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철 채소, 제철 고양이
일러스트 by 최집사
새벽에 폭우가 쏟아지더니 거짓말처럼 화창해졌다. 벼르고 있던 이불 빨래를 해놓고 창밖을 보니 나무들이 이리저리 손을 흔들었다. 나한테 흔드는 게 아닌 줄 알지만 괜히 두 손 번쩍 들어 나도 흔들었다. 지나가는 사람이 보면 이상하게 생각할 테지만… 냥이들은 그러려니 하는 거 같았다.
본격적인 여름을 맞아 채소가 풍족해졌다. 동시에 금방 시들해지고, 음식도 빨리 상해버린다. 재벌이 신상 백 고르듯 채소 가게에 가서 괜히 이것저것 담아 오는 병이 돋었다. 지난번 사다 놓은 햇양파와 단호박이 행여 썩지 않을까 다듬어 냉동고에 얼려 두었다. 두 식구가 매 끼니로 다양한 제철 채소를 맛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결국 재고 관리가 필수이자, 가장 큰 숙제라 생각한다. 언젠가 직장에서 배웠던 3정 5S가 도움이 된다.
집안일을 하고 나니 오전이 훌쩍 지났다. 점심은 씻어둔 김장 김치로 볶음밥을 만들어 먹었다. 하룻밤 물에 담가두었더니 신맛과 짠 기운이 빠져 요리할 맛이 난다. 냉동실에 얼려둔 삼겹살과 끝물인 미나리도 함께 꺼냈다. 양산 원동마을의 미나리 삼겹살을 떠올리며 고기를 먼저 구웠다. 노릇해진 타이밍을 적절히 캐치한 뒤, 총총 썬 김치와 미나리 줄기도 넣었다. 채소들이 자글자글한 삼겹살 기름과 만나 풍기는 향이 트러플 저리 가라였다. 굴소스로 간을 하고 식은 밥도 넣어 볶으니, 어디선가 뱃고동이 울리고 쉴 새 없이 아밀라아제가 분비되었다. 그릇에 담을 것도 없이 그대로 식탁에 올려 미나리 잎으로 장식하니, 바다 건너 치앙마이 분위기가 물씬 났다. 고수도 미나리과 식물이라고 하던데, 문득 영화 미나리에서처럼 아무 데서나 잘 크고 강한 인간으로 거듭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꾸리가 사냥 독촉을 하는 관계로 오늘은 여기까지 써야겠다. 지금까지 4번 넘게 주방을 다녀갔는데, 다음번엔 수갑을 가지고 온다고 했다. 어제 산 천 원짜리 다이소 낚싯대가 마음에 들었는지 자꾸 흔들어 달라고 재촉한다. 좋은 아이템을 장착하긴 했는데, 이상하게 피곤한 기분이 든다. 반려인은 나이트클럽 미러볼을 구해 천장에 달아보자 했지만 결국 그것도 내 손으로 돌리고 있을 거 같아 단념했다. 한편으로 새 잡고, 들판을 뛰어다녀야 하는 아이들을 데려놨으니, 집사로서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는 중인가도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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