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제9회 브런치 대상 작품 <미물일기>
마트에서 구매한 상추를 씻을 때였다. 이파리 사이로 민달팽이가 스윽 자신의 존재를 알렸다. '네가 왜 거기서 나와.' 나만 당황한 게 아니었다. 민달팽이도 배추 바깥세상에 당황했는지 안테나처럼 길게 뻗었던 눈을 몸속으로 숨겼다. 입이 아니라 눈으로 민달팽이의 존재를 알아차려서 참 다행이었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민달팽이를 어찌 처리해야 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한다. 내쫓거나 함께 살거나. 몇 년 전만 해도 벌레를 비롯해 집에서 발견되는 동물들의 종착지는 늘 '변기 바다'였다. 레버 한 번에 어떤 벌레든 깔끔하게 처리됐다. 하지만 똘이와 헬씨와 함께 살게 되면서 인간보다 작은 동물들의 생명도 좀 더 주의를 기울이게 되었다. 그들을 함부로 물바다에 빠뜨려 익사시키지 않는 것. 휴지로 압사시키지 않는 것. 일단 '깔끔한 살생'을 함부로 하지 않게 되었다. 결국 민달팽이를 파프리카와 로메인 상추가 심긴 화분에 옮겨 놓았다.
그럼에도 여전히 귀에서 '윙' 소리가 들릴 때면 서른 해 넘도록 몸에 밴 '짝' 박수가 반사적으로 나온다. 손바닥에 묻은 피와 사체를 보며 약간의 죄책감을 느끼지만, 욕실에 들어가 손바닥을 싹싹 빌며 물로 씻어버리면 죄책감도 함께 쓸려간다.
진고로호 작가의 제9회 브런치 대상 작품 <미물일기>
'나 같은 사람이 여기 또 있네' 하는 마음으로 읽은 책이 있다. 바로 진고로호 작가가 쓴 책 <미물일기>. 책 < 미물일기>는 제9회 브런치 대상 작품이다. 작가는 공무원을 퇴사하고 지금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있다. 진고로호라는 이름은 한때 함께 살았던, 현재 함께 살고 있는 고양이들의 이름을 조합한 필명이다. 필명에서 알 수 있듯 고양이를 향한 작가의 애정을 느낄 수 있다. 추측컨대 고양이를 향한 애정이 씨앗이 되어 미물의 세계를 자세히 들여다보며 미물일기를 썼을 것 같다.
'미물일기'라는 제목은 제가 일상에서 작은 생명들과 마주치던 순간을 기록한 일기에서 따왔습니다.
- 9p
작가는 일상에서 만난 작은 생명을 '미물'이라 불렀다. 책 <미물일기>는 미물과 작가가 만나 탄생한 일기다. 미물을 향한 작가의 마음은 다채롭다. 아마도 미물의 삶이 다채롭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미물을 바라보는 작가의 마음이 무지개 같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존경, 연민, 유희, 기쁨 등 다양한 감정이 드러난다.
적상추 속 민달팽이에게 연민을, 몰입하는 딱따구리에게 존경을
먼저 소개해주고 싶은 미물은 집 안에서 만난 민달팽이다. 작가는 비닐 속 적상추에서 나온 민달팽이를 바라보며 연민이라는 감정을 느낀다. 물론 불쌍하다는 말은 함부로 쓰기 어려워졌다고 한다. 타자보다 우월하다는 오만으로 느껴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라는데, 민달팽이를 보는 순간 세 글자가 떠올랐다고 한다. '불쌍해.' 작가는 민달팽이를 화장실 변기나 쓰레기통에 처분하지 않는다. '초록이'라는 이름을 지어주며 한 지붕 아래 함께 살며 여러 좌충우돌을 겪는데 공감되는 부분이 많아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그는 집 밖에서도 미물을 관찰한다. 위에서 아래로의 감정 '연민'이 아닌 아래에서 위로의 감정 '존경'을 보내기도 한다. 가을 어느 날 수종사라는 절에서 딱따구리를 만난다. 딱따구리는 나무에 하나의 점을 정하고 정신없이 몰입해서 쫀다. 그 모습을 보며 자신을 돌아본다. 작가는 동물을 '자동 기계'로 여겼던 유명 철학자 데카르트와는 정반대 시선으로 동물을 바라본다. 우리는 인간이 아닌 모든 동식물을 기계로만 바라보고 있진 않은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동물은 생존하기 위해 집중한다. 완전하게 현재를 산다. 인간은 자주 지금에 머무르는 데 실패하고 어딘가를 맴돈다.
- 46p
나만 해도 그렇다. 얼마나 현재에 집중하기가 어려운가. 우리는 종종 과거를 그리워하고 찬란한 미래만을 상상한다. 물론 과거와 미래를 생각하는 것이 무조건 부정적이지만은 않다. 다만 우리는 보통 과거와 미래를 현재로부터 달아나기 위한 회피의 수단으로 선택한다. 딱따구리님에게 존경을 보낸다.
마지막으로 이 책은 단순히 감정만을 나열하지 않는다. 미물에 관한 정보도 간간히 얻을 수 있다. 미물이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고 번식은 어떻게 하는지 궁금하지 않은가. 필자도 가끔은 검색을 해보기도 하고 오랫동안 관찰해보기도 한다.
효율성이 지상 최대 가치인 현대인에게 미물에 관한 정보는 무용하다고 느껴질 때가 많다. 하지만 작가는 그때마다 검색하고 탐구하며 미물 세계에 관해 깊이 있게 이해하려고 노력한 것 같아 보인다. 미물에 대한 깊은 이해는 결국 미물을 향한 존경심과 존중심으로 확장된다.
죽어가는 지렁이를 안타깝게만 여겼지 지렁이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자웅동체, 눈과 코는 없고 입만 있으며, 토양을 비옥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는 정도였다. 지렁이는 피부가 약하고 수분의 증발을 잘 조절하지 못해 빛이 있는 낮이나 날씨가 덥고 건조할 때는 땅속에 머무른다고 한다. 지표면의 낙엽, 썩은 뿌리 등을 흙 속으로 가져가 섭취하고 배설하는 과정에서 흙과 유기물을 섞어 땅에 영양이 돌게 만들며 그 똥은 농작물 재배에 도움이 된다고. 지렁이는 실로 지구에 없어서는 안 될 동물이구나. 대단해!
- 22p
꼿꼿해진 마음 스트레칭하기
지렁이나 벌레를 옮겨주는 일도 솔직히 말하면 내게 의미를 알 수 없는 유희에 지나지 않는다. 생명을 사랑하는 따뜻한 품성의 실현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취향이며 취미라고 부르는 것이 더 어울린다.
- 97~98p
작가는 이게 무슨 대단한 '생명 살리기'가 아니라 '유희'라고 솔직하게 고백한다. 작가는 겸손하게 스스로의 행동을 유희라고 표현했지만, 이왕이면 지렁이를 밟아 죽이는 유희나 낚싯바늘에 꽂아 죽이는 유희보다는 훨씬 낫지 않은가. 죽이는 유희보다는 살리는 유희를 취미로 가져보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가 오는 날이면 더 유심히 땅을 보고 걷게 될 것 같다. 빗물 웅덩이를 조심하기 위함이기도 하지만 땅에서 꿈틀거리는 지렁이를 조심하기 위함이기도 하다. 확신할 순 없지만 기회가 된다면 지렁이를 흙 쪽으로 옮겨주는 시도도 해보겠다고 다짐해본다. 이 무슨 우연인가. 시골집 무주에 내려와 이 글을 쓰던 중 마당에서 검지 손가락만 한 민달팽이를 발견했다. 플라스틱 막대기로 녀석을 마당의 식물 위에 옮겨주었다. '유희'라고 표현했던 작가의 마음이 온몸으로 이해되는 순간이다.
미물은 사전적으로 '인간에 비하여 보잘것없는 것'을 의미한다. 책 <미물일기>는 미물을 관찰하며 적은 일기이기도 하지만 미물에 불과한 인간의 겸손한 일기이기도 하다. 미물을 관찰하려면 고개나 허리를 숙이거나 미물에게로 가까이 다가가야만 하기 때문이다. 목과 허리를 꼿꼿이 펴서는 안 된다. 꼭 미물을 관찰하지 않더라도 진고호로의 <미물일기>를 엿보며 꼿꼿해진 마음을 스트레칭해보는 것도 좋겠다.
(오마이뉴스 기고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