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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집사 Jun 27. 2024

토마토 고춧잎 막국수

고추 말고 고춧잎



오늘은 병원에 가는 날이다. 새벽 3시 반, 어떻게 알았는지 꾸리가 친절하게? 깨워주었다. 보통은 자는 척 연기를 하지만 수차례 발가락 공격에 실패하고 말았다. 배가 고파 그랬을까… 일어나 밥을 챙겨주니 다시 라마처럼 얌전해졌다. 침대로 귀환해 멀뚱거리다 쌀쌀한 새벽 공기에 이불속을 파고들었다. 전기장판을 틀어진 반려인의 매트 아래로 발을 쑤셔 넣으며 불현듯 미지의 북유럽 국가들을 떠올렸다.



이번엔 아이슬란드 어디쯤 살고 있는 최집사이다. 스마트폰을 켜고 에어비앤비에 들어가 그곳의 내가 살법한 집을 찾아나섰다. 춥지만, 조용하고 인적 드문 마을에 사는 중년 여성 컨셉이다. 물론 고양이도 함께… 다시 눈을 감고 그곳의 나무와 하늘과 집들을 떠올렸다. 살아생전 마을을 벗어나 본 적 없는 이 몸은 가벼운 산책과 따뜻한 난로, 아침의 차 한잔에 행복을 느낀다. 치열한 경쟁이란 모르고, 밤새고 야근하며 살아본 적 없는 몸과 마음은 건강한 사람이다. 적당히 일하고 자존감을 헤치지 않을 만큼의 보수를 받는다. 물가와 세금은 좀 비싸지만 요리와 책에 진심이며, 아무것도 이루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하며 살아간다.



이렇게 말도 안 되는 황홀한 상상을 하는 사이 날이 밝아왔다. 노르웨이, 스웨덴, 독일… 지도까지 훑어보니 그제야 안심이 되어 잠이 오기 시작했다. 꿈에서 다녀왔으면 좋으련만…


 


잠을 좀 설쳤지만 늦잠은 자지 않았다. 제시간에 일어나 양치를 하고 머리를 감고 나왔다. 기다렸다는 듯 룽지가 격하게 맞아 주었다. 여느 때처럼 주방에 나와 라디오를 켜고, 따뜻한 물을 마시고, 가볍게 아침을 만들어 먹으며 일정들을 정리했다. 아무렇지 않은 듯 평소대로 움직였지만 냥이들은 집사의 외출을 직감한 눈치였다. 시끄러운 기계로 머리를 말리는 걸 보고 확신한 모양이다. 유독 작은 냥 룽지가 졸졸 따라다니며 안아달라고 매미 자세를 취했다. 아리랑과 진달래꽃, 그 중간쯤 되는 느낌의 골골송을 8절까지 목놓아 부르고는 놓아주었다. 금방 다녀올게…



병원을 가는 날은 며칠 전부터 기분이 가라앉는다. 겨우 드문드문 잊고 지내던 치료의 역사들이 소환되어 내 안의 불안이가 몸 둘 바를 몰라한다. 암에 걸렸다는 사실, 아무리 잊어보려 해도 기억은 문신처럼 새겨져버렸다. 받아들이고 마주하기 위해 반복해서 떠올리는 고통이라면 언젠가는 무뎌질거라 막연하게 생각할 뿐이다. 얼마나 기다려야 할까? 무슨 말을 듣게 될까? 이런 질문은 해도 될까? 생각들을 정리하며 마음을 다독였다. 그런 뒤 돌아오는 길에 맛있는 저녁을 먹어야지 생각했다.



  고추장을 잘 먹진 않지만 입맛이 없을 땐 새콤달콤한 비빔국수가 당긴다. 거기에 토마토를 넣으면 적당한 매콤함을 즐길 수 있다. 고춧잎은 지금 계절 잠깐 만날 수 있는 재료이다. 고추 말고 고춧잎이 오늘의 주인공이다. 보드라운 어린잎은 매운 기운 없이 달큼한 고추향만 배어 있다. 나물, 찌개는 물론 파스타와도 잘 어울린다. 그중에도 비빔국수와 먹는 게 가장 맛있다. 숨이 죽을 정도로만 가볍게 데쳐 토마토 양념과 면에 무쳐내면 더운 날씨에 효과적인 방법으로 기분도 업하고 기력도 회복할 수 있다.



* 릴스로그 업로드되었습니다.

https://www.instagram.com/reel/C8t_nxavKJ8/?igsh=eXJpdWVjNzE2Znd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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