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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집사 Mar 07. 2024

김치쌈밥 현미스튜

오천 원짜리 로또요리

 


 바야흐로 봄이 도래했다. 창밖 나뭇가지들은 여전히 앙상하지만 눈을 크게 뜨고 보면 곳곳에 꽃망울을 피었다. 우리 집 냥이들도 집사를 따라 바깥 구경을 시작했는데, 그들은 꽃보다 옆집 비둘기에 관심이 더 많아 보인다. 아침마다 나란히 창문에 기대어 있는 모습을 밖에서 보면 좀 귀여우려나.



 경칩이 지났다는 건 여러모로 의미가 있다. 그것은 창문 뽁뽁이를 때야 하고, 겨울 이불을 빨아야 하고, 냉장고 속 김장김치를 조속히 처리해야 한다는 걸 의미한다. 이쯤 되면 냉장고 문을 열 때마다 화석이 되어가는 김치통이 안쓰럽고 죄스럽고 그렇다. 다행히 지난밤 TV 속 한 배우가 묵은 김치를 하루 동안 물에 담가뒀다가 구워 먹으면 된다고 알려 주셨다. 운동을 하던 중이라 군침이 고이는 현실에 몸부림쳤지만, 두 눈은 번쩍하고 백열전구가 켜졌다.



 다음날 얼른 김치를 꺼내 깨끗이 씻은 뒤 정수물에 담가 냉장고에 넣어 두었다. 간이 센 음식은 멀리하고 싶어 잘 먹지 않았던 게 되려 김치를 활용할 명분이 된 거 같아 신이 났다. 혼자 요리를 하면서 나름의 철학? 이 생겼다면 어떻게든 버리지 않고 입에 맞게 만들어 먹자라는 것이다. 그걸 실천하려면 더러 요상한 음식들이 나오지만, 아주 드물게나마 5천 원짜리 로또처럼 근사한 요리가 탄생하기도 한다.(물론 재현은 어렵다.)



 여담으로 지난밤 반려인에게 곰탕용 고기와 김치를 볶아 볶음밥을 해줬다가 ‘받친다’는 혹평을 받았다. 이건 앞에 말한 요상한 음식에 적합한 예이다. 물론 김치를 믿고 간을 하지 않은 게 화근이 되었다는 건 인정한다. 그래도 나름 하트 모양이었는데... 반숙 계란 프라이도 올렸는데… 참기름도 둘렀는데… 결혼하고 두 번째 들어본 “받친다”였다. 그 말을 들으면 당연히 내 머릿속에선 열이 받치고,  동시에 그의 면상에 머리를 받쳐?버리고 싶다.



 이런 분한 마음을 나름 변론해 보자면 나는 누군가에게 평가받으려고 요리를 하는 게 아니다. 요리를 할 때마다 통장에 돈이 꽂힌다면 더 나은 요리가 나왔을지도 모르지만, 설렁 그럴 생각이었으면 직업으로 삼았을 것이다. 주부의 요리는 사랑하는 가족에 대한 배려이자 희생이다. 고로 맛이 없더라도 막말을 할 시엔 삼대가 화를 면치 못한다. 입맛에 맞지 않더라도 “좀 느끼한 거 같다” 정도면 될 말이었다. “받친다”라니… 도통 아무리 생각해도 정이 가지 않는 말이다.



 어찌 되었건 없는 솜씨지만 부지런히 식재료와 반찬들을 활용해 자극적이지 않고 음쓰를 최소화하는 요리를 하겠다는 의지만은 굳건하다. 장바구니 물가를 본격적으로 한탄하기 앞서 낭비되는 식재료가 없는지 살피는 것이 현실적으로 지혜로운 처세라는 걸 근래 들어 깨달았다.



 고로 오늘은 바로 그 김치를 이용한 요리를 만들었다. 김치쌈밥 현미스튜. 언젠가 감명 깊게 보았던 영화 호노카와 보이의 양배추롤을 떠올리며 70대 할머니의 마인드로 만들어 본 것이다. 영화에선 보글 머리 백발의 할머니와 20대 청년의 로맨스를 그리고 있지만 글쎄… 어떨까 싶다. 물론 영화에서도 할머니 입장만 그렇다고 설명하지만, 현실에선 손자애 정도 되려나.



 아무리 늙어도 마음만은 꽃청춘이라고들은 하나, 내 경우엔 이미 그쪽 감성은 깊은 산속 주지스님과 다르지 않다고 여기기에 거추장스럽고 귀찮기 짝이 없다. 대신 이제 인류애, 동지애, 전우애 등으로 설명할 수 있는데, (이것도 사랑의 일종이다.) 험한 세상 함께 살아남은 것만으로도 응원하는 마음이 되는 짠한 애정이다. 더 깊이 들여다보면 이 감정은 동성보다 이성에게 훨씬 더 진하게 발휘되는 거 같다. (그래서 나의 아저씨를 보면 지금도 눈물이 난다.) 아무래도 동성 간에는 암묵적 경쟁 구도가 생기기 마련이라 당장은 응원이니 지지니 하지만 점점 내면 깊은 곳에선 불안과 초조함을 동반한 찌질한 질투가 생겨나기 마련이다.(윤리적인 문제를 떠나 의지 밖의 문제이다.) 호랑이와 코끼리는 주식이 다르니 때문에 서로를 측은하게 여길 수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그러는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성이라는 구분은 다른 종처럼 서로의 거리를 일정하게 유지시켜 주고, 애정이 생기기 위해선 어느 정도의 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바이다. 결국 자식이 아니라 손자 뻘이면 사랑할 수 있다는 소린가…



 이야기를 하다 보니 너무 멀리 간 거 같다. 다시 돌아와 만드는 법을 설명하고 마무리할까 한다. 우선 물기를 뺀 김치잎을 준비하고, 간장 조미된 소고기와 잡곡밥을 잘 섞는다. 너른 접시(도마 꺼내기 귀찮기 때문.)에 김치잎을 잘 펼친 뒤 숟가락으로 밥을 응축시켜 올리고, 아기 포대기 싸듯 터지지 않게 여며준다. 참고로 아기 포대기를 싸본 적이 없다. 현미와 들깻가루 커리를 팬에 넣고, 오일을 두른 뒤 볶아서 루 비슷한 걸 만들고, 두유를 넣어 걸쭉한 농도가 될 때까지 바글바글 끓여준다. 어느 정도 스튜가 완성되면 먼저 만들어 둔 포대기 쌈밥을 차례로 입수시키고, 잔잔한 콧노래를 불러줘 가며 소스가 잘 배도록 젓가락으로 하나하나 동글려 준다. 끝으로 나는 넣지 않았지만 취향에 따라 치즈를 뿌려도 좋을 듯하다.

 끄읕.


p.s 굳이 커리는 안 넣어도 될 듯합니다. 색이 좀 별로네요… 아기포대기 싸듯 만든다고 했는데, 만들고 보니 머릿 속에 떠오르는 게 하나 있네요.;; 어디서도 팔지 않는 것이라 별미라 생각하고 먹었습니다. 물론 제 입에는 아주 좋았습니다. 그럼에도 손이 많이 가서 자주는 무릴 듯합니다. 그냥 다 넣고 볶으면 이런 맛이 안 나겠지요…

실력은 안 늘고 요령만 느는 최집사였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따뜻한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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