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NIL Jun 27. 2024

마음속 피라미드 하나

여름 독서

누구나 마음속에 피라미드 하나쯤은 있다

『피라미드』 /이스마엘 카다레 /이창실 역/ 문학동네 / 2022     

  

  새로운 파라오 쿠푸가 어쩌면 피라미드를 만들지 않을 수도 있다 말하자 신하들은 당황했다. 왕태후와 원로들을 동원하여 파라오의 마음을 바꾸려 했다. 피라미드의 탄생을 주도한 관념과 존재 이유를 설명했다. 풍요와 안락한 생활이 극에 달하면 사람들은 독립심과 훨씬 자유로운 정신을 갖게 된다. 권위 일반에, 특히 파라오의 권위에 더 반항적인 태도를 보이게 된다. 파라오의 힘이 약화될 위기가 오기 전에 상상을 초월하는 과업을 시도하여 백성들의 체력과 정신을 소모해야 한다. 피라미드는 파라오의 힘을 지키기 위해 구상되었다.

쿠푸가 드디어 결단했다. 더 강한 힘을 보여주리라.     


 “피라미드를 만들겠노라가장 높은 피라미드더없이 웅대한 피라미드를.”     

 

   알바니아 출신의 작가 「이스마엘 카다레」가 1992년 발표한 작품은 독재자 엔베르 호자에 대한 풍자와 비판을 담고 있다. 40년간의 통치 기간과 사후의 우상화 작업을 고대 이집트의 절대적 존재인 파라오의 통치와 피라미드 건설에 빗대어 통찰한다. 그러므로 이 작품은 피라미드와 이집트 왕조의 통치에 관한 역사 소설이 아니고 인간의 욕망과 두려움을 말하는 심리 소설이다.        

  

   권력자와 그를 둘러싼 신하들, 공사에 동원된 백성들이 얽혀 우화처럼 펼치는 이야기속에 시대를 관통하는 인간의 본성이 드러난다. 피라미드를 구성한 돌 하나하나마다 사연과 희생, 저주의 전설을 담고 수천 년 세월을 버텨 왔듯이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도 권력과 명예, 성공을 위한 정치 술수, 죽음과 이후의 기억에 대한 욕망은 그치지 않는다. 가장 웅대한 것도 아니고 어쩌면 멍청해 보일 수도 있지만 죽음의 순간까지 피라미드를 건설하는 작업은 계속된다.

  

  누구나 마음속에 피라미드 하나쯤은 가지고 있다. 가장 큰 것을 원하는 사람, 아름답게 꾸미고 싶은 사람. 만들지 않은 척하는 사람 등 다양한 모습이지만 그것이 없는 사람은 없다. 소박하게 ‘미래의 꿈’으로 표현하거나 원대한 포부, 역사적 사명이라고 포장하기도 하지만 한 단계 쌓을 때마다 다양한 가치가 갈등하고 경쟁자와 투쟁하고 혼자 고민하는 원흉이 된다. 


   더 많은 명예와 부, 권력을 원하는 자는 피라미드의 정점에 오르기 위해 윤리적 타락을 감수하고 타인의 희생을 요구한다. 파라오의 피라미드가 한 층 오를 때마다 더 많은 희생자가 발생하고 저주의 주문이 입혀진 것처럼 마음속 피라미드에도 탐욕의 흔적은 남는다. 형의 피라미드가 완성되기 전에 권좌를 찬탈한 동생처럼 시기와 배신의 사다리를 끝없이 올라간다. 21세기도 권력의 피라미드는 부패와 욕망을 동력으로 건설 중이다. 반면 평범한 백성들은 힘의  과시가 아니라 지친 마음의 휴식을 위한 무덤으로 피라미드를 쌓는다. 작은 돌을 다듬는 마음으로 매일 성실히 살아갈 뿐. 세상에 무엇을 남길지 고민할 틈도 없고 약탈에 대비한 미로를 만들지도 못한다. 미련하고 견고하게 쌓는다.      

  

   내면의 피라미드에 완성은 없다. 완성은 곧 죽음의 순간에야 온다. 끔찍하고 혹독하게 피라미드를 쌓아 온 사람일수록 죽음이 두렵다. 가지고 있는 권력을 내려놓으면 아귀처럼 달라붙을 적들의 존재를 알기에 멈출 수 없다. 더 높은 곳에 안치실을 준비해 영생을 누리고 싶지만, 그런 욕망 또한 허무하다. 가장 가까운 사람마저 어느 순간 돌변할 것이라는 불신이 바로 피라미드의 저주이기 때문이다. 높은 피라미드일수록 많은 음모를 품고 있다. 두려움도 크다.


  어쩌면 처음부터 피라미드를 쌓는 일은 부질없는 짓이 아닐까. 내가 쌓으려던 피라미드는 나와 소중한 사람들의 안녕과 행복이라는 소박한 꿈이었는데 그 목표에는 도달해 있는 것인가. 나의 피라미드는 미완성이다. 죽을 때가 되지 않았으니까. 애초부터 설계에 디테일이 없었다. 막연히 풍요하고 안락한 생활을 원했지만 진정한 행복에 대해 정의해 보지 않았으므로 빈곤과 불만의 시간으로 인생을 보냈다. 나보다 더 많이 가진 자의 피라미드를 부러워하면서. 사람들에게 기억되는 피라미드를 만들어야 한다는 욕심으로.      

  

  인간은 죽어서 피라미드를 남긴다. 나는 무엇을 남길까. 진짜 원하나. 이미 죽은 내가 기억되기를. 

매거진의 이전글 “세상에 단 하나뿐인...... ”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