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 이후 몸의 변화 5편
채식 덕분에 뜻하지 않았지만 건강해졌다. 생각지 못한 보너스 효과다. 그런데 과연 내 몸은 건강해지기만 했을까?
채식 이후 언젠가부터 종종 급격한 피로감을 느끼곤 했다. 가벼운 산책, 쇼핑, 장보기와 같은 작은 자극에도 급격한 피로감을 종종 느꼈다. 후지산을 등반하고 2박 3일 지리산도 종주했던 체력은 어디로 간 걸까.
채식 때문에 체력이 저하된 걸까. 그렇지 않다. 채식 때문만은 아니다. 코로나와 나이도 영향을 끼쳤다. 코로나로 인해 유산소 운동을 주기적으로 하지 못했기 때문에 기초 체력이 저하되었다. 무엇보다 결정적으로 나이 앞자리가 바뀌었다. 세월 앞에 장사 없다. 체력은 나이에 반비례한다는 말을 몸소 깨닫는 중이다.
솔직히 말하면 채식 때문에 체력이 저하되고 급격한 피로감을 느낀다는 걸 인정하기 싫었다. "체력 저하와 피로감의 원인은 전부 체력과 나이 탓이다."라고 말하고 싶었다. '채식하더니 저 꼴 좀 봐.' 누군가 나를 비웃고 있는 것만 같았다. 채식 때문에 건강을 잃는다는 게 왠지 모르게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다. 자존심을 지키고자 건강을 잃는다니,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그래, 채식이 대수인가?' 건강을 잃을 수 없었다. 결단해야만 했다. 다시 육식해야 하는 걸까? 아니다. 나에겐 채식이 대수다. 건강 챙기는 채식을 하면 된다.
자가진단
지난 채식 식단과 몸 상태를 진단해보기로 했다. 먼저 정보가 필요했다.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다행히도 꽤 많은 기사들이 나왔다. 채식 문화가 전반적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점을 시사했다. 기사에 의하면 채식하면 부족해지기 쉬운 영양소는 철분, B12, 단백질, 칼슘이다. 지방을 언급한 기사도 있었다.
각 영양소별로 분류하여 식단을 진단해봤다.
첫째, 단백질과 칼슘 양. 그동안 단백질과 칼슘은 부족하지 않게 섭취했었다. 채식 초기부터 단백질과 칼슘 섭취량은 신경을 많이 썼다. 두유와 두부를 꾸준히 먹었고 주식인 밥은 현미잡곡밥을 먹었다. 그 결과 체중 감량 대비 감소된 근육량 비율이 크진 않았다. 다행이었다.
둘째, 지방량. 이미 아몬드, 땅콩, 호두 등 견과류를 꾸준히 섭취하면서 지방 섭취량은 염려하지 않았다. 이전 글에서 밝혔듯 주민센터에서 체성분을 검사했다. 체지방량이 너무 적게 나왔고 영양상담사는 지방 섭취량을 늘려야 한다고 조언했다. 섭취하는 견과류 양을 늘리기로 했다.
셋째, 철분과 비타민 B12. 철분과 비타민 B12가 부족하면 빈혈 증상이 나타나고 피로감을 자주 호소한다. 이를 신경 써서 식단을 구성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평소에 섭취했던 식품 중에 철분과 비타민 B12가 포함된 식품들이 많았다. 배추, 시금치와 같은 녹색채소와 감자에는 철분이 함유되어 있고 두유, 시리얼, 카레가루, 김에는 비타민 B12가 함유되어 있다. 마음이 한결 놓였다. 하지만 채식 이후 급격히 피로감을 느꼈던 적이 있었는데, 그 이유가 철분과 비타민 B12의 섭취량 부족이라고 판단했다. 앞으로는 조금 더 신경 써서 식단을 구성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잘못된 채식은 건강을 해친다. 파스가 만병통치약이 아니듯, 채식이 만병통치식은 아니다. 채식을 하면 단백질과 지방, 그리고 철분과 B12를 놓치지 않도록 챙겨 먹어야 한다. 이외에도 식단을 체크해보며 섭취하는 필수 영양소들을 꼼꼼히 챙겨야 한다.
그런데 육식도 마찬가지다. 육식과 영양의 관계는 필요충분조건은 아니다. 육식을 하더라도 영양소는 챙겨야 한다. 부족한 채식이 건강을 해치듯, 과도한 육식도 건강을 해친다. 육식은 완벽한 식단이 아니고 채식은 불완전한 식단이 아니다. 영양을 잘 갖춘 채식은 건강을 해치지 않는다.
나는 불가피하게 고기를 먹어야 하는 사람들이 있음을 인정한다. 하지만 채식이 불완전한 식단이어서 모든 이들이 육식을 해야만 한다는 주장에는 반대한다. 그 주장은 틀렸다. 건강과 영양 때문에 채식은 틀렸다는 이들에게 묻고 싶다. 당신은 정말 건강한가? 그리고 우리 모두는 건강한가?
1년 전에 채식을 시작하면서 수박 겉핥기라도 영양학 공부를 해야겠다고 다짐했었다. 하지만 제대로 공부하지 못했다. 간간히 인터넷 검색 정도로 정보를 탐색하는 정도였다. 올해는 책 한 권이라도 붙들고 영양에 대한 공부를 꼭 해야겠다. 채식 2년 차에는 '가려먹는 채식주의자'에 그치지 않고 '꼼꼼히 챙겨 먹는 채식주의자'로 거듭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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