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삶이었다.
한국의 삶은 늘 한 단계를 끝내고 더 나은 삶을 맞이하는 방식이었다. 가정법을 항상 쓰는 이 나라에서 '00만 하면, 00만 끝내면 내 세상같을거야..'라고 세뇌당해왔다. 나는 그 디데이라는 것이 아주 잘 맞는 사람이었다. 어릴 때, 항상 새로운 자극을 찾았다. 예를 들면 소풍, 친구집에서의 파자마파티, 친척들 모이는 날, 명절(생각해보면 명절이 제법 즐거운 추억이고 기다려지는 어린이였다는 건 운이 좋았다.), 가족 외식 날 등등. 그러면 나는 늘 자기 전에 '그 날은 무조건 즐거울거야. 4일만 참으면 돼.'라고 생각하고 버텼다.
그런 내게 한국의 디데이 문화는 잘 맞았다. 시험만 끝나면, 자격증만 따면, 수능만 끝나면, 대학을 붙으면, 전공 성적을 잘 받으면, 졸업프로젝트 결과과 나오면, 졸업 하면....항상 내 삶에 디데이를 두었고 시한폭탄처럼 해내면서 나왔다. 그런 나의 우울에 큰 기여를 한 바가 있는데. 첫번째는 생각보다 내가 결과를 시원스럽게 내는 훌륭한 모범생이 아니었다는 사실이고, 두번째는
00만 끝냈다고 내 삶이 유토피아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요 며칠 정말 정신이 없었다. 나는 행복해야했는데 생각보다 잘 지내지 못하고 있더라. 취직만 되면 을 몇번 겪었더라, 점차 사는 것에 질리기 시작하고 삶이 너무 길게 느껴졌다. 무언가가 끝난다는 마음, 이것만 지내면 유토피아가 온다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서 달려왔지만 일복 많은 자의 신입답지 않은 일거리, 전 직장 트라우마로 인한 이른 번아웃, 전 직장 쓰레기 상사들에 비해 낫다고 세뇌시키곤 있지만 여전히 존재하는 뭐같은 사람들, 그리고 생각보다 잘하지 못하는 나 자신.
그래서 인정했다. 나의 삶은 지속되는 거라고. 준비생이었던 수많은 시절도, 정규직이었다가 다시 준비생이 되고 누군가는 없는 삶이라고 '공백기'라고 말하는 몇년도 나의 삶이었다.
나는 도서관을 다녔고, 알바를 했고, 같이 사는 친구들과 낭만적인 한강 달리기를 했고, 청춘답게 울었고, 살을 뺐고, 집 근처 새로운 문화공간을 찾았고,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고, 직무를 바꿨다. 이런 것들을 공백기라고 불러왔지만 그건 그냥 내 삶이더라. 유토피아로 가는 관문따윈 없어서 당황스러웠다. 내 월급의 3배는 받는 대기업 친구들이 다른 기업보다 돈이 적다고 징징거리는 이야기를 들으며 작아지고, 신입사원이기에 함부로 대해짐을 받고, 살집이 있는 여자라고 묘하게 무안을 듣고(죽일가?) 여전히 그런 삶이었다.
그렇게 살아가는 거라는 진리를 받아들였다. 그래, 자살율 1위에 구직 불가인 이 시기에, 나라는 청년을 버리고 모든 인권은 후퇴하는 이 시기에 건실하게 돈 벌려는 2030인 우리는.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꽤 큰 성과가 아닌가.
유토피아를 위해 매번 지금 이 순간을 버리고 희생하는 짓은 그만두기로 했다.
다음주는 5년 취준생존기 마지막화인 ‘낙오자라 불려도 사회를 포기하지 않은 젊은이들에게’가 올라갑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