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겐에서 오슬로까지, 기차로 그린 추억

2024년 가을, 가족과 함께한 기차 여행

by rufina



얼마 만의 여행인가! 오랜만에 떠나는 여행에 가슴이 설렜다. 아침 일찍 오슬로로 가는 기차를 타기 위해 새벽에 일어나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피곤함보다 설렘이 앞서 두 눈이 번쩍 떠졌다.


새벽에 쌍둥이 수유를 마친 후, 남편에게 맡기고 집을 나섰다. “잘 다녀와. 아기 걱정은 하지 말고.” 남편이 졸린 눈을 비비며 배웅해 주었다. 부모님이 한국으로 돌아가시기 전에 함께하는 마지막 여행이라 더욱 특별했다.


새벽 공기는 제법 쌀쌀했다. 우리는 어둠을 헤치고 페리에 올라탔다. 잔잔한 물결 위로 도시의 불빛이 아련하게 흔들렸다. 베르겐 시내에 도착한 후에는 기차역까지 부지런히 걸음을 옮겼다. 기차 시간이 아직 한 시간 남았지만, 남편 없이 기차역까지 혼자 가는 게 처음이라 초조한 마음에 발걸음이 가볍지 않았다. 길이 어두워 방향을 헷갈리기도 했지만, 기억을 더듬어 무사히 도착했다. 시간이 남아 근처 슈퍼에서 기차 안에서 먹을 빵과 간식, 커피를 샀다.


“졸리지 않으세요? 기차 안에서 눈 좀 붙이세요. 오늘 일정이 쉽지는 않을 거예요.” 무박 2일의 강행군이라 부모님께 에너지를 보충하시라고 말씀드렸지만, 부모님은 괜찮다며 미소 지으셨다. 베르겐에서 오슬로까지의 기차 여행을 손꼽아 기다리던 엄마는 들뜬 표정이었고, 아빠는 노르웨이 수도 오슬로에 대한 호기심으로 설레여하셨다.


기차 안에는 예상보다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아이와 함께한 가족, 혼자 여행하는 사람, 친구들과 동행한 어르신들까지 다양한 이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기차는 8시간 동안 서쪽에서 동쪽으로 달리며, 작은 마을과 산을 넘나들었다. 마치 노르웨이의 자연이 자랑이라도 하듯, 기차 창밖으로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졌다. 가을의 울긋불긋한 단풍에서 시작해 점차 눈 덮인 겨울 풍경으로 변해가는 모습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아빠는 친구들에게 보여주겠다며 연신 사진을 찍으셨다. 나 역시 아침 일찍 시작한 하루라 피로가 몰려왔지만, 이 멋진 풍경을 놓치기 아까워 커피를 마시며 졸음을 쫓았다.


오후 늦게 오슬로에 도착했다. 8시간의 기차 여행이었지만, 자연 덕분에 지루할 틈이 없었다. 우리는 밤 기차로 다시 베르겐으로 돌아갈 예정이었기에, 빠르게 오슬로의 명소들을 돌아보았다. 시청, 도서관, 항구, 오페라 하우스 등을 방문하며 부모님과 함께 오슬로 시내 곳곳을 걸었다. 부모님이 힘들어하실까 걱정했지만, 다행히 잘 따라주셨다. 걷다가 피곤할 땐 바닷가 벤치에 앉아 잠시 쉬기도 했다. 바다를 바라보며 간식을 나누던 순간, 말없이 같은 풍경을 공유하는 그 시간이 너무도 평온하고 행복했다.


밤 12시쯤, 베르겐으로 돌아가는 기차 안은 텅 비어 있었다. “더 이상의 탑승객이 없을 예정이니, 편하게 앉아서 쉬어도 돼요.” 표를 검사하는 역무원이 친절하게 말해주었다. 그의 안내에 우리는 자리 하나씩 차지하고서 몸을 기댔다. 덜컹덜컹, 흔들리는 기차에 몸을 맡기자 금세 피곤이 몰려왔다.


부모님과 언제 다시 이런 시간을 가질 수 있을까 싶어 욕심을 부려 떠난 여행이었지만, 후회는 없었다. 부모님과 함께한 소중한 추억을 하나 더 만들 수 있어 감사할 따름이다. 그리고 쌍둥이를 혼자 돌보느라 고생했을 남편에게도 너무나 고맙다. 집에 도착하면 따뜻한 밥 한 끼 정성껏 차려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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