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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집사 Mar 14. 2024

통밀 단배추 샌드위치

빅맥 말고, 통샌


 


과자, 아이스크림, 사탕, 젤리, 콜라, 주스, 치킨, 햄버거, 라면, 핫바, 만두(등을 비롯한 인스턴트 가공음식)를 먹지 않는다. 마라탕, 자장면, 짬뽕, 탕수육(같은 튀긴 음식)도 먹지 않는다. 아주 가끔 지인들을 만나면 수제 파스타나 화덕 피자 같은 걸 먹기도 하지만, 되도록이면 가공 음식보단 자연 조리 음식을, 밀가루 보단 쌀가루를, 자극적인 단짠 요리보단 저염저당 식사를 지향하려고 한다.



 이건 몸이 아픈 후로 많은 반성과 생각 끝에 자리 잡은 의지이다. 이 말인즉 진정한 본능, 마음의 소리는 아니란 소리다. 지 버릇 개 못준다고 치료가 끝나고 일상이 회복되니 TV 속 치킨도 나한테 윙크를 하고, 한밤 중 옆집 라면 냄새에도 눈이 번쩍 뜨인다. 더군다나 그 모든 것들을 스스로는 허용하고 있는 반려인이 면상에서 먹방을 찍을 땐, 일제강점기 순사한테 잡혀온 독립군의 마음이 된다. 그럼에도 골초가 담배를 끊는 마음으로 그간 나를 길들인 식습관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어느 의사는 먹고 싶은 거 다 먹고, 하고 싶은 거 다 해라고 말했지만 그저 고맙고 마음은 편한 말이다. 막상 당사자 입장이 되면 그동안 먹고 싶은 거만 먹고, 하고 싶은 거만 해서 이 꼴이 되었나 싶어 그러지도 못한다. 이제라도 정신 차리고 건강한 식습관을 기르자 다짐할 뿐이다.



 부모님도, 시댁 어른분들도, 그 연세 또래 분들은 앞에 말한 음식들을 잘 드시지 않으신다. 할매 입맛이라는 말처럼 그들이 과거 경험했던 음식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음식도 음악처럼 저마다의 전성기 한 시절 속 추억과 함께 자신의 일부가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엄마는 팥죽과 쑥버무리를 좋아하시고, 아빠는 동태탕과 호래기 회를 좋아하셨나 보다.



 나의 전성기 음식은 왜 햄버거일까… 졸업 전 운 좋게(운이 좋았던 게 맞겠지) 조기 취업을 해 서울로 상경했다. 그땐 바쁘고 외근도 많아 이틀에 한번 꼴로 햄버거를 먹었다. 당연히 런치 세트로 먹었다. 서울 외각에 지방 취업자를 위해 지원해 주는 저렴한 아파트를 얻어, 매일 지옥철과 출장 업무를 오가며 요리는커녕 밥 할 능력치를 잃어버렸다. 결국 김밥천국과 맥도널드의 노예가 되었고, 2년도 안되어 몸과 마음이 상해 고향으로 돌아왔다. 한창 나라가 번성하고 외국 물자를 받아들여 풍요로웠다던 그 시절을 속에 살았던 나, 그래서인지 내가 아는 맛은 죄다 과자, 라면, 피자, 콜라, 햄버거로 설명되었다. 이제와 그것들이 내 몸을 망쳐온데 어느 정도 지분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선가 건강한 몸을 위해선 이로운 걸 먹는 것보다 해로운 걸 먹지 않는 게 더 효과적이라는 말을 들은 적 있다. 그래서 오늘 이 독립군은 빅맥이 먹고 싶지만, 배민 어플을 닫고 통밀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기로 했다. 전 세계 여성 중 80프로 이상이 빵순이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 물론 아직 연구 중이며(내가 혼자) 무엇도 증명된 바는 없다. 아무튼 빵을 끊는 건 유전적 기질을 변형?해야 하는 문제이니 술 담배를 끊는 것보다 어렵다. 99.9프로 불가능하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다행히 밀가루를 줄이는 편법으로 통밀을 섭취하는 방법이 있다. 빵만큼은 양보할 수 없으니, 보다 건강한 통밀과 쌀빵으로 타협을 볼 수 있다.



 해바라기씨, 호박씨, 호두 같은 견과류 알맹이들이 19세기 인상파 점묘화처럼 아름답게 박힌 통밀 식빵을 오븐에 살짝 구워 준비한다. 식빵 위에 엊그제 마트에서 2천 원 주고 데려온 단배추의 여리고 넓은 잎을 몇 장 포개어 올린다. 그 위에 유자청과 오일 드레싱으로 버무린 당근 샐러드를 올리고, 계란 두 알과 두유를 풀어 두텁게 구운 계란도 올린다. 나머지 식빵으로 잘 덮고 종이에 싸 테이프로 고정한 뒤 반으로 잘라 인스타용 비주얼을 완성한다. 찰칵.



 얼마 전 자장면 너무 먹고 싶어 시켜 먹은 적이 있다. 물론 내가 아는 맛이 아니었다. 한두 젓가락 먹을 땐 몰랐는데 먹을수록 느끼하고 속이 불편했다. 더 이상 건강을 명분으로 인내할 사안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내가 맛있고 내게 맞는 음식을 재정비할 때가 온 것이었다. 입맛이 경험을 토대로 형성되는 것이라면 이제부터 새로운 경험을 쌓으면 되는 것이었다. 이왕이면 건강하고 덜 자극적인 쪽으로 좋은 추억을 더해 기억 속에 저장하고 싶었다.



 오늘의 통밀 샌드위치는 구남친(햄버거)과 이별하고 소개팅 나가는 마음으로 만들어 먹었다. 처음에는 이렇다 한 맛도 안 느껴지고, 이 인간 뭐 하는 아니, 이게 무슨 맛인지 싶었지만 천천히 씹다 보니 은은한 단배추의 향도 나고, 고소한 견과류도 느껴지고, 상큼한 유자와 아삭한 당근, 촉촉한 계란의 하모니까지 느낄 수 있었다. 물론 배가 고팠다. 다행히 먹고 난 후 입안도 깔끔하고 속도 편했다. 바나나맛을 바나나 우유로 배우고 카카오맛을 초코바로 배운 입맛이 비로소 새롭게 정립됨을 느꼈다. 새삼 자연의 위대함에 겸손한 마음이 들었고 더 이상 아는 맛을 안다고, 맛있다고 주장하지 말아야지 생각이 들었다.



p.s 잘 지내시고 계시는지요?? ^^ 저는 무사히 잘 지내고 있답니다. 오늘은 새로운 소식을 전할까 합니다. 예전부터 조금씩 영상 작업을 해오다 최근 유튜브에 브이로그를 올리기 시작했습니다. ( 프로필에 URL 첨부해 놓았답니다.) 일상, 작업 기록용이니 부담 없이 봐주시고, 구독, 좋아요, 알림 설정까지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물론 안 해주셔도 감사하겠습니다. 날씨가 나날이 따뜻해지고 있습니다. 뭔가 모르게 늘어지는 기분이 들지만 싱그러운 봄기운으로 이겨내실 수 있길 바랍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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