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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우 Oct 21. 2020

졸려도 너무 졸려

채식 이후 몸의 변화 4편

고등학생 때였다. 점심 급식 후 소화가 될 무렵인 2-3시에 식곤증이 찾아왔다. 커피도 몰랐던 시절이다. 5-7교시는 그야말로 잠 파티였다. 반 친구들은 하나둘씩 책상에 머리를 처박곤 했다. 나도 책상과 얼굴을 맞대고 수업시간을 보낸 학생 중 하나였다. 식곤증 때문만은 아니었을 거다. 공부 자체가 싫기도 했고 몇몇 선생님 수업은 너무 지루했다. 해설지를 읽는 선생님도 있었으니까.


언젠가부터 나는 더 이상 졸지 않았다. 자버렸다. 효율적이라고 판단했다. 한 교시만 푹 자고 일어나면 다음 교시부터는 맑은 정신으로 공부할 수 있을 테니까. 현실은 예상과는 반대로 흘러갔다. 식곤증이 숙면으로 이어졌다. 한 교시만 잔다는 게 저녁 먹을 시간에 일어나버렸다.


대학에 입학했다. 공포의 2시는 매일 찾아왔다. 고등학생 때는 잠을 자다가 얻어맞은 적도 있었는데 잠깐 아프면 끝이었다. 하지만 대학은 다르다. 누구도 날 때리거나 깨우지 않았지만 그사이 학점과 등록금이 날아갔다. 후회가 몰려왔고 그 이후로 난 강의실 뒤편에 서서 수업을 듣기도 하고, 잠을 깨기 위해 세수를 하기도 했다.


회사에 입사했다. 마찬가지로 점심 식사 이후 찾아오는 식곤증 때문에 곤욕스러웠다. 당연히 고등학교 때처럼 책상에 엎드려 잔다 해도 누가 때리거나 혼내지는 않겠지만, 잘 수 없었다. 해고의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회사에서 일할 때에는 식곤증 예방을 위해 오전에 커피 한 잔을 마셨다. 그래도 졸리면, 오후에 커피를 한 잔 더 마시거나 달달하고 시원한 음료를 마셨다. 그래도 졸리면, 바람을 맞으며 빌딩 숲을 잠시 거닐었다. 회사에서 겪는 식곤증은 학교에서 겪는 식곤증 만큼이나 위력적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깨달았다. 식곤증이 사라졌다. 아메리카노 투샷도 해결하지 못했던 식곤증을, 채식이 해결했다. 채식 이후 확실히 머리가 맑아졌다. 채식 이후 1년 동안 식곤증을 경험한 건 손에 꼽을 정도다. 식곤증의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음식이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일단 식단에 관계없이 식사 이후에는 몸이 나른해지면서 잠이 온다.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소화와 흡수 과정 가운데 생기는 혈류량이 가장 큰 요인으로 지목된다.


그런데 음식 중에서도 유난히 식곤증을 유발하는 음식들이 있다. 트립토판이란 물질이 다량으로 함유된 음식이다. 트립토판은 세로토닌 분비량을 증가시킨다. 따라서 트립토판 물질이 함유된 음식을 섭취하면 결국 세로토닌 분비량이 늘어나게 되고 더욱 잠이 오게 된다. 인슐린 증가도 원인이 된다. 인슐린이 과다 분비되면 일시적으로 흥분 상태가 되며 이후 순식간에 혈당이 떨어지면서 졸음이 몰려온다.


(식곤증 원인에 대해서는 여러 이유들이 있으니 관련 기사나 논문을 찾아볼 것을 권한다.)


채식이 식곤증을 어떻게 사라지게 할까?

채식이 식곤증을 사라지게 하는 이유를 정리해봤다.


첫째, 트립토판 분비량이 줄었다. 트립토판은 치즈, 붉은 고기, 계란, 생선, 참깨 등에 많이 함유되어있다. 채식을 하면 트립토판이 함유된 음식 섭취량이 줄기 때문에 트립토판의 분비량이 줄어든다.


둘째, 인슐린 분비량이 줄었다. 인슐린은 육류와 계란, 당류를 섭취했을 때 분비량이 늘어난다. 채식 이후 육류는 먹지 않고, 계란 섭취량은 현저히 줄어들었기 때문에 인슐린 분비량이 줄어들었다. 게다가 채식을 시작하면서 주식을 쌀밥에서 현미잡곡밥으로 바꾸었다. 쌀밥도 채식이지만 영양을 이유로 현미잡곡밥으로 바꾸었다. 인슐린 양도 줄어들었을 것이다.




식곤증 때문에 참 오랫동안 고생했다. 경험해 본 이는 알 것이다. 식곤증이 찾아오면 눈꺼풀이 천근만근 무거워진다. 머리가 멍해지면서 정신도 몽롱해진다. 해야 할 일은 많은데 집중이 안되니 마음은 괴로워진다. 채식 이후 식곤증이 사라졌다. 점심 식사 후 졸음이 찾아왔던 경험이 기억이 안 날 정도로 상쾌하고 맑은 일상을 살고 있다. 코가 맑아졌고 장이 맑아졌고 머리도 맑아졌다. 채식 덕분이다. 채식 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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