.
나는 그냥 솔직하게 말했다. 이미 서류상 공백기는 있기 때문에 서류 합격한 기업 중에서 나의 이야기를 듣고도 상황이 맞거나 연이 있다면 공백기는 크게 문제될 게 없다고 믿었다.
저도 알아요 헛소리라는거.
그냥 내 희망사항이었다. 그런데 솔직히
공벡기는 뭐 시간을 돌릴 수도 없고. 없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아무것도 안 했다고 말해서 붙여지진 않으니. 그냥 나름의 의미를 둬서 정리해서 말할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그 과정은 스스로에게도 도움이 된다. 스스로 아무것도 안 했다고 생각하기보다는 나 자신에게라도 '나는 이런 것들을 했어' 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마음가짐이 주는 힘은 아주 크다.
나는 그냥, 취업준비하면서 알바했다고 했다.
제가 뭐 반역을 꾀하느라 취업이 늦었겠냐?
왜 취업이 안 되었느냐는 멍청한 질문에는 (시발 안 뽑고 경제 안 좋으니까요) 나름 내가 분석한 이유를 간단하게 댔다. 영어 성적이 없었거든요, 아 제가 나름 똑똑하다고 생각했는데 취업이 빨리 안되더라고요, 이력서를 잘 정리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전 직장 퇴사하고 쉴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지금 다시 정리해서 여기 면접도 보네요 하하. 다시 일을 하면서 함께하고 싶습니다.
개인적으로 이 공백기에 제안이나 조언이랍시고 나오는 여러 말이 있다. 그 중에서 나는 아래와 같은 조언을 극혐한다. 하지만 다른 의견도 존중합니다.
그 말인즉슨,
농담곰은 그냥 이용당함
여행을 가라.
라는 것이다.
지금 이 경제 초토화 시기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그것도 취업 이력서에 어필될만한 여행을 얼마나 갈 수 있겠는가.
갈 수 있는 사람은 가라. 나는 가진자들만의 (그게 물질적이것이건 정신적인 그릇이건) 여유로움을 인정한다. 부럽기까지하다. 보통 여유로운 사람들이 눈앞의 일을 더 잘 해내곤 한다.
나또한 퇴사 후 천만원에 가까운 돈을 모으고 가져왔다만 서울에서 월세살이를 하며 구직을 하는 입장에서는 그리 큰 돈이 아님을 깨달았다. 그 돈이면 유럽여행을 가긴 했겠지만 아마 빈털털이가 되어 마이너스 신용카드로 월세살이를 시작하게 되지 않았을까? 물론, 숨만 쉬어도 몇달안에 생활만으로 천만원이 없어진다는 것을 실감하고 나니 돈을 훨씬 더 체계적으로 쓰고 돈의 크기와 중요성을 잘 알게 되었지만 말이다.
세상에는 다양한 사정과 사람들이 있다. 지금 눈 앞의 공과금도 못 내지만 1인분을 해내기 위해 노력해야만 하는 기간을 지내고 있는 사람이 있다. 누군가의 탓을 하지 않고 도박이나 상해를 남들에게 입히지도 않는 건실한 젊은이들의 혼자만의 전쟁을 아무것도 안 한 공백기 취급을 하다니. 나는 아직 무엇이 옳은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