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복되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음을.
우울은 내 친구라고들 하면서 우울증을 소개하곤 한다.
하지만 나는 딱히 친구라던가, 적이라던가, 동거인이라던가... 우울증 불안증 등등 어쩌구 질환들을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다만, 확실한 엄청난 비유가 하나 있다. 내가 한 것은 아니고 예전에 정신건강관련해서 에세이 같은 주간지를 올려주시던 "리단"님께서(지금 브런치도 하고 계신다!) 썼던 비유였는데.
약간, 옷 같은 거다.
불편한 옷 같은.
세상을 살아갈 때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나의 마음이나 트라우마나 상처나 머릿속 생각들을 그냥 불편한 옷 같은 거라고 생각하면 좀 낫다. 이 비유가 나를 살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릴 때는 문제는 무조건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내 마음속이나 머릿속을 괴롭히는 모든 일들의 실마리를 찾아서 어떻게 뭐 저렇게든 이렇게든 해서 없애야 한다고 말이다. 뭐 대충 퇴치하면 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았다. 현실적인 문제가 해결된다고 해도 결론적으로 나라는 사람의 본질이 변하지 않았고 그러다 보면 같은 문제는 반복되었고 그냥 머릿속에 구름이 낀 상태를 어떻게든 게워내려고 노력해 봤지만 오히려 눈앞의 초콜릿이나 친구보다는 머릿속의 구름에 집중하게 되었다.
난 그렇게 많은 이들을 잃었다. 누가 봐도 다른 생각으로 초조해하고 불안해하는 사람과 있어줄 사람은 적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있어 준 사람들은 괴짜,라고도 하고 친구,라고도 할 수 있겠다. 어쨌건 무섭고도 신기한 것은 그 상태들을 해결하지 않고 뭔지 모르는 상태로도 사람을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다는 거였다.
정신건강의학과 약을 먹으면서 조금 덜 불편하게 만들고, 지원을 받던가 해서 심리상담을 꾸준히 들어서 조금 산뜻해질 뿐이지 그 이전의 무, 인 상태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하지만 사회를 나가보니 말입니다 여러분들아 내 말을 들어보세요?
세상에 똘아이들이 진짜 많아요.
지가 문제인지 알던 모르든 간에 칼춤추면서 다른 사람 건드리며 사는 새끼들도 어떻게든 돈 벌어먹고 심지어 결혼하고 아이도 있고 친구도 있답니다? 그러니까, 당장 일상생활이 불가할 정도라면 치료를 받아야겠지만 그런 자기 자신을 없애려고 하지 말자고요.
아니, 진짜 세상에 못된 새끼들이며 이상한 새끼들이 진짜 많다니까? 직장 내 괴롭힘으로 정신병동에 간 피해자 후배가 이상합니까, 그를 그렇게 몰아댄 회사와 가해자 상사가 이상합니까? 한국의 사회적 시선으로는 정신병동에 간 후배가 이상하지만 결론적으로 정신병동이던 뭐던 부끄럽고 이상한 사람은 가해자다. 그런 가해자들이 많은 사회이다.
그러니, 당신의 문제가 꼭 해결되지 않아도 된다. 물론 힘드니까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겠지만 평소에 거기에 날을 세울 필요는 없다. 약간 불편한 옷 같은 거다. 조금, 거추장스러운 옷. 우리가 그날따라 불편한 청바지 입었다고 해서 하루가 끝나거나 망치진 않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나의 이상함을 굳이 문제로 보지 않자, 자유로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