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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집사 Apr 18. 2024

열무 두부조림 비빔밥

삼순이의 양푼 비빔밥

 


삼순이 같은 여자가 되고 싶었다. 뚱뚱하고 못생겨도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자기감정에 솔직하며, 사랑에 용기 낼 줄 아는… 열받는 일이 생기면 야심한 밤 주방에 나가 불도 안 키고 미친년처럼 비빔밥을 말아먹고 싶었다. 불의를 보면 쉽게 참지 못하고, 어떠한 상황에도 스스로를 지킬 줄 알며, 자가 치유 능력이 탁월한, 그런 어른으로 자라고 싶었다. 그 시절 드라마는 내게 그런 꿈을 심어줬다. 요즘은 잘생긴 연하남을 꼬시려면 예쁘기도 하고, 밥도 잘 사줘야 한다던데, 일찌감치 품절녀가 된 게 행운인지도 모른다.



 열무가 제철이다. 시댁에서 보내준 올해 첫 열무김치를 하사? 받았다. 올게 왔구나, 반가움을 금치 못했다. 비벼먹고 말아먹고 초여름까지 별다른 반찬 없이도 든든하게 보낼 수 있게 되었다. 열무라는 명칭은 ‘어린 무’를 뜻하는 ‘여린 무’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흡사 현시점 나의 헤어스타일과 맥락을 같이한다.


 


 항암이 끝나고 새로 나는 머리는 확실히 전과 다른 느낌이다. 미용실에선 갓난아기 머리 같다 했는데 낳아보지 않았으니 짐작할 수 없다. 아무튼 그 와중에 곱슬 기도 생겼다. 인위적인 파마와 다르게 일관성 없고 극단적으로 자유분방한 태도를 보인다. 오른쪽은 안으로 말리고, 왼쪽은 밖으로 말린다는 소리다. 요즘 핫하다는 티보시 샬라메(배우)에게 묻어가는 방법밖에는 없다 생각한다. 물론 이 사실이 외부로 발설될 경우 어떤 질책?을 따를지 알 수 없지만, 그래도 그가 오랫동안 잘 버텨주길? 바란다.



 2년 차 경력직? 집순이라 이틀에 한번 꼴로 머리를 감는다. … 가 아니라 노력한다. 그 노력이 실천으로 잘 이어지지 않지만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고 했다. 정확히 이틀에서 삼일 째 넘어가는 시기에 열무로 변신한다. 소금에 절여놓은 그것처럼 가닥가닥 독립성을 유지하며 빈약해진 모발들은 두피와 한 몸이 되려 한다. 예전 머리숱 절반의 지분을 가지고는 어쩔 도리가 없다. 초등학교 때 교장 선생님의 1대 9 슬픈 가르마가 떠오를 뿐이다. 뽀얀 속살을 어떻게든 메우려 마흔이 되던 봄, 앞머리를 잘랐다. 일주일 전에. 반려인은 그걸 보고 레고? 같다고 칭찬을 해 주었지만 (칭찬 맞겠지.) 그마저도 바람이 불면 아연질색 홍당무가 되어버린다. 답이 없는 웨이브와  짧은 앞머리, 도수 높고 알이 큰 안경까지 쓰고 있으니 변태도 이런 변태가 없다. 어디선가 변태와 너드미는 한 끗 차이라고 하던데… 지하 암반수 같은 자존감을 북돋우기 위해선 스스로 후자 쪽이라 믿어야 한다. 덩달아 그 시절 삼순이처럼 홀로 씩씩하게 열무 비빔밥을 말아먹을 줄도 알아야 한다.



 열무김치와 비벼먹을 강된장을 만들기 위해 집 앞 채소가게에 갔다. 그곳에서 마트에 있는 아이들과 차원이 다른 두부를 만났다. 커다란 두부판에 뽀얀 나체?를 과시하며 누워있는 단단하고 듬직한 두부였다. 어릴 적 토스트 트럭에서 봤던 대용량 버터가 떠올랐다. 그러니 데려와야 했다, 데려올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우량 두부를 데려와 도마에 눕혀 놓고 한입 크기로 깍둑썰기해놓고 보니 그 양이 만만치 않았다. 강된장에서 두부조림으로 노선을 변경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담 무가 필요했지만, 마침 무도 없었다. 냉장고를 열어보니 제법 남은 깍두기가 있었다. 그 어렵고 귀찮은 양념이 이미 되어 있으니 이거다 싶었다. 그렇게 어찌저찌 열무비빔밥에 곁들일 두부무조림을 만들었다.



 깍둑 두부조림을 만드는 법은 간단하다. 우선 냄비에 참기름을 두르고 총총 썬 대파와 된장 한 스푼을 넣고 달달 볶는다. 달큼한 향이 나면 깍둑 썬 두부를 올리고 그 위에 버섯을 올리고 깍두기도 올리고 층층이 탑을 쌓는다. 마지막으로 김치 국물을 자작하게 붓고 약불로 은근히 졸인다. 깍두기가 익으면 완성. 두부조림이 뜨끈할 때 신속히 양푼을 꺼내는 게 포인트다. 현미밥을 깔고, 그 위에 두부조림을 한국자 크게 퍼서 올린다. 열무김치도 올리고, 숙주나 콩나물이 있다면 그것도 올린다. 마지막으로 화룡정점 반숙 계란 프라이도 올리고 참기름으로 마무리한다.



안녕하세요. 최집사입니다.^^ 오늘은 날씨가 너무 좋아 미세먼지 무시하고 창문을 활짝 열어 놓았습니다. … 마스크를 써야 할까요. 한낮에는 초여름 날씨라 조만간에 미처 때지 못한 뽁뽁이를 제거해얄 거 같습니다. 푸릇푸릇해지는 창 밖을 보며 새소리를 듣고 있으니 굳이 여행을 가지 않아도 좋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어차피 갈 수 있는 여력도 안되지만, 이왕이면 우리 집에 한 달 살기 왔다 상상하는 것도 좋을 거 같습니다. 결국 아는 맛이 맛있고, 사는 곳이 좋은 곳이면 좋겠습니다. 떠나고 싶지 않다는 건 지금 여기에 만족한다는 뜻이 수도 있으니깐요. 오늘도 집순이 최집사는 무탈한 하루에 만족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볼까 합니다. 여러분도 잘 아는 음식 만들어 드시고 만족스러운 하루는 보내시길 바랍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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