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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집사 Apr 25. 2024

채소잼.1_ 만능 마늘잼

실패 없는 요리

 


웅녀가 내 할머니의 할머니의 할머니의 … 할머니라면 이 몸 유전자 어딘가에도 그 정보가 있을 것이다. 한데 왜 나는 좋아하지 않을까… 먼 옛날 그분은 아마 이걸 먹고 인간이 된 걸 후회하셨는지도 모른다.



겨우 한 톨 먹었을 뿐인데 온종일 그 사실을 상기시키는 입냄새가 감당이 안 된다. 그나마 대놓고 마늘마늘한 마늘빵의 경우 달콤한 향에 홀려 정신없이 먹어대지만 끝내 빈 접시를 내려다볼 때쯤 걷잡을 수 없는 구취에 후회의 쓰나미가 밀려온다. 그럼에도 한국인으로서 마늘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연을 맺었다. 지금껏 내가 사람 구실을 할 수 있었던 건 그동안 알게 모르게 김치나 국, 찌개, 나물 등에 숨어있던 마늘을 꾸준히 섭취해 왔기 때문이기도 하다.



마늘이 몸에 좋다는 건 익히 알고 있다. 살균·항암효과, 항균작용, 빈혈완화, 저혈압 개선 등 모든 게 나를 위한 효과들이다. 그러니 하루에 2-3쪽 정도는 꾸준히 섭취해 주는 것이 좋다. 다소 나와 성향 차이가 있더라도 내게는 없는, 내게 필요한 걸 가지고 있다면 받아들이고 취하는 것이 나의 성장을 도모하는 길이 될 것이다.



내가 사는 곳에서 차로 30분쯤 가면 창녕이라는 곳이 있다. 낙동강을 끼고 고즈넉한 분위기를 풍기는 그곳엔 유채꽃과 마늘이 유명하다. 인터넷에 그곳 마늘을 주문하면 즉시 갈아서 보내준다고 해서 주문해 보았다. 이튿날 아이스팩용 생수와 함께 도착한 곱게 간 간 마늘을 알뜰 주걱으로 싹싹 떠서 반은 양념용으로 냉동실에 넣고, 반은 만능잼을 만들기로 했다.



올해 작은 목표는 채소들로 잼을 만들어 보는 것인데, 그 첫 시작을 마늘과 함께하게 된 건 영광스러운 일이다.(물론 마늘 입장에서 영광이라 생각해 주면 좋겠다.) 과일은 당도가 높아 부담스러울 수 있으니 여름의 풍족한 재철 채소들로 하나씩 잼을 담아보고 싶다. 말이 잼이지 빵 아닌 다른 것들과도 곁들여 먹는 양념쯤으로 생각하면 좋을 거 같다. 처음 만들어보는 채소잼들을 떠올리니 우리 집 주방이 마치 작은 연구실이 된 거 같아 괜스레 으쓱해졌다.



 참고할 레시피를 검색하니 류수영의 마늘잼이 독보적이었다. 누가 봐도 맛이 없을 수 없는 그 레시피를 똑같이 따라 하고 싶었지만, 건강을 생각해 마가린과 설탕, 마요네즈는 빼고 조금 변형해 만들었다. 요리라 할 것도 없는 초간단 레시피지만 재료가 줄어드니 그 과정도 한결 쉬워졌다.



 우선 팬에 올리브 오일을 넉넉히 두른다. 오일이 예열되면 조심스레 다진 마늘을 한 주걱씩 넣고 달달 볶이준다. 사실 이 과정으로 90프로는 완성되었다 볼 수 있지만 그럼에도 꽤 길고 험난한 여정이다. 마늘이 서서히 열을 받기 시작하면 매운 향을 뿜어대는데 그 사이 타지 않게 부지런히 뒤적거려야 하니 눈물 콧물 범벅의 오열은 자연히 나의 몫이 된다. 경우에 따라 마늘의 수분이 튀는 경우도 있으니 화상을 입지 않게 정신을 잘 차려야 한다. 종갓집 사골 우리는 자세로 중간중간 멍을 때리며 쉼 없이 마늘을 볶다 보면 어느덧 꾸덕하고 노릇한 상태로 변한다. 노력과 반비례하는 중량에 억울한 면이 없지 않으나 그 또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마지막엔 타지 않게 가스불을 끄고 꿀을 한 스푼을 넣은 뒤 요리조리 섞다가 폼나게 파슬리를 한 움큼 뿌리는 퍼포먼스도 한다. 완성된 잼은 식혀 소독한 유리병에 담아 냉장고에 두고 온갖 음식에 곁들여 먹는다.



 다음날 마늘잼 시연회를 하기 위해 멤버들을 주방으로 모았다. (물론 여기서 멤버들은 고양이들이다.) 우선 아침으로 통밀 마늘식빵을 제안했다. 가장 무난하고 기본적인 방법이었지만 마늘잼을 바르는 사이 냄새를 참지 못한 멤버들이 탈퇴해 버렸다. 어째서인지 이건 예상외로? 맛이 없었다. 내가 알고 상상했던 마늘빵의 맛이 아니라 더 슴슴하고 밋밋한 맛이었다. 지금껏 알고 있던 마늘빵은 버터와 설탕의 지분이 방대했다는 걸 깨달았다. 성공적이진 않지만 버리기엔 그간의 노력이 아까웠다. 비록 내가 아는 맛은 아니지만 재료 본연의 맛에 가깝다 믿으며 정을 주기로 했다. 어차피 내가 먹을 요리이니 실패는 없었다.



 다음은 현미 국수로 만든 파스타이다. 물론 이번에도 만능 마늘잼을 넣고 알리오 올리오 느낌으로 버무려 보았다. 마지막 남아있던 가자미도 구워 올렸다. 다행히 이번엔 아는 맛이 났다. 이거지, 실험에 성공한 괴짜 박사처럼 음흉한 미소가 번졌다. 퇴근하고 돌아온 반려인에게도 만들어 주니 맛있다고 완뚝해주었다. 마늘빵을 만회할 구실을 찾아 기분이 좋았다. 한편으로 사차원 마누라가 만든 믿도 끝도 없는 요리를 맛있게 먹어주는 그를 바라보며 흡사 기니피그가 떠올라 마음이 찡끗했다.



 마지막으로 만든 건 계란 컵밥이다. 세상 가장 만만한 간장 계란밥을 응용해 보았다. 컵밥 느낌을 살리기 위해 머그 컵에 밥을 담고 마늘잼 한 스푼을 넣었다. 계란은 노른자만 분리해 넣고, 기호에 맞게 간장, 참기름을 넣고 잘 섞어주면 끝. 마늘잼을 넣어 그런가 밥에서 풍미가 느껴졌다.



 이것저것 온갖 것 만들어 먹었는데도 절반이나 남은 마늘잼을 바라보니 또 한 번 웅녀 할머니가 떠올랐다. 그러곤 마늘에 미친 여자도 아니고 이제는 하다 하다 뻥튀기에도 발라먹었다. 의외로 마늘 크래커 느낌이 났다. 여기서 중요한 건 꼭 마늘 크래커를 상상하면서 먹어야 한다.



언젠가 일본에 갔을 때 그 지역 특산물로 만든 어마무시한 종류의 식품들에 놀란 적이 있다. 예로 고추냉이가 특산물이면 그걸 넣어 만든 아이스크림에서부터 김, 라면, 껌… 김치까지 만들어 파는 걸 봤다. 문득 상상력의 힘이 밥상을 다채롭게 해 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2인 가구 1.5인분 식재료로 다양한 걸 넉넉히 살 순 없지만, 적은 재료라도 여러 가지 방법으로 요리해 먹는 재미에 쏠쏠함을 느낀다. 요리와 식사도 경험의 일부라면 새로운 맛은 곧 새로운 곳을 여행하는 것과 같지 않을까.



p.s 안녕하세요. 최집사입니다.^^ 이번에는 마늘이라는 재료로 여러 실험적인 요리에 도전해 보았습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는 말처럼, 마늘을 좋아하진 않지만 요리조리 자세히 맛보며 정을 들이고 있습니다. 남은 마늘잼으로 부지런히 정진해서 집순이 곰탈을 벗도록 해보겠습니다. 좋은 날씨 부지런히 즐기시고 건강하고 맛있는 식사도 챙겨드셨으면 좋겠네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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