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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집사 May 09. 2024

완두콩국수

난쟁이가 쏘아 올린 완두콩



이번주 내내 썰렁한 날씨가 계속되고 있다. 비는 겨우 그쳤지만 아침저녁으로 찬바람이 불어 전기장판을 벗어날 수가 없다. 동시에 베란다 창문도 닫을 수가 없다. 주말 반짝 초여름 날씨를 반겼건만, 거짓말처럼 가을이 오고 말았다. 분리수거를 하러 가는 길, 누가 봐도 부끄러운 코끼리 후드를 챙겨 입었다. 질풍노도, 우리들 마음처럼 지구도 함께 늙어 가고 있구나 짠한 마음이 들었다.



 라디오에선 과일이 비싼 것도 이상기후 탓이라고 했다. 그러니 어쩔 수 없다고, 앞으로도 계속 상승세를 탈 테니 단단히 각오하라는 말투에 울컥, 또 마음이 상해버렸다. 그래서 유럽 몇몇 나라는 진작부터 전기차를 늘리고 플라스틱도 줄이고 있는 게 아닐까… 그런 곳을 떠올리니 아직 여긴 조선이구나 현타가 왔다. 요새 초딩도 안 하는 어쩔티비라... 답답한 마음에 허공에다 혼자 궁시렁거려 보지만, 귀찮은 듯 냥이들만 미오미오 대꾸할 뿐이다.



 이번 정부의 신기한 점은 아무런 과정과 결과가 보이지 않는데 소신 있는 척하는 모양새다. 머리 아프고 불편한 소리, 들어줄 사람 없는 혼잣말, 그럼에도 누군가의 입에서 계속 새어 나올 수밖에 없는 진실이 분명 있는데 말이다. 의사손실의 피해는 심각단계에 이르렀고, 인구 소멸 문제와 고령화 대비는 제대로 된 접근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인구 절벽을 이야기할 때 출생률만 언급하는 건(문제점만 제시), 가임기 집단에게 책임을 전가시키고, 사회적 갈등만 야기시킬 뿐이다. 결국 현실에 맞는 본질적인 대책이 아닌, 고령화 해결을 위한 출산 장려는 과거 그랬듯, 모성애와 부성애에 기댄 또 다른 등꼴브레이커만 나올 뿐이다.



 국회는 2년 내내 청군 백군 운동회만 하고 있고, 소수를 대변하던 정의와 녹색의 목소리도 희미해져 버렸다. 나라 돌아가는 사정을 속속들이 알지 못하지만 정부와 국회에 대한 최소한의 신뢰가 사라지는 것 자체가 제일 안타까운 일이다. 사실 내가 하는 소리는 거창한 애국심이나 정의감과는 거리가 멀다. 단지 나와 내 주변 사람들이 안전하고 행복했으면 하는 이기심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렇게라도 이런 곳이라도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건 다행인 일이다. 덩달아 세상을 단번에 바꿀 한 명의 영웅보다, 느리지만 꾸준이 저마다의 몫을 해낼 개미 히어로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날은 쌀쌀하지만 열이 뻗치는 관계로 초여름 순리?에 맞게 올해 첫 콩국수를 개시했다. 날씨와 무관하게 수시로 열이 오르는 때문에 냉정한 기운으로 가라앉힐 필요가 있었다. 지난번 차마 다 사용지 못하고 냉동실에 넣어둔 캐비어 같은 완두콩을 꺼내 콩국물을 만들었다. 비록 반 주먹도 안 되는 양이지만 그래도 우리 땅에서 난 국산이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애지중지 만들었다. 색감도 예쁘고 식감도 부드러운 게 마음을 진정시키는데 도움이 되었다. 내친김에 남아있던 팽이버섯으로 전도 굽고, 요즘 최애 열무김치도 꺼내어 구색을 맞췄다. 우당탕탕 나를 다독일 소박하고 정갈한 한 끼가 완성되었다.



완두콩국수를 만드는 방법은 라면만큼 간단하다. 완두콩은 끓는 물에 삶아 두부, 두유, 소금 한 꼬집을 넣고 믹서에 간다. 이때 땅콩, 아몬드 같은 견과를 넣으면 더 고소해지지만 나는 깔끔한 맛이 추구하기 위해 패스했다. 완성된 콩국물을 냉동실에 잠시 감금시켜 급속냉각 시킨다. 그 사이 보리 국수를 삶은 뒤(평소 밀가루를 자제하고 있다.)찬물에 여러 번 헹궈 전분기를 빼고, 약간의 오이와 방토를 준비한다. 그릇에 차가워진 콩국물을 담고 보리국수를 동그랗게 말아 한쪽으로 올린 뒤, 오이와 방토로 데코를 한다. 기호에 따라 계란을 삶아 올려도 좋다.




p.s 안녕하세요.^^ 최집사입니다. 오늘만큼은 유쾌하고 따뜻한 글을 쓰고 싶었지만, 마음처럼 잘 되지 않았습니다. 나이를 먹을수록 몽돌처럼 보드랍고 대나무처럼 유연하게 살고 싶은데, 현실은 억새풀 가시덩굴 잡초가 되는 거 같아 서글픈 마음이 듭니다. 이 글을 올려놓고 또 한동안 반성의 시간을 가질 거 같네요. 모래알 씹는 거 같은 이야기도 곰곰이 들여다보고, 생각들을 글로 적어내면 조금은 객관화되고 현실을 마주하는 눈이 길러지는 거 같습니다. 이번 글을 성장의 기회로 삼아 다음번에 좀 더 밝은 글로 찾아뵙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릴스 업로드되었습니다.

https://www.instagram.com/reel/C6vTdBer1jO/?igsh=aWVieXRoNnk3MHJ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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