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NIL Mar 26. 2024

설국

봄에서 여름으로

여자은하수그리고 풍경이 된 남자 

『설국』 / 가와바타 야스나리 / 유 숙자 옮김 / ㈜민음사 / 2018     

  

   눈으로 시작해서 은하수로 끝나는 이야기가 있다. 어딘가 존재하는 작은 환상의 마을에 한 남자가 온다. ‘시마무라’는 무위도식하는 남자다. 그가 손가락의 감촉으로 기억하는 여자와 눈에 등불이 켜진 여자 사이에 무슨 일이 있는지, 무슨 일이 일어날지 궁금해하며 따라가는 이야기. 『설국』 이다.     


  고마코의 첫인상은 깨끗한 처녀다. 같이 신사를 방문하고 밤새 이야기한 느낌을 기억한다. 특히 손가락의 감촉으로 기억하는 여자다. 두 번째 방문 길, 기차 안에서 슬프도록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진 여인을 본다. 많이 아픈 남자와 동행하는 부부처럼 보인다. 차마 직접 쳐다보지 못하고 유리창에 비친 그녀를 본다. 실내등이 들어오자 그녀의 눈에 등불이 켜졌다. 저녁 풍경을 담은 거울의 비현실적인 힘은 꿈의 요술을 바라보는 느낌을 준다. 그녀가 요코였다.     

  국경의 산과 눈으로 고립된 겨울은 사람들을 이야기하게 한다. 밤마다 그의 방을 찾는 ‘고마코’는 자기 이야기를 한다. 왜 술을 마시는지, 왜 이곳을 떠나지 못하는지, 그렇지만 그 이유를 정확히는 모른다. 그러다 우연히 알게 된 정보. 기차 안의 환자가 그녀의 전 약혼자이고 병원비를 벌기 위해 일하고 있다는 이야기. 그렇다면 ‘요코’는 누구인가 ?


  그 환자, ‘고마코’의 춤 선생의 아들이자 소꼽 친구이며 폐결핵을 앓고 있는 26살의 남자. 유키오’ 와 ‘요코’는 어떤 관계인가. 시마무라는 편하게 현재의 여자 친구로 단정한다. 중풍 걸린 춤 선생과 죽으려 돌아온 아들을 사이에 두고 두 여자는 역할 분담을 하며 살고 있다. 그리고 무위도식하는 시마무라는 그들의 이야기를 관찰하거나 전달하는 풍경 또는 거울의 역할을 한다. 조금 좋게 보면 사색하며 거리를 산책하고 가난한 자에게 적선하는 유럽형 신사 아저씨의 모습이다.


  ‘요코’는 작품 안에 툭툭 던져진 물방울처럼 튀어 나온다.

유키오가 죽는 날, 기차역에 세 남녀가 만난다. ‘고마코’가 잠시 잊고 있던 현실을 알려주는 ‘요코’. 거부하지만 그것이 두려운 ‘고마코’. 벌써부터 슬프기만 한 ‘요코’. 다시 요코에게로 돌아왔다. 진지하지만 스스로 개척할 능력이 없는 요코는 마을을 떠나지 못한다. 춤 선생도 죽었지만 그들의 무덤을 지키며 마을을 떠돌게 된다. 그녀에겐 간병의 대상이기도 했지만 버팀목이기도 했던 사람들이다. 이제 그를 버티게하는 사람은 고마코뿐이다. 그것을 아는 고마코에게 요코는 짐이다. 그리고 요코가 미칠까봐 두렵다. 도쿄로 데려가 달라 말하지만 떠나지 못하는 요코. 그렇게 두 여인은 서로에게 얽힌 감정을 드러내지 못한다. 그리고 은하수가 내려온 날, 극장에 불이나고 요코는 죽었다.


  눈 길을 걸으면 발자국이 남는다. 눈이 너무 쌓여 걷기가 힘들면 그 발자국도 어지럽게 흔적을 남긴다. 고마코는 그렇게 비뚤고 어지럽지만 발자국을 남기며 걸어가는 눈의 여자였다. 반면에 단 한 사람만 간호할 수 있고, 단 한번의 이별에 서글퍼야 했던 요코는 은하수에서 떨어지는 하나의 유성이었다.

눈을 밟고 가는 자는 힘들더라도 계속 앞으로 간다. 새로운 눈이 내려 그 위를 덮어주기도 한다. 

지상으로 내려온 은하수처럼 마음 속에 떨어진 자는 그 자리에 멈추어 있다. 기억되기에 아름다울 뿐이다.           

  무용 비평가인 시마무라는 일본 무용보다 보지 못한 유럽 무용에 더 관심이 많다. 책으로 본 것을 가지고 비평을 한다. 이 작품도 어떤 면에서 보면 전후 유럽에서 나타난 허무와 실존을 다루는 작품 - 예를 들면 까뮈 같은 –과 닮아 있다. 거기에 수채화 같은 일본의 풍경과 민속, 사람들이 담겨졌기에 동서양의 만남이 되고 노벨상을 받았겠다는 생각이다. 

이전 02화 단순한 열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