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롱 인디펜던트 우먼으로 한 걸음

Cat & Cozy Nest 프로젝트 | 발코니 리뉴얼 Part.2.

by 채루에 Ruhe

발코니, 고작 5 sqm도 안될 공간을 치우는 데 필요한 에너지


등가 교환의 법칙


발코니 타일은 낮은 가격이지만 꽤 양이 많아서 좋은 딜로 팔아 냈지만, 무료로 가져가라고 해도 가져가지 않을 것들은 나눔도 할 수가 없다. 내가 무료로 남겨진 가구 같은, 이런 이득을 취할 수 있었던 건 진짜 노력의 대가인 게, 전 세입자가 시간이 없다며 버리던지 쓰던지 하라고 남기고 간 것들의 반쯤은 버려야 하는 상태였다. 그리고 그것들을 그가 직접 버리고 가지 않은 건, 버리는 데에도 품이 많이 드는 것들이 있어서였고, 아마 팔만한 상태의 물건들도 남기고 간 건, 그래야 버려줘야만 하는 물건들도 퉁이 되니까가 아닐까 싶다. 마치 등가 교환의 법칙이랄까. 팔레트는 딱 버려야만 하는 귀찮은 잔재 그 자체였다.


독일에서는 슈페어뮬(Sperrmüll)이라는 게 있는데, '부피가 큰 쓰레기'라는 뜻이다. 한국에서도 가구를 버릴 때면 미리 신청한 스티커를 붙여서 내어놓아야 하는 걸로 아는데, 독일에서도 마찬가지로 각 주나 도시별로 업체에 미리 예약해서 정해진 날짜에 집 앞에 지정된 공간에 내어놓아야 한다. 내가 사는 프랑크푸르트에서는 가구 당 4주에 한 번씩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데, 이걸 믿고 나는 전 세입자이자 집주인에게 이 친구들을 내가 처리하겠다고 한 것도 있었다. 그래서 예약을 하기 위해 웹사이트에 들어갔는데 팔렛 등은 전화예약을 하라고 되어있는 게 아닌가. 왜 지? 왜 다른 물건들처럼 온라인 예약은 되지 않을까 하며 전화를 걸었는데 나무 팔레트는 가구가 아닌 공업용/상업용 자재로 인지되어 해당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똑같이 가구로 활용했던 나무인데 왜 안되냐고 했더니, 규정이 그렇다고 했다. 대신 인근에 있는 폐기물 처리장 (Wertstoffhof)에 직접 가져가야 하고 부피에 따라 비용이 발생할 수도 있다고 했다. 확 바로 스트레스가 몰려왔다. 등가교환보다는 이득이었다고 생각했던 이 남겨진 가구들이 최소 등가교환임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나는 일단 차는 물론이고, 운전면허가 없다. 거기까지 이걸 실어줄 우버나 택시도 있을 리 없었다. 주소를 찍어보니 차로 가도 20여분이 걸리는 거리였다. 머릿속에 여러 시나리오가 떠올랐고, 고민 끝에 내 고마운 친구 삔새에게 결국 연락을 했다. 이미 삔새는 나를 수차례 도와준 전적이 있었기에 너무 몰염치한 기분이었지만, 예상했던 것처럼 당연히 도와준다며 삔새는 바로 날을 잡았다. 아마 나도 내 비빌 언덕이 어딘지 알았던 거다.




친구 찬스로 가는 독일의 폐기 처리물장


다 함몰되다 못해 침식되어 버린 염치를 조금이나마 챙겨보겠다고, 삔새가 오기 전에 미리 팔레트를 밑에 내려놨다. 삔새는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카쉐어링 자동차를 끌고 집 앞으로 와주었다. 그는 정말 사랑이다. 자주 보는 우리이기에, 간단히 인사만 하고 바로 차에 실은 뒤, 구글맵에 찍은 폐기처리장을 향해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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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으로 오랜만에 보니 더 놀라운 팔레트들. 다행히 뒷자석을 눕히니 차에 딱 맞게 들어갔다.

팔레트를 실을 때는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이 가득했는데, 막상 출발하고 나니 흐린 날에도 불구하고 작은 드라이브를 가는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삔새와 같이 음악도 들으며, 매번 이렇게 자주 만나도 늘 할 얘기가 많아 수다도 떨면서 금세 20분 거리의 폐기물 처리장에 들어갔다. 입구에서부터 차들이 줄을 서있었고, 뭔가 결제도 하면서 들어가는 분위기였는데, 아마 우리는 차도 작고 짐도 별로 보이지 않아서인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바로 안으로 들여보냈다. 추가금이 또 발생할까 봐 살짝 쫄아있던 나였는데, 갑자기 돈을 번 기분이 들었다. 안에 들어가니 여기저기 다른 종류의 푯말이 걸린 컨테이너들이 보였고, 우리는 차를 천천히 몰며 Möbelholz(가구용 나무)를 찾았다. 마침 그 앞에 자리가 많이 남아있어 삔새는 널찍하게 차를 댔다. 장갑을 하나만 가져왔기에 큰 팔레트들은 내가 버렸고, 가만히 있으래도 굳이 삔새는 작은 조각들이라도 던져줬다. 생각보다 높아서 무거운 팔레트들은 허리를 조심해 가며 버렸다. 몇 주간 골머리를 썩이던 놈들과 속 시원한 작별을 하는 순간이었다. Tschü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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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의 말차라떼


끝나고 시내로 돌아와 이번 여름 트렌드에 맞게 말차 데이트를 즐기기로 했다. (다시 한번, 이건 여름의 이야기이다) 사실 밥을 사도 모자란 판에 먼저 말차라떼나 사주라고 한 삔새의 마음이 또 따뜻했다. 해외에 살면 이런 가족 같은 친구가 생긴다는 점은 정말 특별하다. 서로 혼자임을 알기에 생기는 그런 든든한 마음이다. 오랫동안 알고 지내던 친구들이 한국에 있어 그립다가도, 또 이런 타지생활을 공유하는 우정은 다른 결의 것이기에, 그 애틋함과 끈끈함은 아마 타향살이를 해 본 사람만 알 수 있는 무엇이지 않을까.


시내에선 자리가 잘 없어 꽤 뺑뺑 돌다가 차를 겨우 대고, 인근에 있는 팝업 스토어에 생긴 말차 전문점으로 가서 주문하고, 사진도 찍고, 자리에 앉고 나니, 드디어 주말의 큰 숙제가 하나 끝난 기분이었다. 또 다가오는 우리의 다음 만남엔 무엇을 할지, 요즘은 조금 잠잠한 우리의 드라마틱 라이프에 대해 감사하는 이야기들을 나눴다. 삔새랑 나는 25년에 꼭 여름휴가를 같이 가기로 했었고, 막 메노르카에 호텔을 예약을 하고 처음 만난 날이라 신나게 여름휴가를 상상하고 계획해야 하는 일정들을 이야기하며 시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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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크푸르트 시내에 이번 여름 한참 핫했던 말차라떼 팝업 가게. 올 여름, 정말 많은 말차전문점이 생겼지만 솔직히 티 자체는 여기가 제일 맛있었다. 사라져서 아쉬운 OddRealm


스트롱 인디펜던트 우먼(Strong Independent Woman)으로 한 걸음


삔새는 힘차게 팔레트를 집어던지는 나를 보며, "Wow, strong independent woman!"이라고 외쳐주었지만, 혼자 여기까지 오지도 못하는 내가 어떻게 독립적이라고 할 수 있겠냐 하는 모순이 자꾸만 내 양심을 찔렀다. 개인적으로 운전이라는 개념자체가 무섭기도 하고, 환경에 좋지 않다는 생각도 있는 데다, 무작정 독일로 와버리는 바람에 한국에서 따오지 못한 독일 면허는 그 가격이 어마무시해서 진짜 운전할 결심을 하야나 딸 수 있겠다 싶었다. 약 3,000유로, 그러니까 지금 환율로 한 500만 원 가까이 드는 면허는, 아직 평생 독일에 살겠다는 마음을 먹지 못하고 있는 내게, '아, 한국에 만약 돌아간다면 너무 억울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외면하던 주제였다. 도무지 딸 결심을 하지 못하고 있던 내게, 이 삔새의 말은 무언가를 마음에 남겼고, 그 다음날, 바로 면허학원 이곳저곳에 다시 한번 문의를 넣었다. 결국 그다음 주, 면허학원에 등록을 했다. (놀랍게도 아직도 ing인 면허취득 이야기는 따로 해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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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sqm, 그러니까 1.5평도 안 되는 공간을 치우고 새로이 단장하는데 글이 세 편이나 올라간다. 지겹겠지만 다음이 마지막이다.



독일어도, 운전도, 2025년 안에는 무언가 이루었길 바랐지만 눈에 띄게 변화한 것은 별로 없다. 그렇지만 다 하지 못했다고 해서, 아무것도 못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지난 몇 년간 배웠다. 나를 가장 내려치기 하던 건 바로 나였기에, 요즘 나는 반올림을 하기로 했다. 반만 해도 반올림을 하면 다 한 것과 마찬가지 아닌가. 시작이 반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필기를 붙은 면허도 반은 끝났으니, 거진 다 한 것과 마찬가지이고, 독일어도 학원 등록은 했으니 반은 한 것과 마찬가지 아닐까. 이루진 못했어도, 보람찬 2025년을 보냈다 생각하리라. 26년엔 더 독립적이고 튼튼한 내가 되기 위한 좋은 밑거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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