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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IL Jan 10. 2024

처음부터 다시 한다.

하늘 정원

   월요일 아침. 하루 휴무가 몸을 더 피곤하게 했다. 꼼짝할 수 없다. 스카이다이빙이 운동 효과보다는 몸을 경직시키는 효과가 컸다. 성원은 누운 체 천장만 쳐다봤다. 회사에 가기 싫다. 하루 쉬는 중에도 몇 개의 톡이 왔지만 모른 척했다. 급한 일보다는 성원이 쉬는 꼴을 궁금해하는 내용이 더 많았다. '쉬는데 미안하지만~'으로 시작하는 톡을 보며 미안하면 하지 말라 답장할 순 없었다. 그냥 씹었다.


   성원이 늑장을 부리자 강여사가 들어왔다. 머리를 짚으며 몸이 아픈지 확인했다. 그리고 아침 준비 상황을 보고하며 한술 뜰 것을 권유했다. 성원은 눈을 뜨고 엄마를 바라보지만 말을 못했다. 마비된 몸을 발가락부터 하나씩 풀어가는 중이었다. 아직 입을 움직이기 힘들었다. 반응 없는 딸의 모습에 실망한 강여사는 밖으로 나가버렸다. 서서히 몸을 풀고, 의식을 끌어올리며 회사에 꼭 나가야 하는 이유를 설득했다.

 

첫째. 어제 쉬었으니 나기야 한다. 할 일이 엄청나게 늘었을 것이다.

둘째. 안 나가면 강여사가 들낙거리며 잔소리를 할 테니 나가야 한다.

셋째. 인아와 점심을 같이 먹기로 약속했으니 나가야 한다.


   세 가지 정도로 정리하니 더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머리가 흔들린다. 무거운 돌을 이고 있는 듯. 머리를 끌고 욕실로 향했다. 상쾌한 아침을 만들어 봅시다. 샤워기 물을 틀고 적당한 온도가 될 때까지 잠깐 졸았다. 머리부터 물을 적시며 전투력을 올렸다. 가서 또 부딪쳐 보자.


"내키지 않으면 그만두고 서울로 돌아가라니까?"  강여사의 단골 레파토리다.

"서울이 내 거야?, 나 거기 아무것도 없어."

"그래 그럼 너 유학 가라. 회사 그만두고 마음도 머리도 정리할 겸. 거 어디냐. 뉴욕에나 가서 공부해"

"이건 또 뭔 소리. 내가 거기 가서 뭘 한다고.뉴욕이 내거야?."

"......미안하다. 엄마가 서울이든 뉴욕이든 사 줘야 하는데"


 웃기지도 않았고 침묵이 흘렀다. 밥을 먹고 싶지 않으나 걱정 소리를 더할까 봐 꾸역꾸역 밀어 넣었다. 

 "어쨌든 그 회사를 내려놓고 너의 장래를 폭넓게 생각해 봐. 힘들게 매달리지 말고. 너만 생각해.네가

  3년 전에 돌아온 날부터는 난 불편했다. 서울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도 잘 몰랐고, 네가 상처받았거나

  무언가에 지쳤을수도 있다 생각했어. 그냥 나를 지키기 위해 돌아왔다는 말을 그대로 믿을 수는 없었다.

  너의 꿈에 대해 더 이상 이야기하기를 멈췄기 때문에. 그게 내 탓인가 자책하기도 하고."

   강여사의 말을 곱씹으며  출근길에 올랐다. 성원이 엄마를 돌봐야 한다고 생각한 시간 동안 엄마는 멈춘 성원의 미래를 걱정했다. 백화점과 집만 오가면서도 엄마와의 대화는 점점 줄었다.

  

   성원은 날마다 변하는 마음에 대해 생각했다. 단순한 일을 계속하고 있다는 자괴감과 무력감이 야근 시간을 늘리는 날도 있었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새로운 세계를 배운다는 즐거움에 들뜬 날은 앞으로의 방향성이나 미래를 생각하지 않았다. 그냥 여기서 과장되고, 부장 되면 되는 거 아니겠어. 그런 생각이 은연중에 자리 잡고 다른 틈을 내주지 않았다. 다들 그렇게 살잖아.

   

   점장실로 들어서자 정상무는 뭔가에 자극받아 씩씩거리고 있었다. 성원은 가지고 간 자료를 디밀고 보고하면서도 정상무가 왜 그런지 궁금했다. 정상무는 보고를 마치고 돌아서는 성원을 붙잡았다.

 "거, 모냐. 문화센터를 맡아!"

 "제가! 왜요?. 그건 정말 제 담당 아닙니다만."

 "드디어 민대리 담당 아닌일이 나왔군. 문화센터 직원들이 모두 그만두었다. 강좌 기획 담당은 다 달아나고,

   거 .지금 데스크 직원만 있어."

 "그건 저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김 부장이 인력 충원을 위해 본사와 협의 중인 걸로 압니다."

 "그래, 멀건 애 하나 보내주겠지. 실적 개념도 목표도 없이 저랑 친한 강사 섭외나 하는 애로.."

  정상무는 문화센터에 대한 불신이 컸다. 어떤 부문이든 돈 벌지 못하면 쓸모없다는 정 상무였다.    

"거 참. 민대리는 백화점에 문화센터가 왜 있다고 생각해?"

"사실 깊이 생각해 본 적은 없습니다. 그냥 당연히 있는 거라고 생각할 뿐. 조직 면에서도 백화점 관리, 영업

  조직을 떠나 혼자 놀고 있어서 그렇게 관심을 둘 이유도 없고."

"그게 문제야. 생각좀 하며 일 해. 거. 현재 문화센터 수강인원이  6천 명 되는 모양인데.  만명 만드는 법 연구해서 내일 아침에 보고해 줘.돈을 못 벌면 사람이라도 모아야지.거 참."


  성원은 어이가 없었다. 지금 하고 있는 일도 많은데 문화센터까지 관여하라니. 업무 분장 측면에서도 확실히 성원이 담당할 일이 아닌데, 40% 이상 증가의 목표까지 제시하다니,이번에는 성원이 씩씩거릴 차례였지만, 정삼무의 기세에 눌리고 다음 결재를 기다리는 직원들에 치여 그냥 사무실로 돌아왔다.'거''참' 이런 추임새를 넣는 정 상무의 말투가 거슬렸다. 분명 말보다 생각이 앞서거나 자기가 생각해도 불합리하다 할 때 발전기 스타터처럼 그런 추임새를 넣는다. 오늘 유난히 많이 붙였다. 기분 전환을 위한 옥상 방문 시간이었다.

 

   옥상은 vip 파티를 위한 변화 준비가 한창이었다. 잔디를 카펫처럼 깔 수 있도록 준비했고,각종 식물 제작을 위한 자재들이 차곡차곡 올라왔다.자재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권차장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가 지금 있었다면 문화센터 미션에 대해 어떤 조언을 해 줄까. 그러고 보면 정 상무의 무자비한 지시가 있을 때마다 별 것 아닌 듯 무심하게 팁을 주던 권차장이 있었다. 그가 돌아갔다는 것이 실감 나는 순간이었다.

  전화를 해서 물어볼까 하니 그것도 우스웠다. 성원이 문화센터 업무에 대해 거부감을 가지고 있듯, 권차장도 당연히 그쪽 업무는 모른다. 그렇다면 담당자를 소개받아야 하는데, 그럴 바엔 그냥 직접 문화센터 운영팀과 연결하면 된다. 이제 본사 조직도 파악이 되어 그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냥 권차장과 한 번 연락할 이유를 찾아본 것이었다. 그에게 정상무 욕을 하고 싶어서, 마구잡이 숙제를 내린 인간을.

 

   마음을 추스르고 김 부장에게 정상무의 지시를 보고했다.

"그 자가 팀장인 나를 재껴놓고 민대리에게 직접 업무 지시를 했다고?"

"예. 문화센터 문제는 부장님께서 조치 중이라고 보고했음에도 무시하고 저에게 직접 지시하셨습니다."

"이런, 아무리 지가 점장이라도 그렇지."

김 부장은 분개했다. 문화센터는 회장님이 아끼고 챙기며 드림백화점의 전통이라 말씀하시는 부문이기 때문에 각별한 관심으로 챙겨야 했다. 새로운 인사 정책에 불만을 가진 직원들이 집단으로 퇴사하면서 공백이 발생하고 말았다. 어떻게든 빨리 정상화하기 위해 본사의 문화센터 운영팀에 충원을 요청했지만, 그쪽도 여의치 않은 상황이었다. 김 부장도 확실한 대안을 마련하지 못한 상태에서 정 상무가 이런 식으로 나오다니.

"그렇다면 내가  정상무에게."

"그렇죠. 가서 한마디만 해주세요. 민대리 다른 중요한 일 많아서 문화센터는 안된다."

"정상무의 뜻을 따라 민대리가 잘해봐. 점장인데 생각이 있겠지. 그리고 우리 민대리는 유능하니까 "

역시 김 부장이었다. 그가 생각하기에도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은 민 성원 대리가 1순위였다. 그리고 살짝의 팁을 주었다.


"문화센터 여직원들 쎄니까. 그들과 사이좋은 권새록 팀장부터 쪼아보라고"

"부장님. 그 여직원 소리!. 지금 사내 파벌 조장하십니까?"

"파벌은 아니고 그냥 그 애들이 친하다고. 새록이랑 문화센터 애들이랑."

"근데. 제가 뭘 해야 하죠?"

체념한 성원은 일을 하는 방향으로 머리를 돌렸다. 더 이상 버티는 것은 시간만 버리는 꼴이었다. 이미 큰 숙제를 해결했다고 생각한 듯 김 부장은 너무나 편안하게 말했다.

"송사장이 회장님 모시고 오는 날, 문화센터가 미어터져서 북새통이 되게 만들어 놓으면 돼."


 일단 그날이 언제가 될지 알아보기도 할 겸 권새록 팀장을 찾아 사무실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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