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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집사 Apr 04. 2024

토마토 현미떡볶이

역시 떡볶이



요즘 사람들은 엽떡이 추억의 음식이라 했다. 나의 추억의 음식은 방과 후 집으로 돌아올 때, 혹은 엄마 따라 시장에 갔을 때, 포장마차에서 서서 먹는, 치즈나 당면 따윈 절대 추가할 수 없는, 한 접시 1000원 미만의 그것이었다. 이것으로 내가 옛날 사람이란 게 증명되었을까…? 명문대 정원미달 학과에 겨우 추가 합격한 신입생처럼 MZ인 척하는 건 이제 소용없게 되었다.



 국민학교를 입학해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유치원 때는 5층 짜리 아파트 2층에 살다가, 학교에 들어가면서 12층 짜리 아파트 11층으로 이사를 갔다. 외할머니는 다 똑같이 생긴, 그래서 찾기 어려운 그 닭장 같은 아파트를 싫어하셨다. 나는 싫지도 좋지도 않았지만, 엄마 아빤 하루기 다르게 어디서 좋다 하는 것들을 자꾸 배워오셨다.



 어쩌다 학교를 마치면 언니와 친구들이랑 콩콩을 타러 갔다. 특별히 신나게 놀고 난 날은 떡볶이도 사 먹었다. 그때 어린이들은 지금만큼 돈이 없었다. 매일 아침 출근하는 아빠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100원만’을 구걸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다 주말이면 신발을 닦거나 청소를 해 용돈을 벌었다. 학원을 다니지 않은 건 아니지만, 요즘 아이들보단 시간적으론 좀 더 여유가 있었다.



 호주머니를 탈탈 털면 150원 정도 나왔다. 그럼 떡 하나, 오뎅 하나를 먹을 수 있었다. 그땐 딸려오는 파한 줄기도 맛있었다. 뽀글 머리 아주머니가 엄마 같은 눈으로 코를 박고 먹는 나와 친구를 지켜보셨다. 그땐 동네 아줌마들이 다 엄마 같았다. 헤어스타일 때문인 거 같다. 그러다 양념이 얼굴에 묻으면 괜스레 웃음이 터져 대굴대굴 굴렀다. 지금 생각하면 그걸 행복이라 생각한 거 같다. SNS, OTT, 스마트폰이 감히 존재하지 않은 때에 어린 시절을 보낸 걸 얼마나 감사하는지 모른다. 뛰고 구르며 오감으로 우정을 쌓고, 돌아오는 길 동전 몇 입으로 허기를 달래며 자랄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고 생각한다.



 요즘은 거의 떡볶이를 먹지 않는다. 떡볶이에 대한 애정이 식었다기보다 건강을 생각해 자제하고 있다. 그래도 가끔 별미로 해 먹으면 30년은 회춘하는 기분이 든다. 어릴 적 그날처럼 특별히 신나게 놀진 못하지만 특별히 행복해지고 싶을 땐 떡볶이를 먹는다.



 오늘은 토마토현미떡볶이를 만들었다. 떡볶이에 토마토를 넣으면 풍미가 깊어지고 고추장을 많이 넣지 않아도 되니 좋다. 탕수육의 부먹파, 찍먹파 논란이 있듯, 오래전부터 떡볶이계도 쌀떡파와 밀떡파가 치열? 하게 대립해 왔다. 그 사이에서 몰래 빠져나와 이제 나는 현미떡파가 되었다. 물론 건강을 위해서 탈퇴? 한 것이지만 이제 현미떡의 매력에 빠지니 헤어나 올 수 없게 되었다.



 우선 물에 병아리콩과 떡국용 현미떡을 불린다.( 떡은 인터넷에서 싸리재 유기농떡을 구입했다.) 팬에 오일을 두르고 창녕 다진 마늘을 한 스푼 넣고 볶다가 불린 케나다산 병아리콩을 넣고 익힌다. 잠시 후 마토를 썰어 넣는데, 아이가 익으면서 덥다고 스멀스멀 옷(껍질)을 벗으면 기꺼이 젓가락으로 도와준다. 껍질을 제거한 토마토를 으깨고 고추장 한 스푼과 굴소스 한 스푼을 넣는다. 소스가 완성되면 불려둔 떡을 넣고 걸쭉하게 한번 더 끓인다. 떡이 알맞게 익으면 버섯과 파를 넣는다. 마지막으로 정중앙에 구운 계란을 입주시키고, 대망의 파슬리 퍼포먼스도 잊지 않는다.




 어릴 적 떡볶이에 계란은 부의 상징?이었다. (물론 내 기준이다.) 나만큼 요리 솜씨 없던 엄마의 떡볶이는 딱히 무슨 맛이라 규정할 수 없는 국물 떡볶이였다. 거기 계란을 넣고 으깨먹으면 이상하게도 미슐랭 저리 가라는 맛이 났다. 사실 그땐 미슐랭이 뭔지도 몰랐다. 생일이 되면 케이크 대신 초코파이를 쌓아 올리고, 양배추 듬뿍 넣은 달큼한 떡볶이를 만들어 먹었다. 지금처럼 걱정도 없고 욕심도 없던 마냥 좋았던 시간이었다.





p.s 안녕하세요. 최집사입니다.^^ 오늘은 병원 진료가 있어 평소보다 일찍 글을 올립니다. 지난번에 받았던 정기검진 결과를 들으러 가는데 긴장이 되어 마음이 조금 무겁네요. 그래도 봄이라는 좋은 계절을 나고 있으니 꽃들의 기운을 좀 빌리도록 하겠습니다. 의사파업이 진전이 없어 걱정이 되지만, 이 과정 속에서도 분명 느끼고 배울 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발 적극적으로 대화하고 양보와 타협의 모습을 볼 수 있길 기대합니다. 꽃이 만개한 봄날, 천천히 느릿느릿 시간의 의미를 간직하는 일상 보내시길 바랍니다.

 읽어주셔서 감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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