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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IL Aug 22. 2024

프랑켄슈타인

봄에서 여름으로

"천재 소녀가 들려주는 낭만적인 결말을 기억하라"      


『프랑켄슈타인』 /메리 셀리/김나연 옮김/ 앤의 서재 / 2022     

   

   200년 전의 영국. 태어나자마자 엄마를 잃고 계모의 구박으로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하여, 아버지의 서재로 숨어버린 소녀 메리 셀리. 아버지의 제자이자 당대의 시인이 될 연인과의 만남, 유럽 대륙으로 사랑의 도피하여 떠돌며 구상하고 스코틀랜드의 친척 집에 머물며 써나간 무서운 이야기, 4명을 죽이고 한 가문을 몰락시킨 괴물에 관한 이야기의 결말은 ... 그냥 슬프다.     

  

  북극의 추위와 유빙에 갇힌 젊고 야심 찬 청년 탐험대장 월튼이 고국의 누이에게 전하는 편지의 형식으로 전개되는 이야기는 거기서 마주친 한 사내의 사연을 전하며 시작한다.  


  제네바 출신의 빅터 프랑켄슈타인이라는 젊은이는 죽은 생명을 되살리는 실험을 한다.

책을 다시 읽어야 한다. 죽은 생명을 되살리는 실험인지, 새로운 생명을 창조하는 과정인지 분명하지 않다. 다시 살리든 새로 만들든 그것은 신의 영역이다. 인간에게 허락된 것은 태어난 것을 죽지 않도록 잘 보살피는 것뿐. 육신을 기준으로 죽은 것을 다시 살린다면 지난 삶의 기억이 있을 테고, 새로운 창조라면 백지상태에서 가르쳐야 한다. 결과적으로 빅터의 피조물은 후자였다. 거기서부터 엇나갔다.

 

 준비되지 않은 창조주와 지나치게 순수한 영혼의 피조물첫인상이 안 좋아 매몰차게 버려졌다. 

험악하고 흉측한 외모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설계는 사람인지라 쉽게 죽지는 않는다. 다른 사람들의 생활을 바라보고 학습하며 그들처럼 행복하고 싶다는 꿈을 키운다. 자기 모습을 보고도 두려워하지 않을 착한 사람이 있다고 믿는다. 자신을 만들고 버린 창조주에게 찾아가 행복 솔루션을 요구한다. 해결책을 달라 우긴다. 새로운 과업을 시작하자. 첫 번째 대면에서 괴물의 진솔한 고백은 독자를 설득한다.


"반려와 사랑이 없다면 내게 남은 건 오직 증오와 악행뿐,

 하지만 다른 이를 사랑할 수 있다면 악행의 근원은 사라지고 남의 눈에 띄지 않는 존재가 될 수 있어"     

  살인과 증거 조작, 누명 씌우기. 결혼식 날의 신부 살해 등 괴물의 악행은 점차 대담해지고 유럽 전역을 누비고 북극까지 빠르게 이동하는 슈퍼 히어로급의 신체 능력으로 발전하지만, 괴물을 향한 독자의 동정과 연민의 시선은 변함없다. 누더기처럼 기워 억지로 만들어진 존재, 태어나자마자 버림받은 생명체. 단 하나의 소박한 소망마저 배신당한 자. 괴물에 대한 독자의 시선은 거기서부터 출발하고 거기에 머물고 있다.     

  

괴물의 존재를 아는 유일한 자혼자 가야 하는 복수의 길.

 내가 만들었으나 내 가족을 모두 죽인 원수. 절대 타협할 수 없다. 심지어 동생을 죽이고 찾아와 자기가 주인이라고 협박하던 놈. 놈이 원하는 대로 반려자를 만들었다가 놈의 종족이 번성하게 된다면, 이것은 지금보다 인류에게 더 큰 죄를 짓는 일. 내가 뿌린 씨앗은 내가 거두리라.

자애로운 아버지, 사랑하는 아내, 헌신적인 친구를 죽인 놈을 찾아 지구 끝까지 가서라도 잡아 죽이리라.

유인하는 괴물과 따라가는 빅터. 북극에서의 마지막 대결은 빅터의 죽음과 괴물의 눈물로 끝난다.     


"나를 만든 이가 이미 죽었으니 내가 세상에서 사라지면 우리 두 사람의 기억도 사라질 것이다." 

  괴물이 읽은 3권의 책. ‘실낙원’처럼 창조주에게 반항하여 추방되고 ‘플루타르크 영웅전’처럼 섬세하게 퍼져나간 대결의 기록은 ‘베르테르의 슬픔’처럼 여운 짙게 마무리되었다. 눈물을 흘리는 독자들은 괴물의 말 한마디마다 담긴 외로움을 기억하려 책장을 되돌리고, 그 마디마다 놓인 아버지와 신부의 걱정스러운 편지를 다시 읽으며 모든 사건의 시작이 된 빅터의 허영심을 원망한다. 머리 좋고 고집 세게 태어난 것도 빅터와 괴물 은 똑같이 닮았다. 그러니까 누가 주인공인 줄 모르고 사람들이 그놈이 그놈, 프랑켄슈타인이라고 부른다.

  

  막연한 질문과 답을 찾는 맹목적 과정에 쏟아지는 말들이 바로 이 작품의 매력 아닌가.

   날 것 그대로의 고통, 배반, 소외, 복수와 창조의 욕망을 드러내는 단어들. 독자가 추억하는 낭만의 시대. 격정의 시대를 고스란히 간직한 문장 속으로 빠져들게 된다.  불우한 운명을 타고난 소녀가 세상을 항해 내밀었던 격정의 목소리는 300년을 지나는 동안, SF 소설의 효시가 되고 여류 문인에 대한 추앙이 되고, 괴물 영화의 원전으로 복수극으로 재해석되며 살아남았다. 줄기세포와 인공지능이 화두인 시대, 과학자의 윤리와 책임을 말할 때면 필연적으로 등장하며 재해석되고 고전으로 생명력을 더한다. 그렇게 유명해질수록 읽지 않고 읽은 척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괴물이 구사하는 섬세한 감정의 언어와 설득의 논리를 읽어본 적도 없이, 불량품으로 만들어진 괴물이 난동 부리는 내용으로 이해하면 곤란하다. 괴물이 주인공이고 제목이 주인공 이름이라는 것 정도만 알고 있었다면 이젠 끝까지 읽어야 한다.  


  책을 읽으면 확실히 알게 된다. 프랑켄슈타인은 나사 모양의 귀를 달고 있는 푸른 피부의 괴물이 아니다. 물론 슈렉도 아니다. 이 책에는 그런 괴물은 없다. 세상에 던져진 자신의 운명을 한탄하고 괴롭지만 극복하려 노력했던 인간이 있다. 무서운 이야기를 기대했지만, 슬픈 이야기로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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