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곰자 Feb 07. 2019

고요할 정, 사랑 애 ㉲

<연재 소설>

*열아홉 나비 : 염희의 이야기. 



염희와 정애는 번화가로 나와 모퉁이에 조성된 작은 공원으로 갔다. 담배 꽁초가 즐비한 벤치에 나비통을 사이에 두고 앉았다. 염희는 정애를 보고 웃었다. 담배 하나를 꺼내 물었다. 정애는 염희 바지 주머니를 뒤져 라이터를 꺼내 불을 켰다. 염희는 이번엔 조금 더 크게 웃었다.     


“왜 이런 일을 해. 할머니는 아시니? 얼마나 된 거야.” 정애는 물었다.

“질문 좀 그만 해.” 염희가 답했다.

“돌봐줄 친척이나, 어른들은 없니.”

“할매 병원비, 나 밥먹고 학교 다니는 생활비 때문에. 할매는 모르고, 일 한지 일 년은 안 됐어.”

정애는 침묵했다.

“정애야, 난 말야. 아무도 우릴 모른다고 생각해. 그건 우리도 마찬가지고.” 염희는 말했다.

“무슨 말이야?”

“세상에 태어나서, 살다가 죽잖아. 내가 그러고 있다는 걸 누가 알까? 어떤 방식으로 먹고 살든 그걸 어느 누가 이러쿵 저러쿵 말 할 수 있지?”

“아니. 아니지. 이렇게 사는 건 피해를 주잖아.” 정애가 말했다.

“누구한테? 저 아저씨들도 자기들이 원하는 것을 얻고, 나도 내가 원하는 것을 얻어. 그건 피해가 아니야.”

“너 자신한테 피해를 주잖아. 이렇게 살면 행복해?” 정애가 물었다.

“그럼 넌, 행복해? 우리 할맨, 행복할까? 우리 병실 사람들은, 행복할까?” 염희가 물었다.     

정애는 또다시 침묵했다. 염희는 입술이 오므라들도록 담배를 힘껏 빨아들였다.     

“이것 밖에 없어 난. 이렇게밖에 할 수 없다고.” 염희는 말했다.

“다른 친척은 없니.”

“삼촌이 있지.”

“도움을 청할 순 없어?”     


염희는 웃었다. 담배 꽁초를 바닥에 짓눌렀다. 조그맣게 남은 필터가 용수철처럼 찌그러졌다. 염희는 갑자기 소매를 걷었다. 팔 언저리에 난 상처를 내보였다. 담뱃불로 지진 자국이었다. 여기 저기 듬성듬성 나 있는 상처는 염희를 소개해주듯 문양을 만들고 있었다.     


“우리 할매가 병신이 된 이유, 내가 죽으려는 이유, 모두 같아.”     


염희는 할머니와 함께 살았다. 할머니는 늙었다. 허리가 굽었고 다리를 절었다. 기침을 오래했고 똥을 오래도록 누었다. 막상 잠에 들면 일찍 깨어났지만 아주 깨어나지 않을 것 같기도 했다. 염희는 할머니가 조금씩 더뎌지는 게 무서웠다. 같이 잠에들고 같이 잠에서 깨는 일상적인 것들이 더뎌질 수록 밤마다 할머니의 가슴을 만지며 잠에 들었다. 조금이라도 할머니가 숨을 쉬지 않으면 젖꼭지를 살짝 꼬집어 숨통을 뚫었다.


염희는 할머니마저 사라지면, 삼촌을 감당할 사람이 자신이 될 것만 같았다. 삼촌은 아이 둘을 둔 홀아비였다. 숙모가 사라진 건지 죽은 건지 몰라서 삼촌은 돌아버릴 것 같다고 했다. 아이 둘을 팽개쳐놓고 사라진 년, 엄마 내가 그년 죽여버릴게, 애들아 이 아빠가 네 엄마년을 죽일게. 라고 말한 세월이 수년이었다. 혼자 자식 둘을 키우는 자식이 안쓰러웠는지 염희의 할머니는 종종 삼촌을 불러 밥을 지어줬고 반찬도 쥐여줬다.

그때마다 삼촌은 염희에게 용돈을 주었다. 너도 참 신세가 딱하구나, 어쩌다 부모가 다 뒤져서는. 쯧쯧. 하는 식의 말들을 건넸다. 염희는 생각했다. 삼촌이 아주 맹추가 되어버렸나. 돌아올 수 없는 반푼이가 되어버린 건 아닌가.

정말 비정상적인 건, 삼촌이 할머니를 종종 때리는 것에 있었다. 진정한 반푼이가 가진 분노를 풀 곳을 찾는 듯했다. 여편네가 집을 나가서는. 쯧쯧. 엄마도 언젠가 나를 버리고 도망갈테지? 여자들은 씨발 끈기가 없으니까. 하는 말들과 함께 주먹이나 손바닥으로 할머니의 얼굴을 가격했다. 희한하게 할머니가 차려준 밥은 꿀떡꿀떡 넘긴 뒤 이어지는 일이었다.


가뜩이나 죽을 것이 염려되는 노인인데, 저렇게 죽어라고 패면 정말로 죽어버릴 것만 같아 염희는 삼촌 앞을 가로막았다. 삼촌 발등을 물어뜯기도 했고 머리털을 한 움큼 잡아 쥐어뜯기도 했다. 염희도 가만히 당하고만 있을 아이는 아니었지만, 어디까지나 피해받은 입장이 물어뜯는 수준이야 아프다고 할 수 있는 정도도 아니었을 것이다. 그 후에 염희는 여지없이 발로 차여서 밀가루 반죽처럼 되거나, 쌍코피가 터지는 것으로 완패했기 때문이었다.

할매가 진심으로 병신이 된 이유, 염희는 말했다.     

 

“어느 날, 있잖아. 삼촌 그 개새끼가, 있잖아. 할매가 자는 틈을 타서, 난 할매가 정말로 자는 건지, 자는 척을 하는 건지, 아님 진짜 죽은 건지 모르겠어서, 너무 무서워서 그런 것만 생각하고 할매 젖꼭지를 만지는데, 그 개새끼가 내 뒤에 와서, 젖꼭지를 만졌어. 우습지. 난 할매 가슴을, 그 새낀 내 가슴을 나란히 누워서 만지는데, 그 꼴이 얼마나 우스웠을지 상상이나 되냐 말이야. 그 후엔, 어떻게 됐는지 몰라. 상상하고 싶지 않아. 할매가 그걸 본 것 같은데, 그래서 어떻게든 막으려고 한 것 같은데, 그 개새끼가 할매를 뒤지라고 팼는지 그 날 이후로, 저렇게 병신이 되어버렸어. 나 때문에. 내가 할매 가슴만 꼬집지 않았더라도, 그냥 평소처럼 잤을텐데 말이야. 돈 벌려고 남자랑도 자는데, 그게 뭐 대수라고. 근데 너무 무서웠어. 그냥 너무 무서웠다. 난 할매가 일어나지 않을까봐, 나 혼자 그걸 견디게 될까봐, 그게 무서워서, 할매를 깨웠어. 그리곤 지금 저렇게 오래도록 잠만 자게 만들어버렸어. 처음엔, 그 개새끼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젠 그냥 모르겠어. 내 잘못이 아주 없다고 생각했다면, 담배 같은 걸로 날 망가뜨리진 않았을 거야.”     


“네 잘못은 없어. 절대로.”


정애는 말했다. 염희는 소매를 고쳐 올렸다. 담뱃불로 지진 피부덩이를 쓸며 염희는 그날 일을 곱씹는 듯했다.


“지금 삼촌이란 인간은 어쩌고 있니?” 정애가 물었다.

“그날 그렇게 되고서, 경찰에 신고했어. 우울증에 알콜중독 이력이 있다고, 접근금지 명령 떨어졌어. 그게 다야.”     

정애는 염희의 구멍난 팔뚝을 바라보았다.     

“한 달 안에, 그 새끼를 죽이고, 나도 죽을 거야.” 염희는 말했다.


정애는 염희가 했던 말을 되새겼다. 아무도 우릴 모른다. 그건 우리도 마찬가지다. 세상에 태어난 먼지같은 우리도 열심히 이야기를 만들고 사연이랄 것을 겪지만, 아무도 모른다. 우린 모두 그런 것을 하지만 우린 모두 관심 없다.

무서울 거란 것, 외로울 거란 것, 슬플 거란 것, 사람 에게 기대고 싶을 때가 있단 것, 거짓말을 하고 해를 끼치고, 위선을 떨고 눈치를 보면서라도 살아내고 싶은 것, 살고싶은 욕구는 그렇게나 대단하다는 것, 추한 것, 역겨운 것, 더러운 것, 그것을 싫어하지만 그것에 호기심을 느끼는 것, 일을 그르치는 것, 그것을 남몰래 덮어두는 것, 장례식장에서 밥을 먹는 것, 화투를 치고 코를 골며 자는 것, 그런 것이 의식이 되어버린 것, 용감한 척 하는 것, 즐기는 척 하는 것, 분명히 울었지만 빠르게 웃는 것, 관심을 받고 싶어 하는 것, 그것을 드러내듯 감추는 것, 행복한 척, 안 아픈 척, 넉넉한 척 하는 것, 불행한 척, 아픈 척, 괜찮지 않은 척 하는 것, 우린 다 안다. 그리고 우린 모른다.

그런 것들이 가해를 가해로, 피해를 피해로 이어지도록 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분명히 알고 있지만 모르고 싶은 것들 때문에 정애의 엄마와 염희의 할머니가 저렇게 된 것이라고, 생각했다. 까닭없이 갇혀버린 세상 속에서 점점 더 지루한 사람이 되어 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점점 더 외롭지만 이것이 도무지 무슨 감정인지 모르는 사람이 되어 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정애는 한 가지 명확하게 안 것이 있었다. 자해를 하는 염희는 더 이상 아픈 것이 새어나가지 못하도록 막아내고 있다는 것을. 자해를 하는 사람은, 위험한 사람이 아니라 어쩌면 아프다고 말하지 못하는 사람일 수 있다는 것을.

염희가 망가지는 동안 그런 세상을 법전처럼 여기며 살았던 정애는,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천을 걷어 나비통을 보았다. 나비가 파란빛을 뽐내며 이리저리 날아다녔다. 공간이 넉넉치 않아 이 벽에 부딪히고, 또 저 벽에 부딪혔다. 바닥에 고꾸라졌지만 다시금 파닥거렸다. 지쳐버린 날개로 바닥을 살펴가며 몸을 움직였다. 정애는 생각했다. 나비를 보았다고 해서, 나비를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나비가 파랗다고 해서, 나비가 파랗다고 말할 수 있을까. 어딘가에서 봤지. 나비가 내는 색은 무색이라고. 어딘가에서 빛을 받아 촘촘히 나눠진 비늘층이 내뿜는 색일뿐이라고. 나비는 사실 그 무엇의 색도 아닌데, 우린 그 무엇의 색이라고 짐작한다고. 쉽게, 간편하게, 예뻐하기 위해서.


"함부로 예쁘다고 하지 않을 거야. 나비." 나비통을 들여다보며 정애가 말했다.

"응. 우린 아무 것도 알 수 없으니까." 염희도 나비통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정애는 염희를 바라봤다.

조용히 달이 빛났다.

정애는 염희의 팔뚝에 키스했다.



작가의 이전글 고요할 정, 사랑 애 ㉱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