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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집사 Apr 11. 2024

두릅 김밥

소울 도시락



어릴 때 소풍 도시락은 유부초밥이었다. 그땐 채소를 좋아하지 않던 때라 김밥을 그닥 선호하지 않았다. 엄마도 유부초밥이 만들기 편하셨는지 소풍날이 아닌 날도 종종 만들어 주셨다. 김밥은 시장 칼국수집 할머니가 일인자셨다. 스스로 밥 해 먹어야 하는 나이가 되서는 봄, 가을마다 도시락을 쌌다. 날이 좋으면 집 앞 공원에 나가 먹고 오기도 하고, 흐리면 흐린 대로 기분 전환 삼아 베란다에서 까먹었다. 



작년에 3주에 한 번 꼴로 항암을 다닐 땐, 아침마다 도시락을 싸 가거나 김밥을 사 먹었다. 안 그래도 좋지 않은 컨디션, 속까지 비울 수 없어 생각해 낸 방법이었다. 전날 밤 미리 도시락을 싸는데 묘하게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치료 중이고 코로나도 유행하던 때라 집에 격리하며 지내던 탓에 병원 가는 것도 나들이라고 착각하고 설레었던 거 같다. 일찍 접수를 해놓고 대기하는 동안 차로 돌아와 반려인과 도시락을 나눠 먹었다. 마인드 컨트롤을 위해 소풍 온 척 연기?도 했다. 실제로 가는 길 풍경이 꽤나 훌륭했다. 전쟁같은 그 와중에도 추억 비슷한 걸 남겼으니 다행이라 생각한다.



 20번의 항암을 통해 알 게 된 게 있다면 치료는 좋은 기분과 마음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상도 다르지 않다 생각한다. 하루를 결정하는 건 그날의 마음 상태이다. 가끔 마음의 환절기가 올 때마다 도시락을 만들어 먹는다. 그래서 그런가 요즘도 부쩍 만들어 먹었다. 얼마 전 어머님께서 두릅과 봄나물을 보내주셨는데, 그걸 가지고 두릅 김밥, 머위 쌈밥, 봄나물 샌드위치 만들어 먹었다. 물론 도시락에 담아서. 접시에 먹던 음식들도 굳이 동그란 나무 도시락을 꺼내 담아 먹었다. 기운이 자꾸 가라앉고 있었는데 이리 해 먹으니 입맛이 돌았다.



 소풍 효과다. 도시락을 싸는 것 만으로 어디론가 떠나는 상상을 하게 되고, 일상의 근심이나 고민들을 조금 내려놓게 된다. 커다란 두릅김밥을 한입에 넣으며 비싼 영양제를 보다 한 결 좋다고 생각했다. 작은 도시락통에 밥을 담는 것만으로도 누군가에 밥을 해주고, 누군가가 해준 밥을 얻어먹는 기분이 들었다. 결국 부지런히 나 먹을 밥을 만들며 스스로를 돌보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두릅 김밥 만들기는 매우 간단하다. 시금치 대신 두릅을 넣는다고 생각하면 된다. 혹 두릅이 없다면 달래나 냉이, 미나리도 좋다. 김밥을 좋아한다면 철마다 제철 채소를 넣어보는 것도 좋을 듯싶다. 두릅은 손질해 끓는 물에 데치고, 계란은 풀어서 두껍게 지단을 만든다. 당근은 필러로 다듬어 오일, 식초, 꿀, 후추로 버무린 다음 양념이 베이게 30분 정도 재운다. 자장자장… 재료가 준비되면 도마에 김을 깔고 참기름과 소금으로 조미한 현미밥을 얇게 깐다. 물기를 꽉 찬 두릅과 계란, 아까 재운 당근을 깨워 위에 올리고 동그랗게 만다. 여기서 잠깐, 집에 있는 돌김으로 하면 당연히 터진다. 나는 그랬다. 김밥김이 있다면 그걸로 만들면 되지만 돌김 밖에 없다면 당황하지 말고 두 겹으로 말면 된다. 파래김, 감태도 가능하다. 끝으로 감쪽같이 완성된 김밥을 도톰하게 썰어 도시락에 담는다. 물과 도시락을 챙겨서 냥이들을 데리고 거실을 뱅글뱅글 돌다가 ‘여기가 좋겠어’라고 혼잣말을 하고 돗자리를 깔고 앉아 먹는다. 물론 집에 아무도 없어야 한다.


p.s 잘 들지 내셨나요. 오랜만?이네요. 제가 요즘 갱년기와 더불어 봄을 타고 있는 관계로 싱숭생숭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습니다. 어디 여행이라도 다녀오고 싶은데… 또 막상 가려니 알아보고, 짐 싸고…  벌써 귀찮고 일이겠다 싶은 마음이 드네요. 소풍이든 여행이든 도착 전까지가 가장 좋던데… 그래서 자꾸 도시락만 싸 먹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찌 되었든 그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는 관계로 그런대로 일상이 잘 굴러가고 있습니다. 사실 잘 굴러가는 게 뭔지 모르겠지만, 하루하루 무탈하니 다행이다 생각하렵니다. 여러분들 중 혹 저처럼 싱숭생숭하신 분 계신다면 설레시는 거 많이 보시고 하시며 기운 얻으시길 바랍니다. 꽃들은 지고 있지만 땅과 나무에겐 이제부터가 시작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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