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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자 Apr 06. 2018

아기가 좋은 이유

대머리 아기들이 앉았다. 하나로 나란히 줄을 이어 잘 펴지지 않는 손가락을 꿈틀댄다. 무언가 잡을 것이 필요하다. 서로의 튀어나온 볼을 살짝 잡는다. 성가신 손가락의 감촉을 느낀다. 아기들은 그에 맞춰 입을 벌린다. 이는 없다. 작은 구멍들이 서로 모양을 달리하며 끔뻑인다. 이제 막 잡힌 물고기들 같다. 숨을 빠르게 내쉰다. 호흡을 다루는 기관이 다 자라지 못한 탓이다. 빠르게 호흡하며 어딘가를 응시한다. 언어가 없어 생각은 정리할 수 없다. 보이는 것들로 생각을 만들뿐이다. 그림을 그린다. 주변에 느껴지는 감촉이나 소음으로 그것을 채색한다. 어설픈 그림들이 머릿속에 떠다닌다. 그것을 보고 웃는다. 아기들은 도무지 우리가 알 수 없는 것에 웃음이 터진다. 아기들은 학습되지 않아, 무엇이든 사용하는 법을 모른다. 웃음이, 웃음이 아닐 수도 있겠다.
그런 아기들을 보고 웃는다. 난 학습된 사람이라 웃는 지점을 안다. 웃음의 지점을 알고 엄숙해져야 할 때를 안다. 내게도 웃음이, 웃음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너무 학습된 인간은 무엇이든 사용하는 법을 잘 안다. 그것이, 정말로 그것이 아닐 수도 있겠다.

언어가 있어 정리된 생각을 쏟아낸다. 말끔하다. 언어는 생각보다 거짓되고 생각은 감정보다 부자연스럽다고 생각한다. 감정을 표현할 언어가 부족하다. 거짓된 언어의 한계다. 가끔 그것 때문에 내가 느끼는 감정이 조각난다.
아기들은 빠르게 호흡하며 웃는다. 우린 저것을 웃음이라고 생각한다. 웃음이 아닐 수도 있다. 학습되지 않은 아기는 무엇이든 사용하는 법을 모른다. 법칙에서 벗어난 것들은 제각각이다. 기준이 없어 부족한 것도 없다. 언어조차 모르는 아이를 보며 내가 행복해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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