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굴 원망해야 했던가?
나는 누가 만들었을까?
그저 적당히 괜찮은 기업에서 돈벌이를 하면서 생존하려고 했던 소심하고 작은 소망만으로 5년을 고통받았다. 지금도 고통받고 있다. 주변인을 보면 이 그룹(사회, 회사, 직업 등)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이번에도 빠르게 퇴사하는 거 아닐까. 등등 고민을 하더라.
그러니 이 고통은 사회라는 것에 속해있는 인간이라면 평생 할 수 밖에 없음을 인정했다. 구조적 문제인걸까? 생산성과 효율만이 무기였던, 그 어떤 자원도 없어서 인적 자원뿐이던 한국에서 유독 두드러지는 절망이기도 하다.
이 5년동안 나는 괴로웠다. 누굴 원망해야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채용 취소를 한 첫번째 대기업? 정규직으로 들어갔지만 갑자기 월급 줄 돈이 없다며 나를 꼽준 대표? 20년 넘게 살면서 한번도 당해본 적 없는 쓰레기 취급을 1년간 당하게 해준 전 회사의 리더 두명(새끼)? 갑자기 생겨서 해외 제조업 엔지니어로 취직하려했던 내 계획은 무산시킨 코로나? 이 모든 것들을 제대로 구제하지 않고 성차별, 나이차별, 돈 덜 주고 경력 뽑고 싶어하는 구조인 한국?
그래 나는 나를 원망하기로 했다.
그게 제일 편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적어도 나를 원망하면 모든 문제를 나에게서 찾고 내가 해결할 수 있는 것처럼 보였다. 동기들은 모두 전공을 살려서 대기업에서 내 2배를 아니 3배를 벌어들이는 동안 중견,중소에서도 적응하지 못한 나를 탓했다.
내가 살집있는 여자라서 날 만만하게 봤을거야. -\> 살을 뺀다.
내 학력과 점수가 애매해서 그럴거야. -\> 자격증, 프로젝트를 하거나, 눈을 낮춰서 지원서를 쓴다.
내 자소서가 문제일거야. -\> 돈을 들여서 컨펌을 받는다.
내가 말을 잘 했으면 날 미워하거나 죽일듯이 괴롭히지 않았을거야. -\> 말을 좀 멍청(순진)하게 하는 법을 배운다. 눈치본다.
개같은 것들 그 무엇도 제대로 된 게 없다. 내 통제권을 벗어나는 쓰레기같은 요소들이 너무 많았다. 무엇보다 나 자신도 그 모든것에 맞출 정도의 능력과 역량이 있는 초사이언도 아니었다. 그랬더니 결국 공백기 있고 전공 안 살리고 도망만 치고 끈기없는 30 다 되어가는 백수가 되었다.
'나'는 누가 만들었는가?
+
내가 만들기도 했고, 남이 만들기도 했고, 사회가 만들기도 했다. 원망할 곳들을 찾다가 한가지 답을 내렸다.
내가 할 수 있는 것만 해도 된다는 것이다.
원망은 아무곳에나 해도 되지만 원망해서 바뀌는 것이 없었다. (그렇다고 원망하지 않는것은 아니다. 쓰레기새끼들은 여전히 쓰레기처럼 살고 있었다. 종종 그 회사를 지나간다. 그들이 유병장수하길 진심으로 바라며.)
누군가는 최선이라는 선택을 비웃곤 한다. 하지만 딱히 내 최선에 관심있어서는 아니고 그냥 자기들이 이야기하고 싶은 바가 있어서 남에게 관심을 가지곤 한다. 적어도 나는 내 탓만은 안 하기로 했다. 차라리 반성하고 깨닫고 부끄러워하고 더 나은 나를 위해 노력하거나 타협하거나 정신승리를 하면 했지.
내 편이 되는 것은 하루아침에 되지 않았다.
꾸준히 운동을 하던 아침에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던 폭식을 고치던, 자신만을 위한 시간을 갖건 나만을 위한 노력과 약속을 지켜내어야했다. 함부로 하는 남들에게 바로 반격은 못해도 마음속 나만은 지키기 위했다. 몸 상태를 꼼꼼히 살폈고 필요한 치료가 있다면 시간과 돈을 썼다. 그 시간과 돈을 만들기 위해 또 무언가를 했다. 이 모든것을 하면서 자소서와 이력서를 써내기는 쉽지 않았다. 지원은 탈락이라는 결과를 불러왔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원망을 하거나 절망을 할지언정 나는 나를 포기하지 않으려했다. 심지어 나를 포기한 나조차 이해해보려고. 원망의 화살이 확실하면 좋았지만 그 대상이 분산되거나 허상임을 알았을 때 길을 잃어버리긴 싫으니까.
안타깝게도 난 이 사회에 속해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