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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집사 May 23. 2024

포케 비빔밥

경남 와이키키읍

일러스트 : 포케 비빔밥 by 최집사



 이제 제법 더워져 한낮에 실내 온도가 28도까지 올라간다. 집안일을 하다 보면 땀이 나서 유니폼 같은 잠옷을 수시로 벗어던진다. 어느덧 러닝 바람으로 청소도 하고 요리도 하고 있는 모습에 변강쇠가 따로 없구나 생각한다. 이래서 여름 잠옷을 잘 사진 않지만… (물론 그냥 옷도 잘 사지 않는다.) 그래도 집순이가 되고 나니 잠옷이라도 카라 있는 거 입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뭐랄까… 소속감이라던지 직업의식 같은 그런 게 문득 그리워졌다.



세 번째 모기에 물렸다. 첫 번째 모기가 맛집이라고 소문을 냈다고 생각했지만, 방충망이 봉쇄되어 있는 걸 봐선 범인은 한 마리일 가능성이 크다. 누군가 간 크게 불법 거주 중이라는 심증이 쏠린다. 나몰래 소파 밑이나 커튼 뒤에 숨어 있다가 배고프면 나와 끼니를 해결하겠지… 피 값을 받아야 하나, 집세를 받아야 하나 고민이 되지만 아직 안면도 트지 않은 상태라 달리 독촉할 방법이 없다. 우선 원만한 거래를 성사시키기 위해 이름부터 짓어 줄까 싶기도, 모스키노… 키노가 좋겠군. 냥이들도 아직 보지 못한 눈치라 꽤 낯을 가리는 아이이지 싶다. 나도 낯을 가리는데, 이리 이름까지 짓어주고 막상 만나면 손이 먼저 나갈까 우려가 된다.



 입맛이 없어 집에 있는 채소들을 이용해 포케를 만들었다.  분명 입맛이 없는데 콩국수와 들기름 막국수가 왜 떠오르는지 모르겠다. 국수를 해 먹을까 생각하다 냉장고를 열어보니 풍족한 채소들에 눈이 갔다. 사 와서 씻고 다듬은 노고를 떠올리니, 나중에라도 물러 버리지 않기 위해 때맞춰 소진하기로 했다. 결국 가장 만만한 주부들의 메뉴, 비빔밥으로 결정했지만 이름만은 ‘하와이안 포케’라 붙였다. 하와이에선 비빔밥을 포케라 부른다지… 비행기를 타고 9시간을 날아온 거처럼 자전거를 타고 동네 한 바퀴를 돈 뒤, 집으로 돌아와 대문을 열며 와이키키 해변의 에어비앤비라고 최면을 걸었다. 냥이들은 조증을 보이는 집사를 이상하게 쳐다봤지만, 다행히 날씨 요정이 도와주셔서 제대로 감정을 이입할 수 있었다.



 인터넷에 찾아보니 포케는 채소들을 깍둑썰기하는 게 포인트라고 해서 토마토와 오이를 총총 썰었다. 양념은 고추장이 아닌 간장 베이스의 오일 드레싱을 만들어 따로 종지에 준비했다. 양상추 대신 단배추를 깔고, 갖은 채소와 잡곡밥, 버섯과 양파도 굴소스에 볶아 차곡차곡 탑을 앃다보니 자꾸만 양푼이 비빔밥이 떠올랐다. 그럴 때마다 “포케, 포케…” 귀여운 발음으로 주문?을 읊조렸다.



 예전 같으면 지금쯤 휴가 계획과 각종 예약을 마쳤을 텐데, 올해는 유독 그런 마음이 들지 않는다. 늙어서 그런가… 여행지에서의 감동을 포한함 더위와 여독이 예상되어 선뜻 결정을 주저하고 있다. 결국 호텔 혹은 집이 최고다 생각하기 위해 오랜 시간 이동하고, 식당에 가고, 땡볕에 돌아다니며 구경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어른들의 방학 같은 그 시간들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설레는 마음이 있다. 거창한 곳에 가지 않더라도 나름의 추억들을 만들기엔 약간의 고생을 동반하는 여름만큼 괜찮은 계절도 없다고 본다. 여름 바다가 예쁘고, 여름 맥주가 맛있는 이유가 다 있단 소리다. 단짠의 중독만큼 짠내 나는 상황들이 달콤한 마음을 극대화시켜 줄거라 믿는다. 그러니 마동석처럼 러닝만 입은 채 양푼을 껴안고 있어도 하와이안 포케를 떠올릴 수 있는 것이다.




* 릴스로그 업로드되었습니다. ^^

https://www.instagram.com/reel/C7TcIGPPDBo/?igsh=MTl0aG02ZjByYmp4d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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