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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IL Apr 17. 2024

그녀가 알았다.

하늘 정원

  ' M과 K가 호텔에 파스타 먹으러 갑니다.'

  톡을 읽고 핸드폰을 툭툭 쳤다. 항상 세안이 관심 갈 만한 일을 알려줬다.그렇다고 계속 감시하라고 히기도 뭐하고. 이제 그만하라고 해야 하는데 답을 하자니 그것도 그랬다. 그동안 한 번도 답을 한 적이 없으니 공범임을 시인하는 것 같기도 했다. 그렇다고 스토커처럼 그녀의 동태를 파악할 이유도 없다. 참으로 난감한 톡이었다. 한편 고맙기도 했다. 일단 식음료 담당에게 연락해서 이탈리안 식당에 자리를 비워두라 했다. 오늘은 토요일이라 예약 손님도 많을 텐데 그들이 왔다 그냥 가는 일이 없도록 조치했다. 

  '우리 호텔이 딴 건 몰라도 파스타는 잘하지! 민성원이 이제 백화점 밖 소식도 좀 듣는 걸까?"

김세안은 혼자 이 생각 저 생각하며 다시 창밖을 내다봤다. 토요일답게 교통 흐름은 빠르게 호텔로 몰렸다.


  성원과 권팀장이 호텔로 가기로 한 것은 순전히 한현주 탓이었다. 느끼한 음식으로 해장을 하는 두 사람의 취향을 아는 현주가 파스타를 적극 추천했다. 마케팅 본부장 방문 후유증에 시달리던 두 사람은 아무 생각 없이 호텔로 향했다. 가면서 심상치 않음을 먼저 느낀 것은 성원이었다.

 "호텔에 차가 많은데요. 오늘 결혼식 있나. 오늘 토요일이죠. 식당에 자리가 없으면 어떡하나?"

 "그럴 리가. 이 집이 아무리 송안 맛집이라도 호텔인데. 비쌀 텐데 그렇게 자기 쉽게 차겠어요. 전화해 볼까.

  지금이라도 예약가능한지. 거의 다 왔는데 들어가서 물어봅시다. 자리 없으면 민대리가 알아서 해 "

 "자리 없으면 기다리는 거죠. 제가 뭘 어쩌라고요. 팀장님이 파스타 먹자고 해서 온 건데."

 "내 핑계 대지 마요. 자기도 좋다고 해 놓고. 안되면 백이라도 써요. 민대리와 친한 김 형한테."

  주범은 황 인아가 분명했다. 권팀장에게 떠든 사람은. 작은 단서라도 성원에 대한 것은 놓치치 않는 인아가 그날의 대화를 자동 재생했겠지. 돌아가서 혼내 주리라. 다행히 식당에 자리가 있었다. 식당 매니저는 그들에게 어디서 왔냐고 물어보고 백화점 직원이란 말을 듣자 예전의 계열사 혜택이 아직도 유효하다며 창가의 좋은 자리로 안내했다. 그리고 주문하지도 않은 와인도 가져왔다. 계열사 혜택이라면서.


 "골드 계열사 혜택이 최곤데. 우린 드림호텔 가봤자 찬밥 신세인데.."

 "저도 처음 들어요. 이곳에 올 일도 없었지만 계열사 혜택이 있다는 건 몰랐어요."

해장을 하러 온 두 사람은 간단하게 토마토소스 파스타 하나씩을 시켰는데 샐러드가 따라 나왔다. 이번에도 계열사 우대 혜택이라는 안내였다. 일단 맛있게 먹기로 했다. 나중에 돈 내라면 내는 거지.


 "권차장이 안부 묻던데. 민대리 잘 지키라고. 소식 한 장 없다면서"

 "권 차장님 경로잔치땐 만났으니까. 일주일 조금 넘었는데 무슨 소식이 없어요. 근데 두 분 진짜 남매입니까.

  별로 친해 보이진 않던데 업무 외엔 대화도 별로 없고."

 "친 남매는 아니고. 여러 다리 걸쳐. 근데 비슷한 또래다 보니 어릴 때부터 자주 어울렸어. 뉴욕 시절 거기선

   하늘 아래 의지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사람이었지. 내가 아이디어가 안 나와 미술관에 처박혀있으면

   권 차장이 소주 사들고 와서 바다 보러 가자고 했어요. 그렇게 숨통을 트곤 했지요. 근데 그게 궁금했는데

   여태 참았어요. 안 물어보고. 민대리 대단해요. 공과 사는 분명하게 구분한단 건가요. 아님 다른 사람의 

   삶에 대한 무관심?. 권차장의 존재 자체를 잊었다가 내가 말하니까 생각난 건가"

 "계속 궁금하긴 했는데 엄두가 안 났다고 할까요. 기회도 없었고."

 "술 마시고 차미시고 할 때 기회가 없었다고. 그러지 맙시다. 누군 뭐 기회가 있어서 자기 집까지 가서 어머니

  인사드리고 자문받고 그랬겠어요. 우리 민성원 대리에 대한 관심 때문이지. 관심이 기회를 만들어요.

  내가 더 놀라운 거 하나 알려줄까요?"

  

     성원은 부끄러우면서도 권팀장의 다음 이야기가 궁금했다. 더 놀라운 것은 무엇일까.    

   "두 사람 만나기 전부터 권차장은 민대리한테 관심이 컸어요. 송안에 오기 전에 자료를 하나 들고 와서는

    자료 자체보다는 작성자가 더 궁금하다며 꼭 만나보고 싶다고 했어요. 그 말에 나도 궁금했고. 그래서

    전화받자마자 달려왔죠. 그 자료의 작성자 민성원 대리가 보고 싶어서"

   "이제 확실하네요. 두 분이 친남매는 아니어도 혈연관계인 거. 같은 유전자를 가진 거 맞네요. 어렴풋이

     느꼈는데 두 분이 말하는 스타일이 비슷해요. 제가 문제를 받으면 풀어주는 스타일도 비슷하고."

    "하나 더 알려줄까요. 우리 둘 출생의 비밀, 우리 말고 우리 회사에 권 씨 또 있는 것 알죠?"

    "글세요. 전 두 분 말고는 모르겠는데. 아직 못 만났나 어느 점에 근무하는 분인데요"

    "이미 만났을 걸요. 경로 진치 하던 날. 본사에서 오신 분."


   둔한 성원은 그날 만난 본사 직원들을 하나씩 떠 올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권 씨는 없었다. 골똘히 생각하는 성원을 권팀장은 재밌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가끔은 똘똘하고 때론 어리숙한 수학 천재를 보는 선생님의 눈빛. 기다림에 지쳐 파스타만 포크에 돌돌 말았다. 정답은 권지철 회장. 촌수만 따지면 권지상 차장보다 가까운 게 권 회장이었다. 두 사람의 유학은 권 회장의 장학 재단 지원으로 가능했고  보답으로 이 회사에서 일하기로 했다. 제벌가의 자손일 수 있지만 직계도 아니고 장자 상속의 문화 속에 잊힌 먼 친척 아이들을 도와준 권 회장의 의리에 감사했다. 권 씨 남매나 김승호 부장 같은 좋은 사람들을 거둘 수 있는 마음을 가진 것이  인간 권지철의 최대 장점이었다. 식사가 거의 끝나가지만 성원은 답을 말하지 못했다. 시간이 걸려 성원도 답을 유추해 냈지만 말하지 않았다. 회장님과 그들이 얼마나 가까운 사이인지는 묻지 않기로 했다. 다른 직원들이 말 안 하는 걸 봐선 적어도 후계자는 아닐 테니.성원이 생각을 마무리하는 동안 권팀장은 계산대에서 식당매니저를 호출했다.

   

   "밥값도 내지 말라니 계열사 혜택치곤 너무한데요. 우리가 온 걸 김대표님이 어떻게 아셨죠. 매니저님이

    보고하셨나요?. 대표님 지시 아니면 우리한테 이렇게 할 이유가 없잖아요. 백화점 임원도 아니고 평범한

   과장 대리한테"

   "대표님은 그냥 불편 없도록 하라고만 하셨고, 와인과 샐러드는 저희 총괄 매니저가 일종의 시식 겸해서,

     VIP 행사 같은데 저희 케이터링 서비스를 이용해 달라는 의미로."

   "그럼 미리 말씀하시지. 희한하네요. 우린 백화점 직원이냐고 먼저 물어보셔서 그렇다고 했을 뿐인데"

   

 듣고 있던 성원도 갑자기 모든 것이 궁금해졌다. 물론 여기는 송안이다. 식당 안의 누군가 성원을 알아볼 순 있지만 권팀장이 VIP관리 담당이란 걸 알 순 없다. 사건의 전말을 역추적했다. 시작은 한현주였다. 그때 카운터 직원이 다가와서 식사 끝났으면 라운지에서 차 한잔하자는 김세안의 말을 전했다. 권팀장이 먼저 신났다.

말로만 듣던 김세안 부사장을 직접 볼 수 있는 기회라니 먼저 오케이 사인을 냈다. 성원은 계속 어리둥절한 상태로 권팀장을 따라 라운지로 향했다.


"아무래도 그냥 보내면 오해가 생길 것 같아서 해명할 생각으로 두 분을 뵙자고 했습니다."

"무슨 오해할 일이 있나요. 저희는 이미 대표님의 배려라는 것을 눈치채고 감사드리려 했습니다."

권 새록 팀장이 사무적인 어투로 분위기를 잡았다. 중간에 낀 성원만 어정쩡했다. 우리가 여기 온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는가는 확인하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부사장과 비서의 대화방이 살아있음을 진작 눈치챘으니까. 다만 전달 내용이 현주의 자발적인 협조인지 세안의 지시인지 궁금했다. 그것도 두 사람의 성정을 고려하면 현주의 자발적인 협조인 게 분명했다. 현주와 인아는 성원이 김세안과 잘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을 테니.


"저는 오늘 토요일이라 자리가 없을까 봐 자리만 편하게 했는데. 식대도 안 받았다는 보고가 올라와서 오해를

  하실까 뵙자고 한 것입니다. 제가 지시한 것이 절대 아니고."

"그렇게 버벅거리시지 말고요. 그게 무슨 오해냐고요. 밥 먹고 돈 안내면 좋은 거지. 우리 민대리하고 호형호제하는 사이라 들었는데 밥값 정도 내주시는 거야 충분히 이해하죠. 고맙고."

  권팀장의 말투가 언니말투로 바뀌었다. 거의 여동생의 남자 친구 타박하는 상태였다. 그 상황을 그대로 내버려 둘 수 없지만 성원도 적당한 말이 떠 오르지 않았다. 형이라고 부른 적도 없는데 어느새 주변에서 다 그런 사이로 만들어 버리니 정말 형이라고 불러야 하나. 곤란한 시간을 끊고 커피가 테이블에 놓였다. 한 모금 마시는데 왜 이리 뜨겁고 쓴 맛인가. 


"제가 현주에게 말할게요. 부사장님 곤란하게 하지 말라고."

"담엔 직접 톡 하고 갈 테니, 네가 이르지 마라 이렇게 말씀하세요."

빨간 대가리가 또 변칙태클을 걸었다. 성원은 다시 절벽으로 밀리는 기분이었다. 권팀장은 두 사람 대화의 맥락을 잡고 키득거렸다. 결혼식도 있고 선보는 사람도 있는 호텔 라운지에 앉은 세 사람이 마주 앉아 한 사람은 키득거리고 한 사람은 빙긋 웃고 한 사람은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그것보단 김대표님이 먼저 톡 하세요. 오늘 저녁 야간 강하 갈래요? 하고."

권팀장은 확실히 국내 최강의 코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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