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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배추 대신, 큰 사랑이 담긴 김치

양배추 김치

by rufina

엄마가 노르웨이에 오셨을 때, 현지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로 찜닭, 부침개, 김치찌개 같은 익숙한 한국 음식을 만들어 주셨다. 그중에서도 가장 먼저 만든 건 배추김치였다.


예전에 김치를 한 번 담가 본 적은 있지만, 그 이후로는 다시 도전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임신으로 배가 불러 있을 때, 배추를 씻고 절인 뒤 양념을 만들어 버무리는 과정이 생각보다 훨씬 고되고 번거로웠기 때문이다. 그 수고로움을 알기에, 엄마가 먼 타국에서 정성껏 김치를 담가 주시는 것에 그저 감사할 따름이었다.


김치를 담그기 위해 엄마와 함께 동네 슈퍼에 갔다. 진열대 위에 놓인 배추를 살펴보던 엄마는 잠시 배추를 손에 들고 한숨을 내쉬셨다.

“이걸로 뭘 해 먹겠니? 금방 다 먹고 또 담가야 하겠네.”

노르웨이에서 파는 배추는 한국 배추보다 훨씬 작다. 거의 양배추 크기 정도다. 속도 덜 찼고 잎도 단단하지 않아, 엄마 눈에는 몹시 실망스러웠을 것이다. 게다가 가격도 만만치 않다. 한 포기에 한국 돈으로 약 5,000원쯤 하니, 혀를 차실 만했다.


남편과 나는 김치를 좋아하긴 하지만 자주 먹지는 않기에, 배추 두 포기만 담가도 한동안은 충분했다. 그런데 부모님이 오신 뒤로는 얘기가 달라졌다. 부모님께서 매 끼니마다 김치를 곁들여 드시다 보니, 두 포기 분량은 며칠 만에 금세 바닥이 났다. 자주 담가야 하는 번거로움은 물론, 재료비 부담도 제법 컸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는 냉장고에 남아 있던 양배추를 꺼내 들고 말씀하셨다.

“이걸로 김치를 담가 보면 어떨까?”

나는 약간 짜증 섞인 목소리로 답했다.

“배추랑 맛이 너무 다르잖아요. 그냥 조금 더 주고 배추 사세요.”

그렇게 말하고는 아기들을 재우러 침실로 들어갔다. 부엌에서 들려오는 달그락 거림이 신경 쓰였지만, 엄마가 저녁을 준비하시려나 보다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저녁 시간이 되자, 식탁 위에 낯선 김치 한 접시가 놓여 있었다. 양배추로 담근 김치였다.
나는 ‘역시나’ 하는 표정을 짓고서 엄마를 힐끗 쳐다봤다. 엄마는 한번 하면 꼭 하는 분이셨기에, 언젠가 양배추로 김치를 담그실 줄은 예상했었다.

“뭐야, 결국 만드셨네요. 정말 못 말려.”

엄마는 잔잔한 웃음을 머금고 말씀하셨다.

“한번 먹어 봐. 의외로 맛있어. 절일 필요도 없고, 만들기도 훨씬 쉬워. 값도 싸고.”

기대 가득한 눈빛으로 우리 반응을 지켜보는 엄마 앞에서 나는 반신반의하며 한 입 먹어 보았다.
놀랍게도, 생각보다 훨씬 맛있었다.

익숙한 배추김치와는 조금 달랐지만, 양배추만의 아삭한 식감과 감칠맛이 있었다. 무엇보다 엄마의 손맛이 고스란히 배어 있었다. 가족들이 양배추 김치를 맛있게 먹는 모습을 바라보며, 엄마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셨다.


그날 이후, 엄마는 줄곧 양배추로 김치를 담그셨다.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날에도 여러 번 당부하셨다.

“배추 말고 양배추 사서 담가 먹어. 싸고 맛도 괜찮으니까.”

그리고 오늘, 나는 다시 양배추 김치를 담그며 그날의 엄마를 떠올렸다.
그 김치에는 엄마의 정성과 지혜, 그리고 사랑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양배추 김치 레시피


재료: 양배추 1/2통, 멸치액젓 1/2컵, 설탕 2작은술, 매실액 또는 솔베르 시럽 2큰술 (솔베르 시럽은 달콤하고 약간 신맛이 나는 블랙커런트(까막까치밥나무 열매로 만든) 시럽), 고춧가루 3큰술, 다진 마늘 2작은술


Lerum 솔베르시럽(Sobær Sirup)은 노르웨이에서 널러 판매되는 대표적인 블랙커런트 시럽: 건강에 좋은 항산화 물질과 비타민 C가 풍부



만드는 법:


1. 채썰기
양배추를 깨끗이 씻은 후, 얇게 채 썰어 준다.

채 썬 양배추를 다시 한번 깨끗하게 씻고, 물기를 뺀 후 준비한다.

(만약 양배추에서 물이 많이 나오는 경우, 소금에 살짝 절여서 물기를 제거한 후 버무리면 더 맛있는 김치를 만들 수 있다.)


2. 양념 만들기

멸치액젓 1/2컵, 고춧가루 3큰술, 솔베르 시럽 2큰술, 다진 마늘 2작은술, 설탕 2작은술을 그릇에 넣고 잘 섞어준다. 이때, 멸치액젓, 고춧가루, 시럽의 양은 개인 취향에 맞게 간을 보면서 조절해 준다.

※매실액을 구하기 어려운 경우, 솔베르 시럽을 사용하셔도 좋다.


3. 양념 버무리기
물기를 제거한 채 썬 양배추에 양념을 넣고 골고루 버무린다.

이때 양념은 적당히 묻혀서 맛있게 버무려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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