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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곰자 Feb 09. 2019

고요할 정, 사랑 애 ㉳

<연재 소설>


*스물 일곱 여자와 남자 : 그들의 이야기    

 



그것은 새우였다. 제법 큰 새우가 바다 속에서 튀어올랐다. 살이 실하고 꼬리가 비상하게 꺾여있었다. 지나치게 생동감이 뛰어나 다른 것들을 기죽이게 하는 몸태였다. 살아있는 것 보다 더욱 살아있는 몸짓이었기에 여자는 새우를 안아 올렸다. 얼떨결이었다. 이것을 안아 말아, 할 겨를도 없이 그저 안아버렸다. 바닷물이 온 몸을 떨게 할만큼 차가웠다.

막상 안아보니 따뜻했다. 새우는 머리부터 꼬리까지 흉측한 회벽색이었고 딱딱한 껍질이 여자의 살결에 닿았지만 안는 맛이라고 할까, 그런 게 있었다. 여자는 새우를 자세히 들여다봤다. 완벽하게 응고된 해바라기씨 초콜릿 같은 눈동자였다. 여자는 더욱 그 안을 들여다봤다. 몸은 커버렸지만 눈동자는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어린아이의 것 같았다.

새우 수염이 여자의 턱을 간질였다. 기묘했다. 이렇게나 팽팽하게 살고 싶어하는 동력을 가진 생물 앞에서, 여자는 주눅이 들 것만 같다가도 새우를 내려 놓고 싶지 않았다. 여자는 바닷물이 차가울테니, 바람이 너무 세게 부니, 다른 사람들이 너를 흉측하게 볼 수도 있을테니, 내가 너를 가져가자. 내가 너를 가져가야겠다. 생각했다. 새우는, 여자의 품에 파고 들어 눈을 감았다. 초콜릿 두 덩이가 톡- 하고 떨어졌다.

     

“아기가 생겼어.” 여자가 말했다.

여자에게 팔베개를 해주던 남자는 급하게 몸을 일으켜 세웠다.

“정말 우리가 아기가 생겼어?” 남자는 말했다.

여자는 남자가 조금이라도 실망하는 기색을 보이면 어쩌나, 초콜릿같은 눈빛으로 자신을 쏘아보면 어쩌나, 생각했다.

걱정이 부끄럽게도 남자는 여자의 몸을 일으켜 세워 얼굴을 끌어당겼다. 두 손으로 여자의 등을 쓸어주었고 천천히, 또 천천히 여자의 배를 어루어만졌다. 여자는 자신의 몸에 생긴 작은 생물이 자신과 함께 사랑받고 있구나, 축복받고 있구나, 싶었다. 여자는 남자의 품에 더 파고 들었다.    

 

“그게, 태몽이었구나.” 여자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태몽?” 남자는 물었다.

“우리 새우는 먹지 말아요. 여보.” 여자는 말했다. 그리고 오래 웃었다.     


여자는 정말로 새우를 먹지 않았다. 대신 아기의 태명이 새우가 되어버렸다. 아기가 태어나면 살이 탱탱하고 눈동자가 그윽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꿈속에서 본 새우의 모습처럼, 생동감있게 펄쩍펄쩍 뛰며 따뜻한 몸을 가진 사람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여자는 남자가 가져온 과일과 죽을 먹었다. 오래 토하고 자주 열이 났지만 여자는 가벼운 스트레칭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그리고 틈 날때마다 책을 읽었다. 아기가 태어나면, 글자말고도 글자가 감추고 있는 사연을 보듬을줄 아는 사람이 되길 바라서였다.     


“내가 지켜줄 거야. 새우를 말야.” 여자는 말했다.

“우리 새우가 태어나면, 정애라고 이름을 짓자.” 남자가 말했다.   

  

남자는 돈이 많지 않았다. 회사를 다니며 간단한 사무 업무를 보았지만 평소대로 먹고 생활하다보면 정애에게 불편함을 주게 될 것만 같았다. 그렇다면 정애대신, 여자대신, 내가 불편해져야 하는 게 맞겠지. 누군가 한 명은 꼭 불편해야 한다면, 내가 불편해지는 게 맞는 거겠지. 그게 어른일테니까. 그게 아빠일테니까. 생각했다.

남자는 낮에는 회사 일을 보며 밤에는 종종 택배 상하차 일을 보기도 했다. 퇴근을 하고 돌아오면 팔 다리가 정말로 짓눌리는 것만 같았다. 새벽에 잠이 깨 진통제를 먹고 다시 누우려했다. 옆에서 배를 부여잡고 자는 여자를 보며 그래도 내가 다시, 아빠니까 다시, 남편이니까 역시나 다시, 일어나야지. 하는 생각을 도돌이표처럼 되뇌었다. 기쁘지 않았다. 딱히 유쾌하지도 않았다. 언젠가 행복해질 거라, 생각했다.     

 

새우가 정애가 되는 순간이었다. 태어났다고 하는 게 맞는 말일 수 있겠으나 튀어올랐다는 말이 정애에겐 더 적절했다. 여자의 출산 과정에 참여한 남자는 새우가 정애가 되는 과정을 전부 지켜보았다. 귀를 찢을 듯한 고성과 흥건하게 흐르는 땀, 주변에 즐비한 핏자국, 여자의 미간에 멍에처럼 찍힌 주름, 작은 공간 안에 퍼져있는 적나라한 것들. 이것이 생의 동력일까, 이것이 과연 생명력이라고 하는 것일까. 남자는 짓눌렸다. 무언가에 명치를 한 대 때려맞은 것처럼 온 몸이 저릿저릿했다. 아무래도 이런 마음은 아빠로서 부끄러운 것이라, 생각하기도 전에 남자는 거대하게 다가온 작은 생명력에 압도되었다.


정애의 울음 소리가 병원 전체에 울려퍼졌다. 분비물이 묻은 탯줄이 주르륵 여자의 몸에서 쏟아졌다. 정애와 여자는 생의 끈, 그것으로 이어져있었다. 이제부턴, 정애가 아프면 여자도 아플 것이고 정애가 웃으면 여자도 웃을 것이다. 탯줄이란 건, 그런 기능을 하는 것이 아닐까 하고 여자가 말했다.

     

“너무 아이랑 당신을 하나로 생각하진 마.” 남자는 여자의 머리를 쓸으며 말했다.  

   

여자는 묘했다. 아이가 생겼다고 했을 때, 자신의 머리를 끌어 안아주던 남자의 온기는 약 육십퍼센트 정도의 농도로 옅어진 것만 같았다. 새우를 안은 것도 자신이었고 새우를 먹지 않은 것도, 새우가 정애가 되도록 한 것도 모두 자신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남자의 노력을 모르는 건 아니었다. 남자의 온기를 모른 척 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아이를 품고 낳은 몸으로서, 그 모든 거대한 과정을 거친 엄마로서, 자신은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거란 용기가 생긴 것에 비해 남자는 아빠로서 어쩐지 조금 옅어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여보, 옅어지지 말아요. 정애를 다 키우면, 예쁜 캠핑카 하나 구해서 여기저기 다니며 살아요.”

여자는 말했다. 무엇인지 두려움에서 였다.

“그럼 그 안엔 당신이 좋아하는 토마토가 자라는 화분을 키웁시다.”

다시 한 번 다짐하듯 남자는 말했다.     


남자에게 가장 무서운 건 태어난 아이가 태어난 것을 후회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낳은 사람이 책임지는 건 당연했다. 그런 책임에 자신이 하는 일과 마음가짐은 어울리는 것일까, 고민하는 나날이 깊어졌다. 고민은 깊어졌지만 아이는 자신이 아빠가 되어가는 과정을 기다려주지 않았다. 정애는 무섭게 커갔고 매일 밤 손뼘재기로 키를 가늠하면, 다음 밤에는 한 뼘이 더 필요한 몸이 되어버렸다. 남자는 어쩌면, 진심으로 아빠가 되기 위해서는 억척스럽게 돈만 버는 과정 보단 어떤 어른이 되어야하는지 성찰하는 과정을 거쳐야 했던 건 아닐까, 되짚었다.     


“모두 핑계야.” 여자는 말했다.

“난, 무언가 무서워져. 너무 무서워서 견딜 수가 없어.” 남자가 말했다.

“돈을 버는 것도, 몸이 고단한 것도, 정애는 커가고 나는 늙어가는 것도 다 싫은 거야.” 여자는 쏘아붙였다.

“미안해.”

남자는 집을 나가버렸다.     


새우가 튀어 올랐다. 파도가 부딪혀서 인지 바람이 세게 불어서인지는 모른다. 그저 어딘가에서 튀어나온 새우가 무섭게 뛰어올랐고 살아보겠다고 허리를 팽팽하게 꺾었다. 초콜릿같은 까만 눈동자를 하고선 오래도록 무언가를 응시했다. 자신을 안아주던 여자였다. 새우는 바다생물이고 여자는 사람이라는 생물이었다. 자신과 여자는 합쳐질라야 합쳐질 수 없었다. 자신을 안아버린 여자가 그 책임을 져야하는 건 당연했다. 바다에 휩쓸리게 두지 않고 안아버린 여자는 적어도 그정도의 책임은 져야했다.

새우는 곰곰 생각했다. 나를 안아버린 건 여자였지만, 나를 튀어오르게 한 건 대체 뭐였지. 바다일수도 있고 바람일수도 있지만 왠지 그 무엇도 아닌 것만 같았다. 새우를 튀어오르게 한 것, 그리하여 결국 허리를 꺾어 생명이라는 힘을 낚아채게 한 것, 그것은 누구지. 새우는 오래도록 생각했다. 새우는 눈을 감았다. 초콜릿 두 덩이가 톡- 하고 떨어졌다.

바다 속에서 떨어진 초콜릿 두 덩이를 부수는 누군가가 있었다. 남자였다. 남자는 바다 속에서 음영진 얼굴로 초콜릿을 톡- 톡- 터뜨렸다. 남자는 슬픈 얼굴을 하고 있었다.

     

여자는 한동안 멍하니 지냈다. 빽빽 우는 아기를 재우고 하얀색 약을 한 알, 두 알, 먹었다. 죽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아니면 몽롱해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렇게 되면 모든 걸 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또다시 아기가 울었다. 초콜릿 같은 눈으로 여자를 빤히 바라보며 몸을 버둥댔다. 여자는 아기를 밑에 두고 주먹을 들어올렸다.


"너 그 눈빛, 그것 좀 안 할 수 없니?"


여자는 기역과 니은도 모르는 아기에게 또박또박 발음했다. 여자는 차마 아기에게 주먹을 내리꽂진 못하고 축 늘어뜨렸다. 아기는 여자의 아래서 버둥대며 울었다. 얼굴이 시뻘게지도록 우는 것에 에너지를 쓰다가 다시금 숨을 헐떡였다. 그리곤 다시 힘을 끌어 모아 울었다. 모든 생명은 우는 것에 타고난 것만 같다고 여자는 생각했다. 여자는 표정 없는 얼굴로 아기 배를 토닥거렸다. 얼마 후 아기가 잠들었다. 여자가 생의 끈을 다시 잡아보겠다고 다짐하기 까진,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했다.

초콜릿을 부수는 남자는 여자와 아기도 부수었고 집도 사진도 토마토도 사랑도 모조리 부수었다. 그리곤 사라졌다. 여자는 처음으로 강해졌다. 남자가 채우지 못한 농도를 백퍼센트로 끌어올릴 사람은 자신뿐이라고, 생각했다. 세상 물정을 알자. 사랑은, 없다. 내겐, 책임만 있다. 그러니 무엇이든 어떻게든 하자. 여자는 생각했다.


‘미인’에서 판 것과 같은 화장품을 얼굴에 바르며 여자는 출근 준비를 했다. 벨이 울렸다. 여자는 립스틱을 바르며 전화를 받았다. 전화기 너머에서 고성이 들렸다. 아무래도 여자가 판 상품에 불만을 나타내는 것 같았다. 여자의 미간이 구겨졌다. “그래 씨발, 어디서 이 년이 뻥카를 쳐. 어디 갖고 와봐. 썅년아.” 여자는 무섭게 쏘아붙인 뒤 전화를 끊었다.

어린 정애는 방바닥에 드러누워 색연필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해가 비추는 바다였다. 여자의 이런 말들에 정애는 어느정도 적응이 되었다. 파란색 연필로 바다를 칠하며 새침하게 볼에 바람을 넣었다. 동시에, 엄마가 약하지 않아서 차라리 다행이라고, 불쌍하지 않은 부분도 있어서 차라리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정애야, 살면서 제일 중요한 게 뭔지 아나?”

정애는 까만 눈동자를 두어 번 깜빡였다.

“돈, 사랑, 다 아니야. 자기가 한 일에 대한 책임이야.” 여자는 말했다.

정애는 아무 반응 없이 그림을 그렸다. 여자는 장난스럽게 웃으며 정애에게 다가와 허리를 끌어 안았다. 그리곤 정애의 볼에 마구 키스했다. 정애는 그것이 귀찮아 몸을 살짝 뒤로 뺐다. 여자는 정애의 엉덩이를 몇 번 두드렸다.

“우리 강아지, 이름처럼 살지마. 사랑같은 거 별로야. 엄마 다녀올게. 옆집 아줌마 오시면 밥 먹고 놀다 자.”   


시간이 흘러 세월이 됐다. 세월도 흐르면 인생이 끝날 것이다. 여자는 변했다. 글자를 사랑했던 여자는 마음대로 욕을 주무르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정애도 변해버린 여자와 도망간 남자를 이해하기 위해선 시간이 필요했다.


엄마, 엄마가 틀렸어. 정애는 커가며 생각했다.

아무래도 살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언가를 기다려주는 시간이야.



                                                                                                   -배경 그림 : 에곤 실레 作, <가족>,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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